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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라니. 제목을 보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책상 모서리도 아니고 하필 '두부 모서리'인데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소재 자체가 주는 느낌이 색달라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접시물에 코박고 죽는다는 표현처럼 일본에는 이 표현에 어떤 관용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궁금했다. 아니나다를까. 옮긴이의 말에 보면 농담을 농담으로 받지 못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을 야유할 때 쓰는 말로, 어리석고 둔한 사람을 조소할 때 사용하는 관용 표현이라고 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우동으로 목매어 죽어라'가 있다고 한다.
어쨌든 참신한 제목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이 책은 일본작가 구라치 준의 미스터리 중,단편 모음집이다.「ABC 살인」「사내 편애」「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밤을 보는 고양이」「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네코마루 선배의 출장」등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미스터리가 좋긴 하지만 너무 공포감을 조장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볍고 쉽게 읽게 되는 책이 좋지만 너무 남는 것이 없으면 공허하다…. 이런 독서 취향의 나에게 딱 맞는 미스터리로 구라치 준이라는 작가를 새로 인식하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구라치 준. 1994년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의 첫 번째인『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를 통해 정식으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1997년 눈으로 격리된 산장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으로 제50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장편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2001년 한적한 지방 도시에서 일어난 묻지마 연쇄 살인을 다룬『항아리 속의 천국』으로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 본격 미스터리와 일상 미스터리를 넘나들며 '미스터리계의 교과서'로 불리는 구라치 준은 유머러스하고 친근한 작풍에 치밀한 논리, 기상천외한 수수께끼와 트릭으로 언제나 놀라움을 선사한다.
데뷔 이후, 그는 단편의 가벼운 본격 미스터리를 주로 발표하여 지금은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라치 준은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계속 본격 미스터리 입문편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은 초심자용 본격 미스터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풍이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트릭과 수수께끼 풀이를 전개하여 독자들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구라치 작품의 매력이다. (326쪽_옮긴이의 말 中)
사실 첫 작품부터 치를 떨었다. 요즘 뉴스에 살인사건을 보며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살인은 간단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쉬웠다. '뭐야, 이런 거구나' 하고 김빠질 정도로 편안한 작업이었다. 긴장은 좀 했지만 공포도, 감개도 없었다. 나는 담담히 그 아파트를 빠져나왔다.(27쪽_ABC살인 中)

6편의 소설을 6일에 걸쳐 읽어보았다. 갑자기 분위기 전환을 하기 싫어서 그냥 하루에 한 편씩만 읽었다. 한 편 한 편 완성도가 뛰어나서 단숨에 읽어나가지만 그 여운은 길다.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한다. 한꺼번에 다 읽어버리지 말기를. 한 편 씩 잘근잘근 씹어먹는 느낌을 갖기를. 아니면 적어도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다음 소설을 읽기를 바란다. 각각의 소설은 강약 조절 없이 다 임팩트 있게 다가와서 미스터리 소설 읽는 느낌 제대로 살렸다.
이 책을 통해 구라치 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구라치 준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좀처럼 일을 안 하기로 정평이 난 일본의 추리 작가'라는 설명이 있을 정도로 작품을 적게 쓰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냉장고가 텅 비어야 일을 한다', '최소한도로 살아갈 정도로만 계산해서 일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지만, 최근에는 정기적으로 신간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적게 쓴다니 더욱 호기심이 생기는 작가다.
부조리한 상황,
부조리한 트릭과 봇건
하지만 이상하게 납득 가는 이야기! (책 뒷표지 中)
몰입도가 뛰어나고 여운은 긴 미스터리 소설 모음집이다. 구라치 준의 웰메이드 미스터리를 엄선해서 담은 책이기에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미스터리 초보자들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