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제목은 '고양이와 할머니'이다. 일단 '고양이'라는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팬심으로 이 책을 읽어보고자 했다. 표지에 있는 고양이 사진이 '이 책은 무조건 읽자!'로 마음을 활짝 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들어가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고양이'와 '할머니' 그 두 단어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는 뒷표지의 사진에서 바로 답을 알려준다. 이 책『고양이와 할머니』를 보면서 사진과 이야기에 흠뻑 빠져드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전형준이다.
내 사진은 길고양이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됐고 지금도 그렇다. 그저 고양이에 대한 천진난만한 애정이 사진을 보는 분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프롤로그 中)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고양이 사진집이라고만 생각했다. 할머니와 길고양이의 글과 사진이 이렇게 맛깔스럽게 다가오리라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일단 펼쳐드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갔다. 언젠가 우리집에도 길고양이들이 왔다. 멀리 대형마트에 있는 사료만 잘 먹고, 하루는 귀찮아서 가까운 마트에서 다른 사료를 사다놓았는데 입에도 안 대는 것이었다. 북어나 멸치도 냉동실에 오래놓았던 것은 거들떠도 안보고 신선한 것을 내놓으면 금세 품절이었으니, 이 책을 읽으며 그런저런 기억도 모락모락 떠오르고 이래저래 한바탕 웃는다.
"내가 질(길)을 드럽게 들이 놨다. 이 문디자슥들이 시장에서 파는 칠천원짜리 멸치는 안 묵고 꼭 비싼 만이천 원짜리 멸치만 묵는다. 큰 것들이 비싼 거만 처무싸니까 어린 것들도 따라서 칠천 원짜리는 마 입에도 안 대더라. 웃기지도 않는다카이."
할머니는 칠천 원짜리 멸치는 자신이 볶아 먹고 더 비싼 만이천 원짜리 멸치는 저것들(?) 입에 들어간다며 아들 알면 큰일 날 거라며 웃으셨다. (20쪽_'묘생 3개월이면 멸치 맛을 안다 中)

책 속에서 '사랑을 받으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빛이 난다.'는 문장을 보았다. 여기에 담긴 고양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고 지내는 것 같아서 표정부터가 다른 느낌이다. 쥐잡이용으로 데려온 고양이를 처음엔 찐이라고 부르시다가 콩알만 한 게 야옹야옹 말도 많다고 '꽁알이'로 개명하게 되었다는데…….골목 담에 햇빛이 살짝 들면 꽁알이들이 그 밑에 쪼르륵 누워 식빵을 구웠고, 그러다가 해가 좀 더 높이 떠서 좀 뜨거워질 것 같으면 꽁알이들은 오동나무 밑으로 자리를 옮겨 낮잠을 잤다는 글을 읽으며, 햇빛 찬란한 어느 여유로운 순간이 그림처럼 그려져서 나른한 오후의 행복감이 전해진다.
하지만 재개발을 위해 철거가 진행되고 평범한 일상은 달라져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야했고, 뿔뿔이 흩어지고나면 동네가 없어지는 것이다. 손주처럼 고양이를 돌보는 할머니의 모습, 사진으로 담은 어느 평범한 일상의 한 컷은 사실 '다시는 오지 않을, 5월 봄날의 기억'으로 남는다.

꽁알이 할머니, 찐이 할머니, 하나 할머니, 부식 가게 고양이 등 사진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담은 사연들이 더해지니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양이만이 아니라, 고양이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니 마음을 둥둥 울리며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웃고 울고 걱정하고 행복한 시간들, 소중한 일상들이 셔터 속에 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표지 고양이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아유~ 예쁘다'라는 반응을 하며 이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느낌이 든다. 이 책 안에는 이 사진을 찍기 앞뒤의 사연이 담겨있다. 이 고양이 이름은 찐이, 그 묘생을 짐작해본다. 찐이 할머니와의 사연까지 더해지니 스토리가 풍성해진다. 단지 고양이 한 마리의 사진이 아니라, 거기에 영화처럼 이어지는 스토리가 그려진다.
책에는 저자가 고양이 사진을 찍는 마음도 엿볼 수 있다. 계기가 된 일화를 들려준다.
4년 전, 땅바닥에 쭈그려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들 찍는 거 좋아. 좋은데 여기 아픈 애들도 있으니께 가들 불쌍하게끔 찍지는 마소. 가들도 가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땐 기분이 좋진 않았다. 나름대로 밥도 주고, 아파 보이는 애들에게 약도 주면서 찍고 있는데 왜 저리 말씀하시나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집에 돌아와 아저씨가 했던 말이 생각나 마당에서 찍었떤 사진들과 그날 찍은 사진들을 비교해 보았다. 그제야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사진엔 불필요하고 일방적인 연민과 동정이 있었다. 그리고 밥을 주고, 약을 준 행위들은 그저 사진을 찍기 위해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합리화하는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찍었던 사진들은 다 지워버리고 말았다. (227쪽)
"가들도 가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란 말은 저자가 길고양이를 대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한다. 그 '불필요하고 일방적인 연민과 동정'이라는 시선이 빠져있어서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이 마음에 들어오나보다.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시선을 강탈하는 책이다. 고양이와 할머니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읽다보면, 웃다가 마음이 아련해지다가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사진이 독자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놓을 수 있다니! 감탄하며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