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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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도쿄 타워』리커버 에디션이다. 출간 15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다시 나온 이 시점에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며 보게 된다. 등장 인물들도 낯설고 상황도 제각각이다. '일본 사회는 우리와 많이 다르니까 일본 소설이라서 이상한건가?'라는 이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등장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에 익숙해지면서 이들의 마음에서 무언가를 뽑아내게 된다. 감정이입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물 흐르듯이 읽어나가게 된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이번에도 이 책『도쿄 타워』를 읽으며 에쿠니 가오리의 섬세한 문체에 매료되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에쿠니 가오리.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서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로 불리는 그녀는『냉정과 열정 사이 Rosso』『도쿄 타워』『소란한 보통날』『개와 하모니카』『별사탕 내리는 밤』등으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처럼 비내린 우중충한 날씨에는 어쩌면 이 소설의 시작 풍경이 잘 어울릴 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속에서 도쿄 타워만 얹어놓고 상상하면 되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은 비에 젖은 도쿄 타워이다. 트렁크 팬티에 흰 셔츠만 걸치고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면서, 코지마 토오루는 생각한다. 어째서일까. 젖어 있는 도쿄 타워를 보고 있으면 슬프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릴 때부터 쭉 그렇다. 잔디 깔린 높직한 평지에 자리 잡은 맨션. 토오루는 갓난아기때부터 이곳에 살고 있다. (9쪽)


엄마 친구 시후미와 내연 관계라니. 그것도 20대 남자가 40대의 여인에게? 그 상황이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며 조금은 무디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세월이 흘러서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출간 15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이다. 세월이 흘렀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칼날이 조금은 무뎌지는 것인가보다. 그래서 솔직히 예전에는 그 부분까지만 읽다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후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내 기억속의 토오루와 시후미는 15년 간 정지되었다가 이제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러준 셈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다보면, 혹은 처음 읽더라도 사람들이 말하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화법'이 어떤 것인지 점점 빠져들게 된다. 일상적인 상황, 일반적인 모습에서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오는지 그 섬세함에 휘감기는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시후미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그렇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요리를 먹는다. 토오루는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이탈리아 요리로 가득 차 버린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까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순도의 문제였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는다. 토오루의 온몸은 음악으로 가득 차고,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62쪽)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문득 어느 문장은 곱씹어보며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인간의 감정 속 섬세함을 건드려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들을 통해 이 책에 시선을 잡아끌도록 한다.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117쪽)


이 소설을 읽으며, 현실이어서는 안 되는 소설이기에 더욱 그들의 감정선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현실에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을 소설속에서는 가능하게도 하는 것 말이다. 신문 기사로 나오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불륜이지만, 그렇기에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것이다.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되고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잘 알려진 작품을 다시 만나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마음으로, 이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에쿠니 가오리만의 감성화법에 빠져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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