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 나무 아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로 혼진 살인사건을 처음 읽어보고 이후에 나온 책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이후 구입한 책들이 옥문도와 밤산책, 아직 둘다 못 읽어보고 책장에 꽂아둔 상태에서 이 책이 신간으로 나왔다하여 (사실 집필 시기상으로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초기작이라 한다. 우리나라 국내 발간만 늦게 되었을뿐)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혼진 살인사건도 장편이 아닌, 중단편집이었는데 이 책 역시 단편 소설집이었다. 빠르지만 강렬한 퀄리티를 느낄 수 있다 해야할까? 아직 그의 장편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몰입도만큼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답게 말이다.

 

 

 

검은 표지에 일본풍의 그림. 사실 백일홍 나무아래라는 그 제목과 표지의 얼굴만 나와있는 그림만으로도 약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띠지를 벗겨내니 나무화려하게 아름다운 나무 아래 시체가 가득 묻혀있는게 보였다. 백일홍은 아니었지만 일본의 화려한 벚꽃 나무 아래에 시체가 묻혀있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흘려 들은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띠지를 벗겨보았는데 예감이 맞아 떨어졌다. 눈으로 보는건 더욱 섬뜩함을 더해준다.

 

<살인귀>, <흑난초 아가씨>, <향수 동반 자살>, <백일홍 나무 아래> 총 네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번 책 중 읽기전부터 가장 궁금했던 단편은 시리즈중 가장 유명한 마지막 3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소개된 백일홍 나무아래였다.

 

젊은 여자앞에 당당히 설 수 없었던 사에키라는 부잣집 청년은 아예 자기의 이상형대로 키울 어린 아이를 데려다 키워서 자기 아내로 삼기로 하였다. 24살의 청년이 9살인 어린 새끼기생을 돈을 주고 사와서 키워 그녀가 첫 초경을 치룬 15세에 첫날밤을 치룬 것이었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데, 비뚫어졌을지언정 그는 자기방식대로의 사랑을 한 것이었다.

어린 아이였던 유미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나 20대가 되자 정말 화려한 한떨기 꽃이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와 시선을 한몸에 받았고, 남편인 사에키는 그런 시선을 받는 여자가 바로 자기의 아내임이 자랑스러워 그녀를 숨기지 않고 더욱 다른 이들의 눈에 띄게 만드는 희한한 심리를 보여준다. 사에키가 군대 징집을 받고 어린 아내를 두고 떠나려니 못 미더워 그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견제하라며 연모하는 남자 네명을 그녀에게 붙여주고 떠났다. 돌아오고 난 후 아내는 그를 일주일째 거부하다가 자살하고 말았고 말이다.

그녀를 기리기 위한 1주년에 한 남자가 독약에 의해 살해되고 난후의 이야기가 바로 백일홍 나무 아래였다.

 

살인귀에서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알수 없는 속사정, 평범해보이는 그들이 알고 보면 살인귀일수 있고, 자연사로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사고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추리소설가의 섬뜩한 가설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아리따운 여성은 더욱 무서워 진땀마저 흘리고, 그녀를 쫓아오는 의족의 남자를 피해 추리소설가에게 집까지 데려다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흑난초 아가씨에서는 다소 고풍스러운 별명이 붙어 살짝 거리감이 들긴 하였지만, 검은 베일을 두른 여인이 백화점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고, 백화점 매니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비밀에 부쳤다. 점원들에게 영수증을 받아 대금을 여성의 가족에게 청구했을뿐 백화점 내 알게 모르게 진행된 도둑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된 것은 왜 그런 그녀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느냐, 그녀는 누구냐? 왜 그랬을까 등등의 문제였던 것.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면 사건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정리가 된다. 심지어 그가 알아낸 사실을 바로 말하지 않으면 당사자가 편지로 긴다이치에게 사건 정황을 고백하고 자살하거나 하기도 한다. 긴다이치 시리즈의 가해자나 피해자 대부분이 살해당하거나 자살하거나 하는 죽음의 방식으로 결말을 맺는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그런 결말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이어졌다.

 

향수 동반 자살에서는 짐작을 했으나 의외의 상황들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본 최고의 향수 기업으로 우뚝 서고, 기업 경영인으로서는 성공했으나 부모님과 남편, 자식들을 모두 앞서 보내고, 다만 남아있는건 손주들만 있었던 마쓰요 부인의 이야기도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옮긴이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 단편들에서는 전쟁을 통해 영육된 양면에서 파괴된 개인이 일본 사회에 돌아와서 파괴된 인간 본성과 굴절된 욕망 때문에 또다시 고통을 겪으며 미쳐간다. 이런 면에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 과정에 대한 매우 뛰어난 관찰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310p라고 해설을 덧붙여주었다.

 

백일홍 나무아래의 결말은 옥문도를 이야기하면서 끝이 난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각각 다른 이야기들 같으면서도 마치 셜록 홈즈의 일생처럼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가상의 인물이 실존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매끄럽게 서로 연결되는 것이 놀라운 연결고리였다.

그래서 미리 사둔 옥문도를 연이어 읽으면 딱 좋을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문도에 대한 평이 꽤 괜찮던데, 어떤 내용일지.. 처음 읽게 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장편으로써 더욱 기대가 큰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