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여태현 지음 / 부크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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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인생 최고의 불행한 시점에 비슷한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날씨는 너무 좋고 사람들은 행복해보이는 것이 야박하다는 느낌 말이다. 그 누가 위로의 말을 건네도 마음에 와닿지 않고 튕겨져 나가는 그런 순간이 있다. 과연 이 책에 어떤 내용의 글이 담겨있을지 궁금해서『오늘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여태현. 소설『인어』『우주의 방』저자이다. 첫 소설을 발표한 뒤 소설과 각본, 에세이 등 장르 구분없이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는 주로 외면해선 안 될 삶의 외로움과 상실, 그것들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때론 외로움이나 상실 앞에서 좌절하고, 슬퍼하고, 우울해하겠지만 결국 인간을 인간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상실이나 외로움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담담한 문체를 통해 말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가까워지는 줄 알았던 날들이 때론 멀어지기 위한 과정이었단 사실 그땐 몰랐다', 2부 '어떤 밤에는 이유 없이 외로울 수도 있다고', 3부 '그렇다면 사랑이라고 되지 말란 법 있겠습니까'로 나뉜다. 연애가 끝나고 혼자가 되는 일은 설거지를 닮았습니다, 모서리가 많아서 입안을 아리게 하는 글자들, 책상 정리는 이별과도 꽤 많은 구석이 닮아있습니다, 코 끝이 간지러운 밤마다 죽을 힘을 다해 널 끌어안고, 사당행은 종종 사랑해로 읽히곤 하는데, 특히 오늘 같이 외로운 글을 잔뜩 써낸 날이면, 한 번 부러진 곳은 약해져서 계속 우릴, 종착지가 없어 도달할 길 없는 그리움이란 거 상상해본 적 있나요, 우리 사이에 더 많은 시간이 놓이기 전에 미처 공유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삶의 면면이 켜켜이 쌓이기 전에, 그러니까 나는 그런 것들에 기대오 외로움을 견뎌내는 겁니다 등의 글이 담겨 있다.


글과 그림으로 채워진 에세이다. 먼저 이 책의 목차를 주르륵 읽어나가다보면 길고 세세한 문장들이 시선을 잡아 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담담하게 풀어내는 글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소한 일에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사랑일테니 말이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책상 위에 있던 캔들을 옮기다가 그대로 떨어뜨려 깨뜨린 적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블랙체리. 빨간색의 캔들입니다. 유리병을 깨뜨리면 가장 먼저 큰 조각들을 주워 담습니다. 눈에 잘 보이는 것부터 순서대로 치우는 겁니다. 그다음엔 작은 조각들을, 그다음엔 더 잘게 부서진 부스러기들을 쓸어 담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겁니다. 크게 떨어진 조각보다 잘게 부서진 걸 치우는 게 몇 배는 더 힘들고 괴롭단 사실을. 당장 치우지 못한 부스러기들이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반드시 살갗 어딘가를 긁어놓을 거란 사실도 많이 깨뜨려본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아, 이건 캔들이 아니라 연애 얘기입니다. 꼼꼼히 쓸어도 어딘가에 남아있을 추억의 부스러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31쪽)

 

 


에세이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이 짐작 된다. 저자의 글에서 때로는 예민하고 날 선 느낌을 받는 것은 글을 쓸 때에는 며칠씩 금식을 한다는 데에 기인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잊고 있던 감수성을 되살리게 된다. 조곤조곤 풀어내는 이야기에 몰입하며 풍부한 감성으로 세상을 만난다. 그러다 마음을 훅 치고 들어오는 문장을 발견하고는 한참을 멈춰선다.  

살다 보면 어떤 깨달음은 종종 깨닳음이라고 적고 싶었다. 나의 한 부분을 표면이 거칠은 어딘가에 비벼 남들처럼 반질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을 모난 부분을 평평하거나, 평범하거나 어쨌든 남들과 부딪히지 않게끔 공들여 갈아내는 과정. 그 묵묵하고 인내심이 필요한 외로운 일을 벌써 몇 년째 반복하고 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나. 그렇게 어른이 되면 사람들은 가끔씩만 행복하고 가끔씩만 웃었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행복이라니. 우스운 일이다. 취향이나 생각 같은 것들이 사회에 필요한 모습으로 획일화되는 거다. 유난히 모난 부분이 많은 사람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갈아내는 데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 예컨대 나 같은. 남들과 다르다는 거. 가끔은 쓸쓸하다. (153쪽)


이 책은 소설 '인어'와 '우주의 방'의 저자 여태현의 첫 산문집이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책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철저히 외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그래서 그것이 오히려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되는 시간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와 삽화가 어우러진 글을 보며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별한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녹아드는 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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