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것도 아닐까 봐 - 도시 생활자의 마음 공황
박상아 지음 / 파우제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오늘도 참았다.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고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고 모함을 한다. 당해낼 재간이 없다. 좋게 좋게 이야기했더니 사람을 우습게 아나보다. 그렇다고 성질을 낼 능력도 안된다. 괜히 더 힘들어지기나 할 듯해서 그냥 애써 외면하며 넘어가기로 한다. 이렇게 참기만 하면 내 마음은 괜찮을까. 그러던 와중에 이 책『내가 아무것도 아닐까봐』를 읽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다가 훅 치고들어오는 무게감이 있는 책이다.

너무 꾹꾹 참아서, 너무 피하려 해서 일어난 감정의 폭발. 몸은 스스로를 지키려고 발작을 한다고 한다. 의사들은 이것을 '공황장애', '전환장애'라고 명명했다. (26쪽)

 

 

 

 

이 책의 저자는 박상아. 공황장애와 전환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폐쇄 병동에 입원하여 죽음에서 건져졌다. 서른넷, 다시 사회인으로 돌아가고 서른다섯, 공황장애까지도 안아준 남자와 결혼했다. 극복되지 않은 공황장애를 안고 도시의 삶을 산다.

의사들이 감정을 수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종기처럼 여물어버린 이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을 칼로 도려내고 싶다. (146쪽)



'마음의 자해' 이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감정을 억압하고 회피해서 이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고.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바라본 질환에 대해 좀더 다가가서 바라보는 시간을 보낸다.

전환장애는 정신적 에너지가 신체적 증상으로 변환된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신체에는 문제가 없는데 마비가 온다거나, 실명을 한다거나 하는 질환이다. 공황장애이자 전환장애를 가진 나는 자꾸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저앉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홀로 일어설 수가 없다.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못한다. 나는 이 거대한 세상을 지지하고 일어서 있을 힘을 잃어버렸다. (124쪽)

 

 

 

 

 

6인실에 자리가 나서 병실을 옮기라는 의사의 오더가 떨어졌다. 6인실로 옮긴 지 반나절이 지나자 격렬한 발작이 시작되었다. 몸은 비틀어지고 부들부들 떨렸다. 숨통이 조여왔다. 나는 사냥된 사슴처럼 몸부림쳤다. 병실에 틀어진 TV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병문안 온 교회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가…. 모든 것이 신경을 긁어댔다. 날카로운 칼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예민해졌다. 소리들이 폭력적일 수 있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나의 몸은 독침을 맞은 듯 굳어갔다. 나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6인이 길길이 날뛰고, 동시에 벌벌 떠는 나의 신경들……. 나는 어설픈 모래성처럼 허물어져갔다. 증세가 심해지자 다시 1인실로 보내졌다. 아마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 증상들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이 입원한 환자들에게까지도. 아니,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착각과 오만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환자들이었고 나는 잠깐 넘어진 것뿐이라는 착각. 나는 그들과 하나로 묶이고 싶지 않았다. (130~131쪽)

병원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이곳에 있으면 정상인도 환자가 되어버릴 듯한 느낌, 다들 사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취향도 너무 제각각이어서 당최 맞출 수가 없다는 것. 거슬릴 것 없는 성향의 사람들만 있으면 맘 편안히 회복에만 신경쓸 수 있지만, 보기 싫으면 같은 방에 있다는 것 자체가 버겁다.

 

공황장애는 정상이니 비정상이니를 논해야 할 문제가 아닌, 마음이 겁을 먹은 것뿐이라고 표현한다. 그렇기에 낫거나 극복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늘 곁에 있는, 조금 예민한 겁 많은 친구를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실제 공황장애를 6년 째 앓고 있는 사람의 표현이기에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일단 손에 쥐니 끝까지 읽어나가게 된다. 그 마음을 가늠하며 내 마음을 다독여본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라고 해도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가능한 일이리라. 이 책을 읽으며 그 과정을 함께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특히 마음이 힘들고 버거울 때, 묘하게도 이 책이 마음을 달래줄 것이다. 삶의 전부가 불행한 사람도 없고, 삶의 전부가 행복한 사람도 없으니, 그냥 살아가자고, 살아내자고, 버텨보자고, 한 번 해보자고,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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