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간에는 비밀이 있다 - 도시인이 가져야 할 지적 상식에 대하여
최경철 지음 / 웨일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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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제목에 이끌렸다. '공간'과 '비밀'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젊은 건축가가 경험과 사유로 발견한 좋은 곳들의 비밀을 담았다고 한다. 누구든 어떠한 모습이든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잠도 자고 휴식도 취하고 일도 하면서 일상을 보낸다. 바삐 활동하는 곳도 공간이고, 무언가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공간도 주어진다. 이 책은 공간에 대해 인문학적인 에세이로 사색에 잠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건축가가 들려주는 좋은 곳들의 비밀이 궁금해서 이 책『모든 공간에는 비밀이 있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최경철. 글쓰는 건축가다. 현재 서울에서 건축사무소 모프를 운영 중이다.

책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니라 당신이다. 글을 읽다가 불현듯 어린 시절의 할머니의 집을 떠올리기를, 인상 깊게 보았던 이름모를 건축과 공간과 함께 있었던 사람을 떠올리기를, 자주 다니는 산책길을 걷다가 벽돌이 차곡차곡 쌓인 담장을 뒤덮고 있는 넝쿨에서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기를, 건축가가 건물에 숨겨둔 비밀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기를, 도시와 건축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기를. 그래서 이 책이 내 손을 떠나 오롯이 당신의 것이 되었으면 한다. (6~7쪽, 저자의 말 中)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도시와 건축: 공적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2부 '개인과 공간: 사적 경험이 모이는 공간에 대해서', 3부 '영감의 원천: 건축가를 깨어나게 하는 순간에 대해서'로 나뉜다. 두 건축가 이야기, 모든 공간에는 비밀이 있다, 낡은 동아줄을 잡은 건축가, 기념 공간의 필연적 이유, 슬럼의 변신은 무죄, 장례식의 기억, 조용한 어느 곳에 불시착한 건축, 가장 가까운 거리의 건축가, 최초의 웅크리는 존재, 대체 불가능한 건축, 내 방 여행하기, 시골 마을의 화장실, 고양이와 건축가의 거리, 백자 하나 두심이, 돌과 나무의 시간, 이사의 추억, 도시 읽어주는 남자, 건축 비엔날레의 단상, 최초의 어루만짐 등의 글이 담겨 있다.


'건축'은 나와 거리가 멀고 잘 모르는 분야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데에 이르렀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건축가를 본다. 물론 내 주변에는 건축가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건축가를 본다는 의미를 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본다는 의미로 치환한다면,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건축가를 본다고 말할 수 있다. 건물은 건축가의 의도와 의지가 담긴 결과물이다. (25쪽)


'내 방 여행하기'를 보며 내 방의 역사를 생각해보았다. 처음 내 방이 생겨서 설렜던 일, 너무 고요해서 잠만 쏟아지던 그곳이 지겨워지던 일,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외부와 단절되어 편안해지던 느낌까지, 생각해보니 나의 역사와 같이 가고 있다.

방이란 어쩌면 그곳을 점유한 사물과 내가 만들어 내는 관계의 실타래가 아닐까? 그 관계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드러난다. 그러므로 내가 살던 방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방의 역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된다. (101쪽)



 이 책은 도시와 건축, 개인과 공간, 영감의 원천 순으로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는 이 책을 보편적인 도시의 영역에서 개인의 공간을 거쳐 영감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단위에서 점차 작은 단위로 집중하는 구조라고 언급한다. 그저 저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공간에 대해 다방면으로 생각에 잠기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의 나, 문득 떠오른 언젠가의 기억,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불쑥 떠오르기도 하는 이 기억들에 집중하다 보니, 과거의 어느 시간이 한 조각 떼어져 눈앞에 펼쳐진 듯했다. 기억과 공간은 뗄 수 없는 것임에도 지금껏 중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에세이를 읽을 때, 의외의 소득이기도 하다. 저자의 성향과 자신이 비슷하다고 생각된다면 이 책으로 더 오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건축에 별 관심이 없고, 건축과 상관없다고 생각해왔지만,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생각을 달리해보는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별 생각 없던 것에 대해 이렇게 한 권 분량, 혹은 그 이상의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하는 책이어서 한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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