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영문학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 책을 미처 읽어보진 못했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웃님들 사이에 꽤나 회자되었던 책이기에 책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낯설지 않게 각인되었다.

줄리언 반스.

 

그리고 그의 맨부커상 수상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최고의 궁합, 최고의 인연이란 무엇일까.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잉꼬라 소문난 사람들이 있지만 꽤 알려진 셀레브리티들이 소문만 무성할뿐 몇년도 안되어 이내 갈라서는 모습들은 지나친 보여지기식이란 생각에서 이제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일들이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유명한 사람들 사이의 부부 문제 연애 문제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법. 여기 최고의 작가와 영국을 대표한 최고 문학 에이전트의 커플이 있었다. 문학 에이전트의 중요성에 대해 미처 잘 알지 못했는데 줄리언 반스의 아내 팻 캐바나의 역할과 인지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나보다. '런던문단의 별이 지다'라는 말조차 식상하다는 그녀에 대한 표현. '외모부터 태도와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까지 티끌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던 사람'-영국의 계관시인 앤드루 모션, '활력 그 자체'- 작가이자 문학비평가 마거릿 드래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걸물이자 패션의 조언가'- 작가 조애너 트롤로프.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문호의 죽음을 기릴 법한 이런 문구들이 바로 캣 카바나의 부고 앞에 따라왔다한다.

그런 여인을 아내로 두었던 줄리언 반스.

30년을 사랑하는 아내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지 37일만에 사망을 했다. 그리고 반스는 침묵을 하였단다. 그의 맨부커상 수상작은 이후에 출간이 되었으나 그는 그의 단편집, 그리고 그 소설책에서조차 아내에 대한 흔적을, 또 언급을 굳이 남기지 않았다한다.

그 이후로 5년의 시간이 흐르고 비로소 내놓은 이 책. 이 책에서조차 식상하게 시작하지 않는다.

전혀 그 아내와 그의 이야기인줄 모르고 읽게 만들 정도로.

의외의 인물들의 이야기부터 시작을 한다.

책의 표지 그림에서처럼 광적으로 기구에 집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말이다.

 

원제가 Levels of life 였다는데, 이 세 편의 이야기들은 비상의 죄 (하늘) 평지에서 (땅) 깊이의 상실(지하) 이렇게 세 층위로 나뉘는 구성의 이야기들이 시작이 된다.

놀랍게도 같은 문장으로.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 사람들이 그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사진과 항공술을 하나로 합친 나다르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구로 높이 떠오른 하늘 위에서 지상을 찍는다는 것. 오늘날로써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만 항공 사진의 시도와 성공이었다는 점은 정말 당대로서는 놀라운 결과가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나다르, 본명으로는 펠릭스 투르냐송인 그의 애처가였던 50여년간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이 되었다. 아내가 세상을 뜨자 견디지 못한 그가 1년후에 아내의 곁으로 따라갔다는 이야기까지도 곁들여져서 말이다.

 

평지에서의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의 나다르와 그의 아들에게서만 사진을 찍게 했던 희대의 여배우 사라의 이야기.

사라와 프레드 버나비. 아쉽게도 난 이 둘을 모르는데 둘다 실존 인물이라 한다. 그리고 이 둘이 사랑으로 엮일뻔했다가 결혼에 종속되기 싫었던 사라의 거부로 프레드와 사라의 결혼이 어그러진 아쉬운 사랑의 이야기는 허구로 엮여진 이야기라 나와 있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만으로는 미처 몰랐다가 뒤의 해설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던 부분이지만 말이다. 이 두 사람 역시 기구에 몹시 매료가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기구와 사랑. 그리고 평지에서 맞이하는 죽음.

 

그리고 정확히 앞의 두 이야기를 합친 분량 만큼의 세번째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바로 줄리언 반스와 팻 캐바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말이다.

그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말하기보다 그저 미쳐버릴것같았을 그의 심경들이 드러난다. 과묵했을지언정 속마음은 정말 날이 설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을 그의 모습.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많이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어릴 적에 처음으로 맞아야했던 친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친가 가까이에 살아서 늘상 주말마다 할아버지댁에 가고, 방학에도 늘상 방문하곤 했던 할아버지를 갑자기 잃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손녀였지만 내게는 정말 극도의 슬픔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연이어 있을 내 소중한 다른 가족들과의 이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동안 몸서리처지게 무섭고 두려워졌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엄마, 혹은 아빠를 잃는 꿈을 꾸고 땀으로 흠뻑 젖고 눈물로 얼룩져 소리지르다 혹은 엉엉 울다가 일어나기도 했다.

 

마음이 약한 편이라 연애 역시 쉽게 시작하고 쉽게 이별하고 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만나기보다 헤어지는게 두려워서 시작하기 싫었고, 첫사랑과 차라리 맘 편히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라고도 생각했지만 결혼이란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힘들었지만 이별이 지금의 나에게는 오히려 더 행복한 삶이 되는 계기가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연애의 이별이 아닌 결혼의 사별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내 평생을 함께 할 사람, 내 아이의 아버지, 내 전부를 준 유일한 사랑인 이 사람을 잃는다면...? 이라는 가설은 너무너무 나를 힘들게 만든다.

하필 얼마전 같이 식사를 한 친구가 갑자기 아는 이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게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몇시간씩 운전하며 출퇴근하는 신랑에게도 운전을 조심하기를 몇번이고 당부를 하였다. 신랑도 사실 아침에 나와 불화가 있거나 하면 운전할때도 영향이 있다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제발 신랑 속상하게 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지 싶었다.

 

30년이나 사랑했잖아요.. 란 말은 앞으로 온 생애를 다바쳐 사랑을 해도 모자랄 부부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일 수 있다. 기간이 중요한건 아니겠지만 줄리언 반스는 우리 부부보다 더 오랜 결혼생활을 했구나 하며 비교하게 되고, 부러워하게 되었다 말을 한다. 그리고 어줍잖게 슬픔을 극복하라는 주위의 조언에 그는 불같이 화가 나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감히..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떴음에도 세상은 멀쩡히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하하호호 웃고 그런 삶들이 정말 못견디게 힘들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잠시 집을 떠나있으라며 그러는 동안 작가의 집은 자기네가 들어와 관리해주겠다며, 우리 강아지도 그걸 좋아할거에요 하고 뻔뻔스레 말한 지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과감히 글쓸 생각을 다했을까. 얼마나 얄미웠을까. 마치 남의 불행을 즐기기라도 하듯,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사실.. 정말 소중한 사람이 아픈 일을 겪었을때 나 역시 뭐라고 위안할지를 몰라 통상적인 말로 위로하거나 할때도 있지만.

혹은.. 미처 뵙지 못해 잘 알지 못하는 분이라도 내 지인이 소중히 여기는 분이었을 경우 그 감정을 참지 못해 그냥 마냥 같이 울어주기도 했었다.

나이가 들수록 울음이 제때 잘 나와주지도 않지만 말이다.

 

사랑이란..

줄리언 반스의 아내에 대한 이런 감정과 절제된 표현, 하지만 무조건 참아내고 승화해버린 표현 그 이상으로.

자신의 힘든 감정과 경험에 대해 솔직히 적어낸 이야기들은 정말 깊이 와 닿았다.

나라도 그럴 것이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책이 잊혀질 무렵에 그런 일이 오더라도. (사실 오지않기를.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의 부재는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에. 지금도 사실 내 가족 중 하나라도 잃게된다는 가정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 힘들기만 하다. 배우자건 부모님이건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구를 잃는다는 것은 그냥 내가 무너지는 일밖에 남지않을 것 같다.) 나 역시 절제하기 힘들 그런 감정들일 것이기에.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줄리언 반스의 그 글들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그렇게 사랑한다. 내 가족을..

그리고 줄리언 반스와 팻 캐바나의 아름다운 사랑 앞에 다시한번 깊이 고개가 숙여지고 마음이 끌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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