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시대에는 백수로 사는 것이 흠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했다. 특히 계급에 따라서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귀족이나 양반 같은 상류층 계급은 한결같이 노동에서 벗어난 집단이었으며, 그래서 정신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대의 사상가들은 어쩌면 지금 시대로 소환한다면 취업의 고통과 살림 살이 걱정에 휘둘릴 수도 있을 것이다. 18세기 조선의 사상가 연암 박지원의 앞에는 입신양명의 꽃길이 열려 있었지만 그는 그 궤도에서 이탈하여 기꺼이 백수의 길로 나섰다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궁금해서『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를 읽어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고미숙. 고전평론가이다. 취업난에 내몰린 청년들과 함께 자립 공동체를 꾸리면서 얻은 노하우를 고전의 지혜와 버무려 청년을 위한 자기계발서로 엮었다. ‘나머지, 쓸모없음, 버려짐’의 의미로서의 ‘백수’를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매니지먼트하는 프리랜서’로 보는 시각을 제안한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2장 '우정, 백수의 최고 자산', 3장 '집의 시대에서 길의 시대로', 4장 '배움에는 끝이 없다'로 나뉜다. 밥벌이와 자존감(노동), 친구는 제2의 '나'다(관계), 청춘은 유동한다(여행), 네버엔딩 쿵푸 등의 내용을 볼 수 있다. 부록으로 '명랑한 백수 생활을 위한 100개의 강령'이 수록되어 있다.

 

제발 꿈꾸지 마라! 꿈은 망상이다. 망상은 부서져야 한다. 망상 타파! 청춘은 청춘 그 자체로 충분하다. 아니, 삶이 통째로 그러하다.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살지 않는다. 어떤 가치, 어떤 목적도 삶보다 더 고귀할 수 없다. 살다 보니 사랑도 하고 돈도 벌고 애국도 하는 것이지, 사랑을 위해, 노동을 위해, 국가를 위해 산다는 건 모두 망상이다. 하물며 화폐를 위해서랴? 성공한 다음엔 공황장애, 성공하지 못하면 우울증. 이 얼빠진 궤도 자체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러니 제발, 방상을 타파하자.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청춘의 생동하는 얼굴과 마주하게 될 터이니. 그럼 대체 무슨 길이 있느냐고? 그걸 같이 탐색해보자. 백수의 원조 연암 박지원을 가이드 삼아. 밑져야 본전 아닌감? (14쪽)

 

이 책을 읽다보면 연암 박지원에 대해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저 옛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와 교집합을 찾아내어 장점을 끄집어낼 수 있고, 움츠러든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더욱 몰입해서 읽어나간다. 지금 시대에 살기에도 대책없다고 해야할까. 노론 명문가에다 대대로 부마를 지낸 로열패밀리 금수저 출신이지만 우울증에 걸린 10대 소년 박지원의 이야기를 보며, 그것도 18세기 조선에선 아주 드문 질병이었다는 설명을 보며, 만만치 않은 그의 삶을 가늠해본다. 거식증에 불면증 증상을 나타내는 우울증을 그는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며 자기치유의 길로 나섰다. 이 점이 청년 연암과 우리 시대 청춘이 연결되는 지점이라며 이 책은 설명을 이어나간다.

 

처음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읽어나가다가 어느덧 그 발언에 동조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이미 백수란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되는 것이지 자발적으로 백수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과 연계해서 풀어나가는 저자의 입담에 어느덧 매료되고 만다. 저자 고미숙은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지도 모를 고전을 소재로 현대의 언어로 생생하게 되살리는 마법을 부린다. 그래서 저자의 책을 즐겨 읽는데, 이번 책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동안 혹은 사회적인 관점으로 고정적인 시선이 되어버린 나의 시각을 새로이 돌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이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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