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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영혜도 어릴 때 가정폭력을 당했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가 꿈을 꾼 것 때문에 폭발한다. 영혜의 형부는 물리적인 폭력을 당한 것 같지 않지만, 교육자 집안이라는 배경에서 풍겨 나오는 억압적 분위기라는 폭력에 의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눌러 놓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영혜의 언니 인혜는 어떤가? 영혜와 마찬가지로 가정폭력을 당했지만, 역시 억눌러 놓았다가, 영혜의 사건으로 인해 살짝 삐져나왔지만, 아이 때문에 영혜처럼 폭발하지는 못한 것 같다. 영혜의 아버지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는 전쟁이라는 아주 극한 폭력 상황에 놓여 있다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영혜는 결혼하고도 남편에 의한 폭력을 당했다고 보여진다. 물리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존재 자체에 대한 무시를 당하는 학대를 받았다고 보여진다. 육식을 안 하고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가 꿈을 꾼 것 때문이라는 말에 황당해하고, 자신의 직장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고 할 뿐 대화가 없다. 처음에 영혜와 결혼할 때도 영혜라는 존재 자체를 어느 정도 알아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병풍처럼 세워 놓기에 평범하고 무난하기 때문이었다. 인혜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가정일에 무관심했다. 남편은 자기 동생과 엄청난 일을 저질러 인혜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입힌다. 남편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한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폭력을 인혜에게 행사한 것이다. 영혜의 아버지도 다 큰 결혼한 딸에게도 자기의 말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여전히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방식도 달랐다. 인혜는 아이 때문에 다시 누른다. 인혜의 남편은 억눌린 욕망을 폭발시킨다. 영혜는 비폭력적 저항으로 육식을 거부하다가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어한다. 영혜는 아주 오래전에 입은 트라우마지만 지금 현재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그것을 끊어버리고 싶어하는 무의식의 발동인 것 같다. 브레지어를 하지 않는 이유가 답답해서라고 하는데,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것 같다. 흔히 화병을 가진 사람들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자신이 유일하게 살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의식적으로 채식주의자가 되었지만, 동박새를 헤치는 본능을 제어하지 못한 것과 자신의 젖가슴을 이햐기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2007년에 쓰여진 이야기이지만, 이 시대에도 여전히 아동 학대라든가, 묻지마 폭력이 심심치 않게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는 이 때, 또 폭력을 행사한 이들이 변명이나 핑계처럼 어릴 때 자신이 받은 학대와 폭력 때문이라고 하는 이때에 영혜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 계속 생각이 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