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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주 밖의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 (출애굽기 22:20)
1세기 팔레스타인에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유대인이 적지 않았다. 그 중에는 자신들의 '열심'이라는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서슴지 않고 극단적인 폭력의 힘을 빌리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로마인과 이방인 뿐 아니라 로마에 빌붙어 아첨하는 동료 유대인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열심'을 의미하는 '젤롯'이라고 불렀다. 84.85p
아마존 뉴욕타임스 1위를 차지했다는 이 책 젤롯은 신으로써의 예수가 아닌, 인간으로써의 예수를 만나게 하기 위한 작가의 20년간의 연구로 복원된 책이었다. 인간으로써의 예수에 대한 기록은 의외로 드물어서 20년을 연구했음에도 상당 부분 그의 추측에 의한 부분들이 많이 기록되었다. 물론 그런 부분들은 그럴 것으로 추정된다 하는 식으로 기록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란인인 저자가 미국에 건너가 자신의 모태신앙인 이슬람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부분은 사실 놀라운 이야기였고 성서 연구를 거듭할수록 결론은 신으로써의 예수를 믿기보다 예수라는 사람에게는 감복했으나 종교는 다시 이슬람교로 되돌아온, 다시 또한번의 개종이 이뤄졌다는 부분 역시 특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에서 기독교로, 갑자기 개종하는 경우도 물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긴 하겠지만 모태 신앙인으로써의 이란, 유대인들의 종교는 그들에게 주는 의미가 더욱 각별할 것이다. 가족 사정에 의해 자신들의 종교를 버리게 되었으나, 다시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다른걸 다 차치하고라도 미국에서 그가 느꼈던 10대인 저자가 느꼈던 기독교는 곧 미국이다 하는 부분에는 나도 절대적으로 공감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자발적인 종교 선택과 달리 미국에서 자리잡은 청교도, 기독교도의 영향은 상당히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들어 알고 있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선배의 말을 들어봐도, 우리가 재미있게 봤던 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기독교적 시선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수많은 헐리웃 영화나 소설들도 기독교로 다시 재해석할 수 있다는 데는 정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의도하였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그 속에 숨은 뜻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럴 정도로 그 신앙이 그렇게 뿌리깊이 박혀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선배에 따르면 성서라는 것이 깊이있게 연구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거기에 빠져들게 되어서 내가 이 논리를 뒤집어 반박해보겠다 했던 사람들이 되려 성서연구로 인해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다라는 말까지 전해주었었는데..이 책 젤롯은 그 선배의 말과 정반대의 논리를 펼치는 책이라 내게는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저자는 그런 미국에서 10대를 보내며 예수라는 인물에 깊이 매료가 되었는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한 성서에서 오히려 위배되는 사항을 너무나 많이 발견해 연구를 거듭할수록 실망감이 더해졌다고 하였다. 예수라는 사람을 부정하기보다는 종교인으로써의 예수가 아닌 자기만의 예수라는 사람에 대한 재해석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바로 정치적 혁명가라는 단언으로 말이다.
기독교와 천주교 등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예수가 평범한 사람이었고, 성서에 나온 상당수가 은유적인 표현이거나 혹은 잘못 전해진 해석이라거나 필요에 의해 조작되었을 수있다는 이야기들은 상당히 불편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성서를 제대로 끝까지 다 독파하진 못했지만 종교로써의 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종교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역사적으로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생각만 해왔는데 종교학자들 가운데서도 과학적, 역사적으로 체계적으로 들어맞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수가 있었나보다. 아마도 레자 아슬란도 그런 인물 중의 하나였던듯 하다.
나사렛 예수는 아버지 요셉만 나사렛 출신이었던게 아니라 예수 자체도 나사렛 출신의 가난한 소농이었을거라고 책에서는 언급을 한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요셉이 다윗의 후손이다 하는 것은 학자들이 예수의 다윗 후손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주장이라는것이다.
또 헤로데스의 대량학살을 피해 아기예수가 베들레헴으로 가게되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헤로데스의 어느 문헌에서도 그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언급을 한다.
지금의 신약 성서가 초기 성서의 모든 버전을 다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 공론으로 인정이 된 몇 이야기만 신약에 들어갔다고 들어왔는데, 신약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복음들에 대해서는 사실 여러 소설에서 가끔씩 인용이 되기도 하는바,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어떤 내용일지 많이 궁금했었다. 다빈치 코드나 예언 등과 같은 미스터리 소설들을 보면 기독교, 예수의 이야기가 크나큰 상징으로써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예수의 아내, 자녀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언급이 되기도 하기에 인간으로써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레자 아슬란은 바로 이 신약에 포함되지 않은 복음들에 예수와 그 주변인들의 인간적인 면모 등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언급하였다.
인간 예수를 탐독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오늘날의 위인전이라고 해야한다면 이 책에 걸맞는 이야기가 되려나?
사실 성서를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심이 깊은 편이 아니지만 분명 나도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다 생각하기에 호기심만으로 읽기엔 불편한 부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종교적 의구심을 뒤로 한채 그저 이것이 이 작가의 새로운 주장이다 하는 생각으로 읽어내려간다면, 의문이 드는 여러 문제들을 차치하고라도,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예수님에 대해 색다른 시선, 그러니까 그에게서 신성을 배제하고 인간성만 남긴 부분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는 극히 드문 책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