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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ㅣ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8년간의 에세이를 묶은 울지 않는 아이를 선보인지 5년만에 다시 우는 어른이라는 에세이를 내놓게 된 에쿠니 가오리.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권의 책이 동시에 출간이 되었다. 짝을 이루어 같이 읽어야할 책처럼 말이다.
동시에 나오니 또 동시에 읽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성장일기 같지만, 성장일기 느낌과 또 다른 그런 에세이 속에서 소설 속 그녀가 아닌 실존하는 그녀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때로 소설이나 에세이 등에서 결혼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건 아닌가, 너무 속박으로 여기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나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참 "잘 살고 "있는 듯 하였다. 엄마의 말 중에 "넌 개나 남자나 너무 받들어서 탈이라니까" 12p라는 대목이라거나 일상의 잡다한 일에 관해 "나는 없는 사람이라고 쳐"하고 등을 돌리는 남편에게 최대한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100p 등의 말 등을 보면 , 결혼 생활이 꽤나 귀찮은 굴레인듯 언급했던 그녀의 냉철한 이야기와 달리 남편에게 무척 잘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분명 잘 살고 있는 분들일텐데, 왜 난 걱정하고 있었던 걸까. 어찌 됐건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라며, 오지랖 넓은 기우를 접어두었다.

또다른 그녀의 에세이에서 하이디의 검은 빵 흰 빵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나 역시 어릴적에 본질적인 이야기 외에 그 하얀 빵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동안 목말라있던 적이 있었기에 에쿠니 가오리가 그 이야기를 해서 무척이나 공감을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세 끼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접하며 (물론 그녀는 나와 달리 무척 호리호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지만) 먹는 다는 행위 자체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고 하나의 인생의 큰 기쁨으로 여기는 그녀의 태도에 무척 호의적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에세이에서 먹는 것에 대한 묘사와 구체적인 언급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데 레이즌 버터라니?
호사스러운 덩어리라며 버터를 무척 좋아하는 자신의 식습관을 이야기했는데 버터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어릴 적에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할때도 버터를 만나는 것을 행복해했고, 지금도 빵에 버터를 바르는게 아니라 얹어서 먹는다는 것이다. 버터를 좋아하는 친구와 레스토랑에 갈 적에는 버터가 맛있는 식당을 고른단다. (치즈에 빠진 친구는 봤어도 버터에 빠진 친구는 아직 본 적이 없어서, 참으로 생소하였다.) 그리고 책 속에 인용된 사진이 네모난 버터 사진이라서, 레이즌 버터라는게 순수한 버터 덩어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술안주로 레이즌 버터를? 빵에 발라먹는다는건 이해가 되지만 또 와인에 치즈가 궁합이 잘 맞는다며 먹는 사람들도 봐왔지만 술안주로 버터라니, 그냥 버터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하긴 일본사람들 식습관 은근히 특이한 면이 많았다. 술안주로 우리나라 나물 밑반찬 같은 것을 먹지를 않나, 그냥 우리식으로 입맛없을때 대충 떼우고 마는 밥에 물말아 먹기를 오차즈께라 하며 대단한 고급요리인양, 중역들이 그렇게 드라마 속에서 분위기 있게 차려먹고 서양 영화 속에서도 따라하는 걸 보면 참 미화하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너무 궁금하기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레이즌 버터로 나오는 게 없었다. 다만 레이즌이 건포도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건포도가 박힌 버터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아주 우연히 어느 블로그에서 그 사진을 보았는데 실제로 건포도가 박힌 버터를 안주로 먹는 예가 있단다. 다른 책 어디에서고 보지 못한 이야기였기에 정말 특이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어릴 적에는 맹맛 같았던 버터를 좋아하지 않다가, 어른이 되어 빵에 바를 버터가 살짝 녹았을때의 그 부드러움에 단단히 반하고 말았는데 엄청나게 살찔것을 생각해 즐겨 먹진 않는데..그냥 덩어리로 술안주로 먹다니. 게다가 에쿠니는 칼로리가 살짝 부담되지만 뼈가 단단해진다 생각하고 즐긴단다. 아마 많이 먹지는 않나보다.
공기가 맑은 시골에 가면 정말 색감이 청량하고 뚜렷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녀가 다녀왔던 야마가타의 느낌을 바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마치 현실에 없는 곳인양 묘사가 되어 있었다. 자기 색이 무척 강한 작가라, 그녀가 기억하는 머릿속의 지도는 인상깊은 먹을 것으로 대표되는 어디, 혹은 사랑하는 친구 누구가 살고 있는 어디 이런 식으로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하였다. 극히 주관적으로 말이다. 야마가타에서 그녀가 발견한 이상한 것은 동그란 곤약과 빨간 벌레. 포장마차에서 산 동그란 곤약은 사준 지인이 겨자를 너무 많이 발라 매운 맛으로만 기억을 하고 있었단다. 그리고 돌 위에 앉았다 일어날때 옷에 붙어있던 현실감 잊은 깨끗하고 밝은 빨간색의 벌레에 대한 기억과 묘사도 아주 인상이 깊었다. 어느 지역에 대해 이렇게 아주 색다른 견해로 묘사하고 기록하는 작가도 아주 드물 것이다. 가보지 못한 야마가타지만 나 또한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버렸다.
양서류 키우는 기분이었다며 엄마가 딸을 시집보내며 안도할 정도로,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고 몇시간이고 목욕을 즐기는 에쿠니의 독특한 습관에 대해서도 나온다. 집을 고를때도 남편과 함께 목욕탕을 가장 중시하며 골랐다 하니, 목욕 문화가 발달한 일본 내에서도 특히나 그 문화에 더 빠져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그녀는 욕조에 두시간 이상 머물며 추리소설 읽기를 좋아한단다. 욕조에서 책을 읽는 일도 있다고 들었지만 책이 젖을까봐 식겁하게 되는 나로써는 아마도 실천하기 힘든 호사가 아닐까 싶었다.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이야기를 더 하기 싫다며 등돌리고 잠들어버리는 남편을 두고 도저히 그대로 잠이 들지 않을때면 무작정 집을 나선다는 에쿠니 가오리. 사실 나도 처음에 부부싸움을 했을때 분이 안풀려 그대로 집을 나섰는데 막상 갈 곳도 없고, 어딘가 카페라도 가서 책이나 읽을까도 싶었지만 사실 신혼 초에 그렇게 무작정 집을 뛰쳐나오는 것도 무척 안좋은 습관인 것 같아서, 결국 신랑 전화 기다리며 고민만 하다가 소심하게 신랑 먹을 초밥을 사다가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었다. 마조앤 새디던가? 남자 만화가가 집에서 살림을 겸하다가, 부부싸움을 하고 한밤중에 갈데가 없어서 새벽 마트에 가서 장 보고 온거랑 비슷한 상황이랄까. 그런데 에쿠니 가오리는 새벽에 집을 나가서도 아예 어디선가 밤을 지새우고 마음이 다 풀려야 돌아온다니 나보다는 좀더 용기가 많은 편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때가 꽤나 왕왕 있는가보다. 호텔에 가려했지만 아무때나 간다고 재워주지 않는 걸 알고, 처음엔 패밀리 레스토랑 몇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커다란 북센터에 가서 밤새 시간을 보낸단다. 그녀와 함께 3대 여류 작가로 손꼽히는 야마다 에이미를 몰래 본 적도 있고 (북센터에서), 나름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가장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 나 역시 그런 공간이 있다면 시간을 보내다 오고 싶지만, 아이가 있으니 아이와 신랑을 두고 팩~ 하고 집을 나가버리는 것은 좋지 않을 듯 하다. 참, 신랑이 그때 내가 집을 나가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친정이 바로 옆이라 당연히 친정 간 줄 알았다고.
우는 어른 이야기 중에서는 남성 친구 라는 생소한 단어에 대해 많이 언급이 되고 있었다. 남성친구라 함은 남자친구와는 좀 다른 느낌이라는데, 남자면서 친구인 뭐 그런 단계가 아닐까 싶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부담없는(?) 친구들이 제법 있단다. 결혼을 하면 이성 친구를 만나는 일조차 안된다 생각했던 나와는 무척 다른 개방적인 사고 방식. 내가 좀 딱딱한 것일까. 친하게 지내는 여자친구들에게는 쉽사리 부탁을 할 수 없는 일조차 남성 친구 (그녀도 그 친구도 각자 배우자가 있다.)에게는 얼마든지 부담없이(?) 부탁을 하게 된단다. 여자들은 하나를 부탁하면 그 일이 확대해석되기도 하고, 확대해서 갚아야할 우려가 있는데, 남자에게는 하나를 부탁하면 하나만 갚으면 된다니 음, 참 예리한 관찰이다 싶었다. 사실 나도 여자이고, 남자를 잘 모르지만 남자와 여자는 분명 다르고 오해의 소지는 분명 여자친구 간에도 큰 골로 자리한다. 그녀가 지적한 부분은 분명 일리있는 부분이 있었다. 확대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남겨둘 필요는 없겠지.
두껍지도 않은 그녀의 에세이 한편을 읽고 또 많은 이야기를 중얼거려 버리고 말았다. 에쿠니 가오리는 참 내게 말을 많이 하게 한다. 그녀의 문체는 참으로 간결하고 깔끔한데, 난 주저리주저리 참으로 말이 많아진다. 나도 그녀처럼 간결하고 청아한 문체로 말해보고 싶은데 닮지도 못하면서 말은 참 길어지니. 그것 참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