장녀(長女)인 '사샘', 엄마와 많이 닮았는데 행여나 엄마의 인생까지도 닮을까봐 두렵다고 한다. '사메주'라는 자신의 이름에 트라우마가 있었던 엄마는 세 자매 이름을 '샘'이, '강'이, '솔'이라 지어주었는데, 이들 셋은 생물학적 아빠가 각기 다르며,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엄마는 이들 세 자매에게 엄마의 성씨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장을 담갔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며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61쪽)
장을 담글 줄 모른다. 그래서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사샘이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장면이 영화 속 장면처럼 펼쳐져서 좋았다. 장을 발효시킬 때 필요한 것들을 떠올리며 사랑과도 연관지어 스토리를 끌고 나간다.
수년 전, 우연히 취미 삼아 요리를 하게 되면서, 심리적 위안을 얻게 되었고 필연적으로 장을 담그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간장에 대한 모티브로 '사랑을 믿지 못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작가의 마음속에 효모처럼 내려와 앉았다. 맏딸 '장녀'의 이야기는 그래서 중의적인 표현으로 '장녀(醬女)'로 표기하게 되었다. (146쪽, 작가의 말 中)
소설가의 시선은 일반인과 다르다고는 알지만, 이렇게 일상에서 소설의 소재를 건져낼 때면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특히 이 표현이 마음에 남는다.
평범한 소금물이 메주를 만나면 일상을 초월하는 간장이라는 액체로 발효해 간다는 사실이 새삼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147쪽)
기적이 별 거인가. 이런 것이 기적이지.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 일단 소설 속 소재가 내 눈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뒷부분에 보면 책날개에 소설 음악을 QR코드로 담아놓았다. 이 소설을 읽을 때 음악과 함께 읽기를 권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소설을 다 읽고 알게 되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앞표지의 책날개에 있었다면 시도해보았을 텐데, 스포일러의 우려에 뒷부분은 나중에 보는 독자들의 마음도 헤아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