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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달팽이 식당』『츠바키 문구점』의 작가 오가와 이토가 신간을 출간했다. 크리스마스 전후, 장갑이 필요한 계절인 겨울, 이 책이 더욱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추워도 마음만은 따뜻해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한 편의 동화같은 소설에 시선이 갔다. 이 책『마리카의 장갑』을 읽으며 동화 속으로 들어가보는 듯한 포근한 시간을 보낸다.
장갑은 털실로 쓴 편지 같은 것.
좋아하는 마음도 말이나 글 대신
장갑의 색깔이나 무늬로 표현합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좋아하는 마음'이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책 뒷표지 中)


이 책의 저자는 오가와 이토. 『달팽이 식당』『츠바키 문구점』등의 소설을 쓴 작가이다.『마리카의 장갑』은 출생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엄지장갑과 함께 살아가는 나라 루프마이제 공화국을 무대로, 한 여자의 파란 많지만 따뜻한 생애를 그리고 있다. 인생에서 좋은 일만 일어날 수 없듯이 힘든 일만 계속되지 않는다는 깨우침. 베풀수록 샘물처럼 차오르는 사랑의 아이러니, 생명의 고귀함 같은 인생의 통찰과 함께 뭉클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은 1장 '탄생일의 흑빵', 2장 '축하의 술, 시마코프카', 3장 '첫사랑의 꽃차', 4장 '영양 만점, 자작나무 주스', 5장 '도토리 커피를 마시며', 6장 '오이 피피 만드는 법'에 이어 마지막장 '엄지장감'으로 이어진다. 일러스트 에세이 '라트비아, 엄지장갑 기행'으로 마무리 된다.

마리카가 태어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집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고,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가 셋이나 있는 대가족에서 태어났다. 마리카가 태어난 날 아침, 할머니는 곧바로 작은 엄지장갑을 뜨기 시작했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의 겨울은 몹시 추워서 엄지장갑 없이는 살 수 없고,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꼭 드는 엄지장갑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림과 함께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며, 추운 겨울 난로 앞에서 뜨개질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어릴 적 한동안 엄마가 직접 뜬 모자, 목도리, 장갑을 하고 다녔던 기억을 떠올린다. 요즘에는 핸드메이드가 장인이 한땀한땀 뜬 명품으로 각광받지만, 예전에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살았던 듯하다. 사람의 정성과 시간이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에 생각에 잠긴다. 이 소설은 이렇게 동화를 그려내는 듯, 마음 따뜻해지는 무언가를 보여주며 시공간을 여행하게 만든다.

대가족의 북적거리고 포근함을 잊은지 오래다. 뉴스를 보면 삭막한 사회 분위기에 치를 떤다. 어쩌면 이런 때가 동화같은 이야기에 더욱 귀를 쫑긋하며 기울이게 되는 때인지도 모른다. 이들이 둘러앉아 빵을 함께 먹는 것만 보아도 포근하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니 말이다. 루프마이제공화국에서는 어떤 전통이 있는지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하나같이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것들이다. 머릿속에 떠올리며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배운다.
마리카의 탄생부터 성장 과정까지 함께 지켜보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간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가, 생각하며 동화 속 이야기를 보듯 이 소설을 읽어나갔다. 열 살이 되었을 때,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묘사된 외모도 가늠해보며 마리카의 모습을 떠올린다.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마리카가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엄지장갑을 뜨기로 하는 장면은 사랑하는 마음이 엄지장갑으로 전해지는 달콤함이 있다. 사랑하는 야니스를 위해 마리카가 고른 색깔은 아름다운 밤의 남색, 빛나는 태양의 노란색, 눈의 순백색, 숲을 물들이는 나뭇잎의 초록색이다. 야니스의 이미지를 색깔로 형상화하고 사랑의 마음을 엄지장갑으로 전하는 것에 따뜻함이 묻어난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 무렵 마리카는 한 가지 큰 결심을 했씁니다. 야니스를 위해서 엄지장갑을 뜨기로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백은 부끄러워서 못하니까요.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는 대신 엄지장갑에마음을 담아서 전합니다. 엄지장갑은 털실로 쓴 편지 같은 것. 좋아하는 마음도 말이나 글 대신 엄지장갑의 색깔이나 무늬로 표현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좋아하는 마음'이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63쪽)


보석함처럼 반짝이는 라트비아라는 작은 나라에서 이야기 조각들을 모았다. 그리고『마리카의 장갑』이라는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 그동안 우리는 라트비아를 세 번 방문했다. 그곳에서 만난 숲, 바람, 햇빛, 호수, 사람들의 선량한 웃음이 독자 여러분께 전해지길 바란다. (218쪽)라트비아, 엄지장갑 기행 中)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인생, 그 시작과 마지막까지의 여정을 동화를 보듯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지켜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야기가 끝났지만 아쉬울 것이 없는 게, 일러스트 에세이 「라트비아, 엄지장갑 기행」이 이어진다. 오가와 이토 글과 히라사와 마리코의 일러스트와 사진을 볼 수 있으니, 그곳에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고 보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겨울날 마시는 코코아같은 느낌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