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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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야마시로 아사코의 단편 소설 모음집『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이다. 이 책에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 '곤드레만드레 SF', '이불 속의 우주', '아이의 얼굴', '무전기',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아이들아, 잘 자요' 등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다가 기대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옮긴이의 말에 보면 '야마시로 아사코는 공포를 중시하는 호러와 괴담을 쓰면서도 결코 이야기를 공포로 가득 채우려 들지 않는다. 공포의 여백을 메우는 것은 애틋하고 아련한 감성이다.(261쪽)'고 쓰여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다양한 감정이 어우러지는데, 그래서 더욱 마음을 사로잡나보다.  


 

 


이 책의 저자는 야마시로 아사코. 2005년 괴담 전문지《유》에「긴 여행의 시작」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기담 전문 작가로, 그의 소설들은 설화적 모티프와 현대적 공포 감성에 이르는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끔찍하거나 오싹한 느낌의 호러라기보다는 오래 잔잔히 맴도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상실'과 '재상'을 테마로 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통해 몽환적인 서정 호러의 미학을 빚어낸다. 슬픔을 기조로 호러 요소를 가미한 가운데, 미스터리, 공포, SF, 기담 등 각 장르의 특색을 담아 담담한 문체와 애잔한 스토리로 전개하고 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죽은 자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와도 같은 작품집이다.  


첫 작품「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을 읽으며 이 소설집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오, 이거 참신한데' 소설을 읽을 때에 처음부터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에는 그 소설을 선택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읽다보면 괜찮겠지'라며 읽어나갈 때면 대부분 기대에 못 미치곤 한다.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찾아서, 이왕이면 처음부터 나를 휘어잡는 소설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책을 집어든다. 그런데 이 책, 바로 이 책이 그런 느낌이다. 뿌듯하다.


'호러'라는 단어로 만들어진 선입견 때문에 안 읽었다면 아쉬웠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의 상황은 어느 부부에게 중년 남자의 귀신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어느날 갑자기 귀신이 보인다면, 그것도 계속 같은 사람이 보인다면 그가 누구인지 찾아보고 싶어질까? 현실에서 있을 법한 소재인데다가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도 이들과 다르지 않을 듯한 느낌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 계속 집중해서 읽어나간다. 

 


이 책에 담긴 소설들은 뭔지 모르게 울컥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은 소설을 읽다보면, 그 의미가 더욱 애잔하다. 정상이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정상이라면 불행하다는 것이다. 눈 앞에서 전 남편과 딸아이가 트럭에 치여 숨지는 것을 본 주인공은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딸 유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정상이라면 실제로 여자아이가 목소리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니까, 내가 정상일까 봐 우려해야 한다니 얄궂기 그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주인공의 머리에서 날조한 환청이 아니라 공기를 타고 퍼져나가는 전파라면? 예상 밖의 전개에 화들짝 놀라 멈출 수 없이 읽어나갔다.


사람들에게는 취향이 있는 법. 하지만 그것은 때에 따라 달라진다. 그동안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호러 별로야'라고 생각해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함부로 그런 말을 내뱉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 만큼은 매료되어 빠져들어 읽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런 거 완전 좋아' 라는 느낌으로 읽어나갔으니, 취향까지 바꿔버리는 매력덩어리 소설이다. 여운이 꽤 오래 남는 소설이기에 '호러'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라도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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