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거지 불행한 게 아니에요
김설기 지음 / 레터프레스(letter-press)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당연한 듯,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우리 편과 악당, 선과 악, 삶과 죽음 등 세상을 둘로 나누며 살았다. 하지만 요즘들어 기쁨 못지않게 슬픔을 견뎌내는 것도 살아가는 데에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아있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감정들에 집중하며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원하던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졌다고 할까.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기쁨과 슬픔처럼 우울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라는 말에 공감하며 이 책『우울한 거지 불행한 게 아니에요』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설기. 공공기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 차례 이직했으며,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삶이 계속되자 4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4년째 우울증 치료에만 집중하고 있다. 끊임없는 자책에서 나와 어떤 일에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기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어설픈 위로보다는 어설픈 침묵을 좋아한다. 우울증 환자의 마음을 그리고 쓰는 <딸기설기 마음연구소> SNS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그때, 저는 쉼 없이 달리던 제 인생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거꾸로 과거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이 책의 목차를 굳이 12월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구성한 이유는 그 시간의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정글이라는 말에 끔찍이도 공감하며 조금이라도 쉬면 도태된다고 배웠던 제가 남들과 반대로 가는 제 시간을 두려워하며 견뎌 온 흔적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입니다. (6쪽)

 

이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된다. 12월에서 시작해서 1월로 끝난다. <여는 글> 마음이 체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그 '힘'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겨내라는 엄마 무엇이든 시작하라는 아빠, 어디 돌아다니기보다는 침대에 24시간 누워 있는 게 더 재미있을 듯하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아니면 너무 사랑하는가?, 나는 파리가 되고 싶지 않다 무기 하나쯤 있는 벌이 되고 싶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의지하되 의존하지 않는 관계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됐던 주변인들의 행동 10가지, 낫게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은 죄책감을 만든다, 저는 우울한 거지 불행한 게 아닌데요?, 어설픈 위로보다는 어설픈 침묵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실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점에 솔깃했다. 왜 지금껏 우울증을 직접 앓아본 사람이 아닌, 그냥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보았을까. 진짜 어떤 느낌인지는 우울증에 걸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존재감이 제대로 느껴졌다. '이 책은 우울함을 가장 친근한 감정이라고 느끼는 한 사람이 그 우울함을 좀더 잘 다루게 된 이야기일 뿐 치료 방법이 아닙니다'라는 말에 동의하며 저자의 이야기에 집중해본다.

 

우울증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우울증임을 나에게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잠만 자고, 자꾸 일을 미루고, 밖에 나가지 않는 게 다 내가 게을러서인 것 같았다. 아픈 게 아니라 게을러서라고.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가끔은 치료받기로 한 내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우울한 마음은 누구나 들고 그걸 달래기 위해 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괴로웠다. (95쪽)

지금 이 시대에는 자신이 우울한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우울함 탓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고백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우울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단정지었나보다.

 

읽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읽다보면 타인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힘든 줄도 모르고 힘들었던 날들, 우울한 줄도 모르고 애써 감정을 외면했던 지난 시간의 나를 돌아보고 토닥여준다.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얘기라고 생각되는 순간부터 이 책에 대한 몰입도는 달라진다.

나는 남들의 의견에 잘 따르는 편이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만날지 등 약속을 잡을 때 상대의 말에 따르곤 한다. 나는 이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 속을 열어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내 이타적인 모습은 남들의 쓴소리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나왔다. 거절당하거나 부정적인 말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남들에게 친절하게 굴고 잘 보이기 위해 한 양보들은 남이 나에게 조그만 상처도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기적인 나는 쓴소리를 듣기 무서워 친절이란 방패로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123쪽)

 

그렇다고 심각하고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의 일상 속에서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고, 어떤 때에는 꽤나 공감이 되어서 '맞아'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식사를 하는 도중 엄마께서는 다 털어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게 20만 원을 주시면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도 하셨다. 그 순간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재벌 사모님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거 받고 내 아들한테서 떨어져!'

내 우울과 무기력에게 당장 내 딸에게서 떨어지라고 엄마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53쪽)

 

 

 

많은 사람의 인터뷰가 실린 우울증 수기를 읽었다. 그들이 지닌 아픔과 증상은 모두 달랐다. 치유하는 방식도 달랐다. 그제야 나는 우울의 증상이 각자 다름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안도했다. 나도 아플 수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게는 내가 가장 아프고 힘들다. (128쪽)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아픔과 증상은 모두 다른 법이다. 몸이 아프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한데, 극복하는 과정도 제각각이다. 이 책 165쪽에 보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됐던 주변인들의 행동 10가지'가 있는데, 우울증뿐만 아니라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갈 때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파보면 주변 사람들이 더욱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우울증을 앓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이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리라 본다. 우울증은 어쩌면 현대인이 처한 상황에서 당연스레 나타나는 병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치료해야하는지도 몰랐던 병을 들여다보고 내 마음을 토닥여본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해야하는 질병임을 인식하고, 자신이나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거든 이해의 폭을 넓혀야할 것이다. 일단 펼쳐들면 남 얘기 같지 않음에 집중해서 읽게 되고, 어쩌면 전문가의 이론보다 실질적인 이야기여서 이 안에서 치유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울함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아는 한, 그 감정도 잘 겪어낼 수 있을 저자의 앞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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