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사랑과 상실에 관한 포토 에피그램
헤르츠티어 지음 / 싱긋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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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말도 많고 글도 빽빽한 세상에서 가끔은 절제된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으니 말이다. 이 책『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은 사랑과 상실에 관한 글과 사진을 담은 에세이다. 글과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놓치고 흘려보낸 내 마음이, 글쎄 여기 그만

우리들 사랑으로 있더라!

_김민정 시인

 

 

이 책의 저자는 헤르츠티어. 사진가다. 이 책을 찍고 썼다. 마음을 뜻하는 독일어 'herz'와 짐승을 의미하는 'tier'의 합성조어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뮐러의 동명 소설『마음짐승』속 한 문장에서 그 이름을 빌려왔다. 낮에는 문학 편집자로, 퇴근 후에는 길에서 사진 줍는 사람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길 위의 성실한 관찰자로서 우리 삶의 비의와 사랑, 슬픔이 맺혀 있는 인상 깊은 순간들을 사진에 담아왔고, 그라폴리오 스토리전 Vol.1에 참여해 석 달간 첫 사진전을 갖기도 했다.

나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이 사랑하고 상실의 슬픔을 인정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되길 바란다. 사랑뿐 아니라 그 슬픔 역시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5쪽_프롤로그 中)

이 책은 절벽에 매달린 나의 밤으로, 추억은 무례하다, 다가가 이름을 부르자 그 별은 금세 졌지, 어젯밤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지만, 네가 거기 있어서 나도 거기 있었다, 슬픔의 중력, 밝은 방, 사랑 장례식 등 총 8부로 구성된다. 슬픔의 다섯 가지 극복 단계 즉,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을 본문 구성으로 취한다.

 

아, 이런 것도 사진으로 찍는구나. 이렇게 글을 붙여놓으니 숨결이 불어넣어지는구나! 감탄을 하며 읽은 책이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닐, 숨기고 싶은 것일지라도, 그건 아니라고 알려준다. 세상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조용히 속삭여주는 책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가다듬어 다른 방향으로 눈길을 주게 만든다. 좀더 깊게, 좀더 느리게 천천히,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함께 지켜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간다.

 

 



바라보는 순간 대상에 깊이 공감하고 멀찌감치 떨어졌다가 한순간 아예 그것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그의 포용적인 시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모호한 것을 선명하게 묘파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무심히 흘려보낸 우리 일상의 순간들이 그의 사진 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게 된다. (저자 소개 中)

그의 글과 사진에 대한 이 글이 아마 책을 열면 '아, 그렇구나!' 하면서 마음에 확 와닿을 것이다. 어느새 집중하며 읽어나간다. 사진에 숨결을 불어넣은 글과, 글에 현장성을 심어주는 사진은 함께 있기에 비로소 커다란 의미로 자리잡는다.

 

꽤나 독특하고 신선한 느낌의 사진집이다. 적절하게, 간결한 언어로 마음을 뒤흔들어주는 책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몇 마디 없어도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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