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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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강국인 일본에서, 화려한 그림체의 그림도 아니고, 버라이어티하거나 극적인 소재를 다루지 않고서도 그저 평범해보이는 선, 밋밋해보이는 그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작가의 만화가 있으니 바로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이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본 사람들은 전체를 다 사들여 읽기도 하는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 이거 정말 내 이야기인걸?"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는 은근히 중독성이 강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일상의 힘이 진정으로 강하달까?

사실 그녀의 책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읽는 책마다 마음에 들어서 조만간 다 읽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수짱에게 썸남이 생겼단다. 두근거리게 하는 그 남자, 쓰치다의 이야기. 그래서 수짱과의 로맨스가 실릴 이야기로 기대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수짱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마스다 미리 작가가 직접 만화에 등장해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아니, 작가님 무슨 일이세요? 하지만 작가 본인은 작가가 만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노라고 만화에 직접 등장한 이야기를 그렇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늘 여자공감의 입장에서 읽다가 이번에 쓰치다의 이야기를 읽으니 이것또한 새로웠다.

쓰치다는 누구나 착하다고 할 사람이고 정말 성실함이 온몸에 배어있는 그런 남자다. 싱글경력 6년째인 32세의 미혼 남성이고, 10년차 서점직원이기도 하다.

존재감은 약하다고 되어있고, 이름도 별명도 쓰치다, 하지만 결혼 욕망은 아주 강한 지극히 평범한 남자.

 

서점에서도 아주 성실히 일하는 쓰치다지만 대기업 출판사의 3년차 영업 여사원보다 연봉이 적다는 것을 알고 살짝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후배 직원이 그래도 우리는 계약직 누구씨보다는 낫잖아요 하는 말에 저 사람보다 낫다는 그런 마인드로 일을 해서는 안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한다. 생각 곳곳이 다 선함과 강직함이 배어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직장에서는 좋아하겠지만 본인은 피곤할 정도로 자신의 시간마저도 일에 쪼개어 쓰는 사람이다. 출세를 위해 영악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쓰치다의 삶이 피곤하고 멍청해보일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약삭빠른 사람들만 있는게 아닌가 보다. 수짱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이 남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존재감은 약했을 지언정, 주위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전파할 수 있는 그런 소유자였다.

 

미슐랭 가이드라는 책을 보고, 나와 평생 관련 없을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또 서글퍼지는 쓰치다씨. 후배마저도 푸아그라라는 식재료를 먹어봤대서 어디서 먹었냐하니 친구 결혼식에서 먹어봤단다. 일본의 결혼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의 피로연만 생각하고 결혼식에서 푸아그라라니 가당치도 않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결혼식을 화려하게 하는 대신 아주 절친한 사람들만 불러서 음식도 고급으로 대접을 하고 대신 초대받은 사람들도 축의금이나 선물을 상당히 비싼것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수가 초대되어 비슷비슷한 곳에서 부페를 먹는 우리네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고 말이다. 아마도 그런 결혼 문화다보니 결혼식에 푸아그라를 내놓는 일도 가능하였나보다. 그렇게 쓰치다는 먹어본 적 없는 푸아그라를 자기 결혼식에 내놓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지극히 평범하고 월급도 많지 않은 월급쟁이 신세지만 연애를 하게 된다면 여자친구와 프렌치 레스토랑에도 가보고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식당에도 가볼 수있겠지. 하며 생각을 한다. 시커먼 남자후배랑은 가보기 싫고, 아르바이트하는 여자애에게 말을 했다가 혹시나 귀찮게 집적거린다는 오해를 살까봐 말조차꺼내기 힘든 쓰치다씨. 생각은 많아도 주위 사람들에게 혹시나 오해를 받거나 피해가 될 행동은 하질 못한다.

 

쓰치다씨의 연애 이야기뿐 아니라 서점이라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다른 손님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의 일을 대하는 자세들을 엿볼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강직한 사람이 있을까. 다른 사람을 이렇게 배려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감동을 주는 이였다.

 

잘못된 시선으로 보면, 지나치게 일을 만들어서 하는 기회주의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지만 쓰치다씨의 진심과는 다르다.

피곤해보이더라도, 그냥 그 일 자체를 즐기는 것이고, 일을 만들어 하는 것 같아도 "할수 있는 기회가 눈 앞에 있다 라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데는 정말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팍팍한 직장생활을 할 무렵, 일을 무언가를 더 만들어서 해낸다는 것을 상상하기도 힘들었기에.

물론 직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은 직원이 그 직장을 아주 사랑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그렇게 자기에게 할당된 분량 외의 일을 만들어 할 생각을 하기가 힘이 든다. 그런데 쓰치다씨는 그렇게 매상과 직접적인 연결이 없는 일이더라도 "필요한 일이고 손님들에게 도움이 될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 해내려고 하는의지를 보인다.

 

수짱과의 로맨스는 마치 후일담처럼 뒤에 살짝 언급이 되었다. 그냥 이 책은 쓰치다 씨 그 자체의 이야기였다.

일과 연애, 그 연애라는 것도 아주 의외의 한마디에서 시작되었기에 본인들은 잘 모르는 그런 것에서 시작된 이야기 말이다.

참 여자들의 감정이란 놀랍다는, 그걸 캐치하지 못하고 사는 나이기에 참 둔감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 마스다 미리의 직관이 놀라운 그런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의 책에서 진행될 쓰치다 씨와 다시 만날 수짱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내 주위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 있기에 어쩜 나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는 모습도 보이고, 그런 반가운 부분들을 공감할 수 있기에 더 재미난 마스다 미리 시리즈, 그 이후를 기다리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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