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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그 사람
웬디 미첼.아나 와튼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0월
평점 :
살다보면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것이 내 문제가 되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상도
못하다가 어느새 나의 문제, 혹은 가족의 문제가 되어있을 경우 그 당혹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치매'라는 질병이 바로 그럴
것이다. 자신의 문제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 아닐까. 예전에『스틸 앨리스』(개정 전『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치매 환자 본인의 입장이 아닌, 주변인으로서의 고통만을 생각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작품은
소설이었지만, 이번에는 에세이다. 치매 진단을 받은 사람이 직접 써내려간 글이라는 점에서 이 책을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읽고 싶다는
생각 이상으로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이 책『내가 알던 그 사람』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었으며 웬디 미첼과 아나 와튼의 합작품이다. 웬디
미첼은 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 의료지원팀장으로 20년간 근무하던 중 2014년 7월에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사회와
진료기관 모두 치매 질환을 잘 모르는 데 충격을 받은 웬디 미첼은, 치매를 알리고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삶이 있음을 전파하는 데 여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 알츠하이머 협회의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아나 와튼은 <더 타임스>와
<가디언>의 기자로 20년간 일했고, 여러 편의 논픽션을 썼다. 어느 날 우연히 웬디 미첼의 동영상을 본 아나 와튼은 역시 치매로
고생한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뒤 런던의 지하철역에서 웬디를 처음으로 만났으며, 치매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지난 웬디와
서로 유쾌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그때 웬디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데 찬성했다.
영국 요크 시에 사는 58세 여성 웬디 미첼은
NHS(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으로 간호사의 근무 일정을 작성하는 팀의 노련한 팀장이다. 웬디는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웠고, 이혼 후
청소부였지만 뛰어난 기억력과 일처리 능력 덕분에 현식에 이르러 은퇴를 몇 년 앞두고 있다. 그런 어느 날 머릿속이 뿌예지고, 언어 구사력이
떨어지고, 달리다가 넘어지는 일을 겪는다. 과로와 노화 때문으로 여기지만, 그때부터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의 삶이 시작된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기까지의 과정, 장기간의 관찰 후 진단이 내려지는 과정, 진단 후 병을 안고 직장 생활을 하는 모습, 병에 대해 공부하고 같은 병을 앓는
이들과 만나면서 사람들에게 질병을 알리고 치매 치료제 개발 연구에 참여하며 삶을 가꾸어가는 여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그려진다.
(317쪽_옮기고 나서 中)
부모가 아프면 자식에게 숨기려고 하다가 일을 크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자식 마음에도 대못을
박는다는 것을 모르고, 안 아픈 척 하는 것이 자식 걱정 덜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무조건 괜찮다고만 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래서 웬디
미첼의 딸 새러가 엄마에게 하는 말을 보며 격한 공감을 했다. "엄마가 저한테 의지해도 된다는 걸 아시면 좋겠어요." 특히 치매는 주변인의
도움이 절실한 질병이니 몸과 마음의 준비가 더욱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보통 그 입장이 되면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해내고
싶은 생각에 안간힘을 쓰게 되나보다. 기억을 잃을 수록 당혹스럽고 처절한 경험이 늘어나고, 당연하던 일상이 낯선 일이 되어버려 집 안에서도 길을
잃는다. 이런 경험들을 1인칭 시점으로 무덤덤하게 써내려갔다.
치매라는 질병을 직접 겪는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나 자신과 주변 사람, 특히 치매에 걸린 사람의 생각에 한 걸음 다가가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간다. 한꺼번에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점점 약해지고 무력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 어떨지, 아주 조금은 알 듯하다. 그때가 오지 않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다. 혹시나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할 문제들을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미리 만나보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갖는다.
암에 걸렸다면 선택지가 더 많겠지만- 단순히
치료 거부만으로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 치매를 앓으니 뇌가 버티는 한 고통이 계속된다. 난 무력하다. 무력해서 원하는 삶을 못 사니,
통제력을 최대한 발휘해도 지는 싸움을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 정말 그렇다. 그런데 무력해서 죽지도 못한다. 스위스에 가고 싶다. 그런데 두
딸이 저희끼리 돌아와야 되니 그럴 수가 없다. 영국에서 자살을 돕는 게 합법이라면, 내 안락사를 도운 후 딸들이 곤경에 처하지 않는다면 난 맨
먼저 그러고 싶다. 유일한 문제는 시기일 텐데, 지금 생사의 중간 지대에서 산다. 계속 살아 점점 절벽 끝에 다가서는 나 자신을 보고 싶을까?
이만하면 충분히 멀리 왔다고 말할 때가 언제일까? 확실히 알 때는 - 절벽 끝이 코앞이라서 아래 허공이 보일 때 - 너무 늦어서 그 말을
못할까? (300쪽)


우리는 누구나 노화의 과정을 거치며, 예전의 모습이 유지되지는 않는 삶을 살아간다. 지긋지긋하던
과거를 결국 미화시키는 것은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 중간중간에 웬디 미첼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얘들아, 너희가 방에 들어왔는데 내가 못 알아보는 날이 올 거야. 그렇게 되더라도 너희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말아줘."라는 띠지 말의 깊이와 감동을 느끼며 생각에 잠긴다. 이 책을 읽으며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고 마음의 대비를 해놓아야 할 질병인
치매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기에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