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최준영 지음 / 이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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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대학 후배가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매일 글을 올리세요. 별로 잘 쓰는 것 같지도 않던데." 

딱히 반발할 수가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후배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올릴땐 매양 잘 썼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다음날 보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거다. 삭제해 버릴 수도 없는게 이미 '좋아요'나 '댓글'을 달아준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부끄러운 글을 밑으로 내리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게 바로 매일같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된 셈이다.

 

진실한 소통을 위한 글쓰기, 부끄러움을 극복하기 위한 글쓰기의 장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프롤로그

 

눈에 유독 와박히는 글이었다. 나도 내가 쓴글이 부끄러워 차마 서평을 쓸 생각을 못하던 때가 있었다. 거리의 인문학자로 널리 이름을 알린 작가분에 비하면 일개 블로거에 지나지 않는 초라한 나이지만 부끄러움은 블로그를 통한 소통 자체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서평단을 응모하고, 처음 받았던 책을 읽고 서평이란걸 올려보는데, 내가 쓴 글을 나와 내 지인들이 읽는 것만도 부끄러운데 이게 무슨 글이나 된다고 감히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블로그와 카페 등에 당당히 올릴까 싶어서 그게 참 싫고 부끄러워서 망설였던 기억이 있었다. 서평이란게 사실 일종의 강제 약속 같은 거라 어쩔수 없이 올리기 시작했던 그 글. 처음에는 글이 문단이 나뉘어져 있지 않아 읽기 힘들다. 글씨체가 이게 뭐냐 눈 어지럽다 별별 말을 다 들었지만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맞아.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너무 내 생각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하면서 말이다.

 

저자와 닮은 듯 다른 이야기지만 어찌 됐건 나의 블로그 소통은 그렇게 시작됐다. 블로그에 직접 내가 올린 서평을 올리고, (처음엔 부끄러워서 몇번씩 다시 읽고 수정하고 하다가 나중에는 내 글 다시 읽는 것도 부끄러워 그냥 올리기도 하였다. 서평 열심히 수정해서 올리시는 분들한테는 뭐야 한번의 재고도 없이 그냥 올리는 글이란 말야?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자꾸 수정하다보니 처음의 글이 아닌 자꾸 산으로 가는 글을 발견하고 내 자신에게 부끄럽더라도 오늘의 글을 그냥 올리고 다음에 더 나아진 나를 보자고 생각했다. 저자의 대답과 비슷한 결론이 아니었나 싶다. 그 글을 뒤엎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건 나의 글은 이어졌고, 이후로 어떤 글이건 쓰다보니 조금씩 나아진다는 착각도 들었다. 우선은 자신이 생긴다. 어렵다 하기 싫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없어지고, 나만의 서평 노하우 등이 생겼다. 책을 읽고 자유로이 소통하는 나만의 교감 같은 것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냥 따로 틀이 짜이지 않은 거라면 그렇게 나의 생각을 담아냈다.

자꾸 읽고 쓰니 가능했던 일이다.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나니 블로그를 통해 친구들도 만나고 좋은 관계도 많이 생겼다.

 

저자는 페이스북에 꾸준히 자신의 글을 올린다 그렇게 소통을 한다. 부끄럽지만 부끄러움을 극복하기 위한 글을 말이다.

 

어렵지도 않다. 심지어 그가 강연했던 교도소에서 어느 죄수 대표로부터 "저렴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라는 인사를 듣기도 한다.

강연을 한 연사에게는 참 기분 나쁜 말일 수 있었다. 저렴하다의 의미가 긍정적으로 쓰일 상황은 아닐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죄수가 출소하면서 만나고 싶다 연락한 교수는 바로 저자 한명이었다한다. 그 많은 연사들을 놔두고.

저렴한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수있다. 편안하다. 이해하기 쉽다 등등으로 말이다.

 

저자의 글은 쉽게 편안하게 읽힌다.

긴 호흡은 아니나 그렇다고 생각마저 짧게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노동운동하는 김진숙님이 동료로부터 학번에 대해 들었을때 처음에는 몰라서 당황하였고, 그 다음에는 운동에 학벌, 출신을 따지는 그들에게 분노하는 감정이 들었다 한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대학 나왔다는게 대단한게 아닌데도 대단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당연하게 그렇게 나 위주로만 살아온 것은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좀더 나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지독한 편견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싫은 오원춘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끔찍하게 살해당한 여성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는데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옷 한벌 제대로 바꿔입지도 못한채 검소하게 생활하던 여성이었나보다. 세상에 살해받아 마땅한 사람이란 없다. 하지만 오원춘이 표적으로 고른 여성은 너무나 안타까운 꽃봉오리였단 생각이 들었다.

 

노숙인들, 죄수들 수많은 거리의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는 터에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 교수라 불리우기도 하는 최준영님.

그의 글에는 사람 냄새가 담겨 있어 좋다. 난체 하는 허영을 좀 빼면 어떠한가. 사람 냄새 가득 뭍어있는 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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