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해피해피 브레드>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을 재미나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그렇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재미라기보다는 일상의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책이라고 해야할까. 지금 마음의 상처가 깊은 사람이라면 치유의 소설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눈부시게 빛나던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서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 생활하는 그를 보며 (더군다나 결혼하고서도 나를 만나겠다는 아주 황당한 이야기까지 지껄이는 그에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나를 보며) 더이상 회사에 남아있을 수 없어서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카코는 사랑과 일을 동시에 잃고 말았다.

엄마는 집에 내려오라했지만 도쿄에 남아 살고 싶었기에 대충 얼버무리며 우울한 삶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헌책방을 하는 외삼촌에게 연락이 왔다. 외삼촌의 헌책방을 도와달라며, 살기는 헌책방 2층에서 살면 되니까 방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말이다.

 

외삼촌에 대해 괴짜라고 생각하고, 그다지 친한 감정도 들지 않았던 다카코였는데. 외삼촌은 그런 다카코를 정말 반겨주었고 사랑으로 대해주었다. 게다가 그런 감정은 누나인 엄마에게 부탁받아서가 아닌 진심으로 다카코를 좋아해서임을 알게 되고.

다카코의 냉랭한 감정을 나 역시 어느 정도 감정이입해서 공감하고 있었기에 그런 삼촌의 반응에는 다소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다카코가 무얼 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녀의 존재가, 사랑스러운 조카의 존재 자체가 외삼촌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음을 그녀는 나중에 나중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저자인 야기사와 사토시는 이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이라는 단편으로 제3회 치요다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고, 이 작품은 2010년 휴가 아사코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이 책에는 이 단편 외에 1년후의 이야기를 그린 모모코 외숙모의 귀환이라는 두번째 단편까지 담겨 있어 독자들에게 모모코 외숙모가 왜 가출을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아마도 단편 하나만 읽었다면 궁금증이 가득했을텐데.. 친절하게 덧붙여진 1년후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고마운 그런 책이 되었다.

 

사랑할때의 감정은 달콤하기 그지 없는데 불현듯 다가오는 실연, 이별의 감정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그런 느낌이다. 게다가 감정의 소모가 꽤나 큰 사람에게는 더더욱 감당하기 힘든 슬픔일지 모른다. 다카코도 그런 사람이었다. 깊이 빠져들고 그러기에 더욱 상처도 깊었던.

그녀를 치유하고 일으켜세울만한 것이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연의 상처를 딛고 삶의 의지를 갖게 하는데..

꼭 대단한 그 무엇, 혹은 그를 대신할 인스턴트 사랑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어쩌면 일상의 재발견, 따뜻한 사랑 속에 충만한 편안한 공간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해결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카코에게 그런 공간, 그런 휴식의 기쁨을 알게 해준 사람이 바로 그녀의 괴짜 외삼촌이었다. 자신도 사랑의 상처를 겪고 있으면서도 불시에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떠나버린 모모코 외숙모를 5년이나 기다리며 잊지 못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조카의 이야기를 듣고 비분강개하며 같이 쳐들어가자 이야기하는 삼촌의 호기로움에 나조차도 웃음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사소함으로, 쪽팔리다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행동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였다. 뻔뻔스러운 당사자는 사과할 줄도 몰랐으나 적어도 다카코의 마음은 비로소 제대로 풀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다카코의 존재 자체가 삼촌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듯이.

삼촌의 존재과 의미가 다카코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 깎아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아주 큰.

적어도 나의 부모님과 내 아이, 그리고 나의 배우자에게만은 내가 최고로 소중한 그런 존재일텐데.

가끔 우리는 그 중요함을 잊고 산다.

 

곰팡이 냄새 폴폴 나는 그 헌책방에서 다카코가 하루하루 치유되어가는 과정은 그렇게 따스하게 내게도 온기를 심어주었다.

이 책 참 따스하다.

올겨울 유난히 시리고 아프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건, 정말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닐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