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깨물기
이노우에 아레노 외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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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래서 덮어놓고 읽기 시작한 기억깨물기.

알고 보니 에쿠니 가오리 한명의 책이 아닌 여러 여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이었다.

일본에서는 출판사에서 특집으로 하나의 주제나 소재를 주고 작가들이 그에 대한 소설을 쓰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예전에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이 포함되어 있던 50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고, 또 언젠가는 이번처럼 여성 작가들만의 음식에 대한 추억 등을 다룬 책이 있었다. 이번 책의 주제는 초콜릿~

초콜릿에 얽힌 사랑의 이야기들이 작가들의 특성에 맞춰 풀려 나왔다.

 

에쿠니 가오리는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참 그녀의 범상치않은 성격 등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느낌이었다.

이번은 좀더 섬뜩한 느낌이었달까? 차갑고 깔끔, 단아하게 딱 떨어지는 이미지는 그렇다쳐도 이번 편은 조금 섬찟하게마저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였다.

어떨땐 그녀의 많은 이야기들에 공감이 가다가도 또 어떨땐 내가 너무나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차가움에 깜짝 놀라고 만다. 이번 이야기가 그랬다.

<늦여름 해 질 녘>이라는 제목의 단편이었는데 시나라는 여주인공은 남자친구를 엄청나게 좋아하면서도 워낙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성격이 강했기에 절대로 자신의 방에 남자친구의 흔적이 남기를 바라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사준 선물에 시트를 씌워 가려놓았다면 말을 다했달까? 그렇게 차가운 여성이었지만 여행지에서는, 한 달 전 그 여행지에서는 남자친구를 먹고 싶다라고 말을 한다.

먹는다고? 소위 생각하는 그런 야한 발상은 접어두라.

그녀는 정말 그를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농담이라니..

"당신을 먹으면 당신은 내 일부가 되잖아? 그러면 항상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세상 무서울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 40p

뭐 나 또한 우리 아기를 끌어안고, 쿠앙! 엄마는 괴물이다 잡아먹겠다~ 뭐 이런 농담을 하다가 친정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기도했지만.

내 나름으로는 애정의 표현이었고 그냥 볼에 무는 시늉을 한다거나 뽀뽀만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 시나가 한 말에 남자친구는 멈칫하는듯 하다가 실제로 자기 피부를 살짝 칼로 벗겨내 (아주 공을 들여 조심조심 벗겨내)그녀에게 주었다.

헉!

그리고 그녀는 마치 대단히 맛있는 것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탄성을 지르고 그것(?)을 음미하고 삼키기까지 한다.

음, 이런게 사랑이라면 내 눈엔 ,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그런 상황인데 말이지.

세상 다른 사람 모두의 일을 다 내가 이해할 수는 없을 듯.

초컬릿이 주제지만 그보다 더 섬뜩함을 주었던 그녀의 이야기에.. 정작 초컬릿은 어떻게 색이 입혀졌을까? 궁금해서 마저 읽다보니

장을 보러 마지못해 집에서 나왔는데 골목길에 서 있던 어린 여자 아이, 하지만 세상 다른 사람들에게 무심해보이는 그 여자아이에게서 어른스러워보이는 자신의 어릴적 모습을 바라본다.

그 아이가 손에 들고 마치 담배갑처럼 보이던 그것은 초콜릿이었다. 이런 느낌의 글을 써내었다.

 

가와카미 히로미의 금과 은은 육촌 오빠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아주 어릴적부터 보아온 오빠. 주로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증조 외할머니의 장례식, 외할머니의 장례식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아무도 하루를 제대로 대응해주지 않았다. 말투도 가볍고, 어린 아이가 보기에도 쯔쯔 소리가 저절로 나올법한.

그래서인지 아무도 그를 어려워하지 않고 이름을 마구 부르고 일도 마구 부려먹고.

그도 그 나름대로 힘들 게 많을텐데 말이다.

그렇던 하루, 그런 그였는데 어느새 여자가 되어버린 나를 보고 놀라지만 한번도 여자로 대우해주질 않았다.

그나저나 당연한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육촌지간이라 사촌이나 친형제보다 약간 더 거리가 있긴 하지만 분명 친척인데 말이다.

그런데 맨 나중을 보면 그를 좋아하고 있다며 여성으로써의 느낌을 비추는 것을 보면.. 그 언젠가 일본은 아직도 친척 지간의 결혼이 통용되고 있다는게 맞는 말인가 싶어졌다.

 

그런가 하면 보다 초컬릿에 제대로 심취한 이야기도 나온다.

노나카 히라기의 <블루문>

바에서 우연히 만난 남과 여.

그 바는 안주로 초컬릿이 나오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다. 대부분 여성들이 좋아하지만 간혹 드물게 달콤한 초콜릿을 안주로 술을 즐길줄 아는 그런 남자도 존재하는 법.

그런데 이 여성은 남자에게 자신의 특별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채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하지만 따로 약속을 제대로 잡지도 않고 다른 공간에서 만나지도 않고 서로의 이름도 반쪽씩만 알고 있었다.

앞서서 나가길 두려워했던 그녀. 하지만 분명 그를 기다리고 하루종일 그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그녀가 먼저 한발을 내딛는다는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그저 초컬릿 하면 들척지근한 이야기, 달콤쌉쌀한 이야기만 있을거라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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