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예전에 후지와라 신야의《인도방랑》을 읽어보았다. 그때의 느낌이 강렬해서일까.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무조건 읽어보기로 했다. 읽어야 할, 혹은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이 책부터 펼쳐들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읽어나가면서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다. 여행에 대해 생각했고, 여행을 하는 사람에 대해 사색에 잠긴다. 여행의 빙점에 대해 고민해본다. 이 책에 담긴 사진을 읽고 글을 그려본다. 시간과 공간에 머무르는 인간들… 생각이 많아지는 책《동양방랑》이다.


 


사람이 살면서 몇 번의 고비를 만나듯이 여행에도 빙점이 있다. 여행 초기의 뜨거웠던 피는 식고 마친내 그것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얼어붙는다.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을 일생일대의 인연으로 여기고 소중히 대하기로 했다. 변두리 유곽의 창녀에서 심산에 틀어박힌 스님까지 그 어떤 인간이든 철저히 사귀기로 했다. 여행의 중반, 갑자기 나는 회생했다. 또다시 인간이 한없이 재미있어졌다. 얼어붙은 여행이 녹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되찾았다. 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다.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의 빙점을 녹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체온이다. (책표지 中)

 


이 책은 후지와라 신야의 에세이다. 후지와라 신야는 1944년 일본 후쿠오카 현 모지 시(현재 기타큐슈 시 모지 구)에서 태어났다. 1969년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인도로 떠난다. 이후 서른아홉 살 때까지 인도, 티베트, 중근동, 유럽과 미국 등을 방랑한다. 1972년에 펴낸 처녀작『인도방랑』은 당시 청년층에게 커다란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8년의 인도방랑 후의 여정을 그린『티베트방랑』은『인도방랑』과 더불어 저자의 원점이 되는 대표작으로 사랑받고 있다.『동양방랑』은 1980년에서 1981년까지 터키, 시리아, 인도, 티베트, 미얀마, 중국, 홍콩, 한국 등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400여 일간의 여정으로, 삶의 임계점에 도달한 저자가 다시금 존재의 의미를 되찾게 한 '동양극장'이라는 무대 위의 "비할 데 없이 인간적인 곡예"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全東洋街道(上,下)』(후지와라 신야, 1982/1983, 슈에이샤) 문고판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된다. 1장 '겨울해협/이스탄불', 2장 '양 창자 수프/앙카라', 3장 '장미의 나날/지중해,앙카라', 4장 '몽해 항로/흑해', 5장 '이슬람 사색 기행/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6장 '동양의 재즈가 들린다/콜카타', 7장 '심산/티베트', 8장 '황금빛 최면술/버마', 9장 '풀의 창루/치앙마이', 10장 '신이 없는 대성당/상하이', 11장 '보름달 밤, 바다의 둥근 돼지/홍콩', 12장 '붉은 꽃, 검은 눈/한반도', 종장 '여행, 결국 사상이다/고야산, 도쿄'로 나뉜다.


묘한 매력으로 나를 끌어들이는 책이다. 한밤중부터 새벽이 오기 전까지의 느낌이 나는 사진과 글이다. 사진을 슬쩍 넘겨보아도 어두침침하지만 깜깜하지는 않다. 음침하고 끈적끈적하면서도 철저히 관찰자가 된 듯한 느낌으로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을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여행은 무엇인지, 보다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여행은 어땠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때로는 사람이 좋았고, 때로는 사람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사람이 싫어 자연경관에만 시선을 주다보면 무언가 밋밋하다. 결국에는 다시 '사람'이라는 주제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서 접하는 이야기는 후지와라 신야만이 들려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 통통 튀거나 여행을 예찬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인간적이다.  대충 넘길 수 없는 글과 사진에 시선을 집중한다. 어쩌면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사람들,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체온이 약간은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여행 앞에서 머뭇거려지게도 되지만, 또 나만의 여행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피상적으로 글만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르게 정신을 일깨우며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면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주기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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