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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이 한 문장이 전부였다.
2015년 6월, 부득이한 사정으로 넓은
서재가 딸린 프랑스의 시골집을 떠나 맨해튼의 침실 한 칸짜리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알베르토 망겔은 자신의 서재에 있던 3만 5천여 권의 장서들
중 가져갈 책, 보관할 책, 버릴 책 등을 분류하면서 추억과 명상에 잠긴다. (책 뒷표지 中)
이 글만 읽었을 뿐인데, 막막하고 속이 쓰린다. 이내 정신 차리고 책을 분류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떠올린다. 그냥 바로 감정이입에 들어갔다. 남 얘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늘 뒤로 미루고 살고 있는 '서재
정리', 책과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인데 서재를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기에 이
책『서재를 떠나보내며』를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이
책의 저자는 알베르토 망겔. 2018년 구텐베르크 상 수상자이자 현재 아르헨티아 국립 도서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작가이자 번역가, 편집자, 국제펜클럽 회원이며, 구겐하임 펠로십과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책의 수호자', '우리 시대의 몽테뉴',
'도서관의 돈 후안' 등으로 불리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서가이자 장서가로 평가받고 있다. 십대 후반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고, 시력을 잃어가던 그에게 4년 동안 책을 읽어주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1968년 아르헨티나를 떠나 스페인, 영국, 타히티,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등에 거주하며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1985년에
캐나다 국적을 얻었다.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된다. 한국어판 서문 '모든 서재는 자서전이다', 서문 '영혼의
진료실을 떠나보내며'를 시작으로 1장 '책 싸기와 책 풀기', 2장 '서재의 해체', 3장 '다락방에 틀어박힌 작가', 4장 '위로와 안식의
장소', 5장 '상실과 창조', 6장 '부활의 의례', 7장 '문학에서의 꿈', 8장 '생애 최초로 사서가 되다', 9장 '도서관과 시민
공동체', 10장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감사의 말과 옮긴이의 말 '바벨의 도서관에서 책 제목 읽기'로 마무리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재 정리에 돌입하고는 사색에 잠겨있는 알베르토 망구엘을 떠올린다. 사진을
정리하다 추억에 잠겨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한 장 한 장 꺼내들며 그 당시의 상황과 사람들의 사연과 그에 대한 감상을 주루룩 훑어본
적이 있다면, 책을 정리하며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어쩌면 대대적으로 서재를 정리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난제일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 많은 책들을 정리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책을 하나씩 꺼내들며 그것을 읽을 때에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
책에서 어떤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들려주는 책이다.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나의 서재가
서 있던 평화로운 장소, 그걸 짓는 데 걸린 시간, 내가 그곳에 있을 때 얻은 책들. 나는 이렇게 자문했다. 나는 어떤 이유로 이제 번호 매겨진
상자 속으로 들어가게 될 책들을 수집했는가? 나는 무슨 변덕으로 이 책들을 지구본 위의 색칠된 국가들처럼 만들었나? 이런 연상들을 불러온 것은
무엇인가? 이 연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정서가 있어야 의미가 있고 또 더 이상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논리의 규칙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현재의 나 자신은 오랜 강박증을 반영하고 있는가? 만약 모든 서재가 자전적인 것이라면 서재 해체는 자기 부고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런
질문들이 이 비가의 진정한 주제인지도 모른다. (86쪽)
이 책을 읽다보면 책에 대해 보통 수준의 관심으로는 이런 글이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우러나지 않는다면, 이럴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책을 꺼내들고 하나씩 생생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감탄하며 읽어나간다.
카프카의 텍스트는 꼼꼼하고 냉소적인 동시에 근업하며 각 장은 -그의 말대로- "한 땀 한 땀
고통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다. 카프카는 내게 절대적인 불확실성을 제시하는데, 그건 나
자신의 많은 불확실성과도 부합한다. 가령 눈 속에 서 있는 나무줄기에 대한 그의 묘사를 보라. "겉보기에 나무들은 빛을 내며 서 있다. 약간만
밀어도 눈 위를 구를 것 같다.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무들은 땅속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이
또한 겉모습일 뿐이다." 나는 카프카의 책을 펼칠 때마다 일종의 신학적 직관을 부여받은 느낌이 든다. 우리에게 행복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걸
누리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신을 향해 천천히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느낌. 카프카가 볼 때 에덴동산은 여전히 존재한다. (76쪽)
세계의 명작들을 간접적으로 다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눈을
번쩍 뜨고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이런 느낌의 책이 참 좋다. 누군가의 전달에 의해서 값진 명작들을 훑어보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고, 이 책의
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따라가게 되었다. 경이로운 느낌에 감탄하며 읽은 책이어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