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 김사과 소설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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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정신 (소설, 향) 시리즈 중 한 권이다. 김사과, 윤이형, 김이설, 김엄지, 임헌, 정지돈, 정용준, 오한기, 조해진, 백수린, 최수철, 함정임의 소설이 출간 되었거나 출간될 예정이다.

*작가정신 (소설,향)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소설향'을 리뉴얼해 선보이는 중편소설 시리즈로.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 '향'이 가진 다양한 의미처럼 소설 한 편 한 편이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자 위로로, 때로는 성찰이자 반성으로 서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은  김사과 소설이다. '0 영 ZERO 영'이라는 제목부터 독특하다.표지의 제목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영'이라는 숫자, 거기에 담긴 세계관,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인식의 차이 등등 '0' 하면 생각할 거리도 많다. 과연 누가 먼저 그러한 생각을 했는지, 그 창의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과연 이 책에서 들려줄 '영'은 무엇일지 궁금해서 소설 속 이야기에 집중해본다.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포식자들의 속삭임

은밀하게 일어나는 투명한 학살들

그럼데오 불두하고, 이 세계가 텅 빈 '제로'라는 것에 대하여 (책 뒷표지 中)


이 책의 저자는 김사과. 2005년『영이』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02』『더 나쁜 쪽으로』, 장편소설『미나』『풀이 눕는다』『나b책』『테러의 시』『천국에서』『N.E.W.』,산문집『설탕의 맛』『0이하의 날들』이 있다. 


사실 이 소설의 시작은 연인의 이별로 시작된다. 너무 흔한, 헤어짐의 이야기에서 무슨 특별한 사연을 볼 수 있을까. 그저 그런 막연한 느낌으로 평범하게 이 소설을 대한 것 자체가 오산이었다. 어느 순간 훅 들어오는,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에서 시작된 나의 혼란스러움은 그럴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러서야 파장을 일으킨다. 이해할 수 없다고만 생각되는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 그것이 소설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세계는 넓어진다.

인상적으로 아름다웠던 그 계절 나는 인간과 삶에 대한 나만의 이론을 정립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별거 아니다. 그간 내 안에 떠다니던 공기를 선명하게 한 것에 불과함.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간단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食人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조심하고, 또 경계하라. (46쪽)

 


뭐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그런 사람이 있는 걸까, 어쩌면 누구나 모두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유쾌하지 않다. 인간 내면의 깊숙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것도 겉으로는 평범해보여도 사악한 어둠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서 뼈까지 싸늘해진다. 특히 박세영, 그녀와의 만남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밋밋한 소설 분량도 안되는 평범한 일인데, 어떻게 이것이 덫이 되고 '나는 박세영을 굴에다가 쏙 집어넣은 다음 현미경을 가져다 대고 매일매일 관찰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이 책은 빼놓지 않고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왜 그런 느낌일까 생각해보니 책 뒷편에 있는 '김사과 x 황예인 대화, 텅 빈 세계, 맹독성의 구원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주인공은 악에 가깝지만 마치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처럼 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듯해요. 자기는 굉장히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계속해서 얘기하는데, 독자로 하여금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 자체가 이 사람의 전략인 거예요. 사실은 나도 너와 비슷하고, 너도 나와 비슷하고, 그러니까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괜찮은 사람이고, 잘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일종의 유혹을 하는 거죠. 주인공의 고백 톤 자체가 '너도 사실은 그렇게 느끼잖아'라고 하는 의미에 가까워요. (196쪽)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합니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먼저 잡아먹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요. 김사과의 소설이 말해주는 것처럼 분명 우리는 더 나쁜 쪽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요. (223쪽_황예인의 말)

처음 이 책을 접하며 생각하던 것과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바라본 제로의 의미는 거리감이 있다. 그 간극 만큼 내가 이 책을 통해 다른 세계를 엿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세계관을 넓혀가는 것, 그것이 비록 더 나쁜 쪽을 향해가는 일이라고 해도, 그래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나에게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보여주려고 했던 오만함을 살짝 뒤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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