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는 강물이었다
이학준 지음 / 별빛들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절' 그것은 눈부실 정도로 빛나지도, 끝없이 연속되지도 않습니다. 라며 책날개에 표지에 대하여 언급한다. 표지를 보면 단순하면서도 똑같지만은 않은, 모르스 부호 같기도 한 그 무엇이 눈앞에 펼쳐진다. 강물일까. 작가는 자신을 강물이라 하고, 강물이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한다고 한다. 남들과 비슷한 듯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일까. 글씨의 크기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눈의 피로를 느낀다. 어쩌면 이 책을 한꺼번에 읽어나가지 말고 조금씩 음미하며 뜯어보라는 작가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이지 않은 책《그 시절 나는 강물이었다》를 읽으며 저자의 생각을 들여다본다.

 

 

바람은 별 뜻도 없이 부는데 강은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하려 물결을 낸다. 연약하면 수고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세상 이치 같아서 나는 그 광경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물결은 차례도 없이 생겨나가기만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문득, 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내게 되려, 네 속은 왜 그리 굳은 삶이 앉았냐고 강은 물어왔다. (21쪽)

 

이 책의 저자는 이학준. 1990년 경주 출생이다. 작가는 지금까지도 불리는 '문학소년'이란 별명이 십대 때는 싫었다고 한다. 이십대에 접어들어 그렇게 부끄러웠던 나를 글로 써보기 시작했다. 스물다섯에 수필집 한 권을 스스로 냈다. '괜찮타, 그쟈?' 글로 써버리고 나니 정말 괜찮은 일이 돼 있었고, 제목도 똑같이 붙였다. 이제 스물여덟, 현재도 강물처럼 경주와 서울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런 날, 꽃 한 송이 때문에, 젖은 낙엽, 은사, 모란, 필름 카메라, 안정기, 경주, 걸음마를 뗀 자식, 첫 문장을 쓰기 참 어렵더라, 한강을 놓친 이유, 핫도그, 그물, 빵, 젊은 부부, 이사, 늙어진 나룻배, 장염, 성수부동산 파라솔, 나는 노래나 부른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부전역 승객, 기다림, 얇은 손목, 얌전한 구름, 이별택시 등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글자를 이렇게 작게 해서 출간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이 책을 읽는 일은 눈의 피로를 더하는 일이었다. 한꺼번에 많이 읽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인터넷상이라면 활자 크기를 키워서 읽을 수 있겠지만, 집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돋보기를 구비해놓은 것도 아니고. 어쩌면 활자 크기를 작게 해서 숨기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를 한정짓는 것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과연 무엇일까. 일반적이지 않은 모양새에서 혹시나 의도되었을지 모를 무언가를 찾는다.

학창 시절엔 누구라도 감추고 싶은 게 있다. 나는 유독 그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흔들거렸다. 그래서 일부러 교복 바지 단을 줄여서 다녔고, 머리엔 염색물을 들였다가 뺐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면 더 이상 흔들거리지 않고 육지처럼 무뚝뚝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내가 육지의 적막을 샘할 때마다 계속 노를 내리셨다. 당신의 뱃머리가 향하는 곳 없어라도 노를 내려 물결 띄우는 탓에, 그 시절 나는 강물이었다. (23쪽)

 

글은 짧게 풀어낸다. 어떤 때에는 곧바로 장면이 바뀌어버리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다. 좀더 이야기를 풀어내도 될 것을,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는 되어 있는데…. 생각했다. 평범한 스물 여덟 청년이 하는 듯한 이야기였다가, 어느 순간 보면 작가의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한 마디에 새삼 놀라며 읽어나갔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시인들이 많다. 문득 바람이 불어와 산과 나를 한꺼번에 문지르고 가면, 그럴 때 잠깐 동안 나도 시인이 된 기분에 빠져든다. 산은 박목월을, 김동리를, 또 누군가를 기억해뒀다가 오늘 내 시선에 그들을 입히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취한 듯 시인이 되어서 경주를 걷는 것이 좋다. (38쪽)

 

글을 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을 다 내보여야하기 때문이다. 이건 창피한데, 이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글로 적을 수 있는 소재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러다보면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모습을 드러내려면 분명, 용기가 필요하고 세상을 향해 내놓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일단 세상에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한 걸음, 시작이다. 앞으로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는 작가다. 다만 다음 책은 글자크기를 좀더 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겉모습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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