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은 얼마전 읽은 <64>가 내겐 최초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요코야마 히데오 최고의 출세작이라 손꼽히는 문예 춘추 걸작 미스터리 1위, 일본 서점대상 2위 수상작. 클라이머즈 하이.
이 작품 역시 64처럼의 가벼운 소재가 아닌 사회 전반적인 사건을 다룬 묵직한 느낌이 듦과 동시에 정말 그 두께에 불과하고 쉽사리 눈을 뗄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 전개에 매료가 되었다.
64에서 경찰청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이번 클라이머즈 하이는 한 지방 신문사의 기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다. 작가본인이 12년간 실제 기자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 64와 이 작품 모두에 기자생활의 팽팽한 긴장감이 잘 담겨져 있었다.
1985년 실제 일어난 JAL123편의 추락사고, 그 사건을 다루게 된 한 지역 신문사 내의 기자들의 반응과 암투,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 등을 다루고 있었다.
이미 동기들은 다들 승진을 하고 있는 때에 데스크 승진을 거부하며, 일선에서 일하는 신문 기자가 있었다. 유키라는 이름의 그는 젊은 신입 기자들에게는 다소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본인 스스로는 과거에 후배 기자에게 제대로 취재를 요구했다가 뛰쳐 달려간 그가 교통사고로 죽게 되자 트라우마가 생겨 후배 기자와 같이 일을 하지 않고 홀로 일을 하는 독자노선을 고집하게 된 것뿐이었다.
기자로서의 로망, 현업에 있다는 것 등등도 크게 좌우될 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우선은, 당장은 홀로 일하는 것이 편했다.
편모 슬하에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유키는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 역시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 준이 태어나자 최고의 아버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없었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스스로 아들의 눈치를 보고, 사랑은 넘쳤으나 절제할 줄 모르는 방식으로 아들을 대해, 결국 아들과의 사이도 소원해지고 말았다. 그토록 바랬던 부자의 관계였건만, 그는 가족 관계에서도 실패한 아버지였다. 그런 그가 일에 몰두하고픈 지방 신문사에서도 사실 성실만을 무기로 일하는 데에는 다소간의 한계가 있었다. 이때 사내에 괴짜같았던 한 동료가 그에게 산행을 제안하고,안자이와의 산행을 자신도 모르게 즐기기 시작하였다. 다만 안자이가 이번에 오르자 한 산은 아무나 오르기 힘든 쓰이타테이와라는 산이었다. 군마현 경계에 솟은 일대 산중 가장 험한 암벽 봉우리로 1966년까지 무려 455명의 목숨을 앗아간 산이었다. 이 산은 지금까지도 800명에 가까운 등반가를 죽음으로 내몬, 말 그대로 악마의 산이라 하였다.
안자이와 다음날 그 악마의 산에 오르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갑작스레 JAL기의 군마 현내의 추락사건이 터지고, 신문사에서는 과거의 명예를 뒤엎을 특종의 데스크로 유키를 지목하였다. 유키는 사건의 데스크가 되어 진두에 나서게 되고, 자연히 안자이와의 등산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가 특종 기사에 목매는 사이, 안자이는 산에 오르기도 전에 밤중의 약속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발견되고, 그의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는 여러 의문점이 들었다.
또한 사건의 메인을 담당하는 유키라고는 하나, 윗선의 여러 압력들로 인해 자유로이 원하는 기사를 탑에 실을 수도, 지시를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간다. 긴박한 상황이고, 사활을 걸고 취재해온 생생한 르포를 싣지 못한채 과거의 영예 속에 살아가려는 선배들의 더러운 암투에 그대로 가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 또한 그 영예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이었으나 그는 현실을 다시 직시하려 한다. 꿰뚫고 판단하려 한다. 물론 그의 판단과 감이 인간의 것이기에 운이 좋은 쪽으로만 술술 풀리는 (많은 소설들이 그렇듯, 운과 우연을 가장한 행운의 연속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말 중요한 그런 부분을 놓치고 통탄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굽힘없는 강직한 그의 모습은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올곧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진정한 키팅 선생을 보는 그런 느낌을 받았달까.
원래 묵직한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요코야마 히데오의 책을 두권 읽고 나니, 이런 사회파 소설도 괜찮다, 나도 읽을만한 책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