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결전
우영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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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바로 얼마전에 읽었던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http://melaney.blog.me/50169070867 라는 책이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를 위한 기록이라 하였지만 역사를 사대주의에 맞게 왜곡하려 한 승자들의 역사 조작은 정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이 책은 국사 시간에 우리가 배웠던 서경 천도설을 주창한 묘청의 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에 앞서서 이자겸의 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책에 그려진 인종의 모습은 참으로 심약하고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여러 목숨이..아니 수백, 수천, 수만의 목숨이 없어지기 일쑤였는데 강력한 왕권을 갖지 못했던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흔들렸고, 그로 인해 소중한 인재들을 잃어나갔다.

 

단지 서경파 정지상과 개경파 김부식의 대립만이 그려진 책이 아니었다.

삼국사기의 저자로 알려진 김부식에 대해 교과서와는 다른 모습을 엿볼수 있는 글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예전에 배웠던 교과서 속의 삼국사기와 묘청의 난 등을 다시찾아보고 싶었지만 오래전이라 교과서가 남아있을리 만무하였다. 아쉬운대로 네이버 캐스트 등을 찾아 보니 묘청의 난, 정지상, 삼국사기 등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정지상과 김부식은 놀랍게도 시에 있어서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실은 정지상이 훨씬 더 한수위인 ) 그런 사이였다 한다. 훗날 정지상을 제거한데 있어서도 김부식이 그의 재능을 시기하여 죽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한다. 또  <백운소설>에 그려지기로 김부식은 이후에도 정지상 귀신이 나오는 악몽을 예사로 꾸며 그의 시를 정지상이 고치기도 하는 등의 일화가 담겨있기도 하였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에서도 정지상은 서경이 낳은 최고의 천재로 나온다. 서경은 개경인들에게 천시받는 곳이었다. 그래서 서경 출신인 그가 장원급제를 하고서도 등용되지를 못했었다. 뒤늦게 어찌어찌하여 어렵사리 등용된 그와 달리 김부식은 송나라 황제에게까지 가서 <자치통감>을 직접 하사 받은 적이 있었고 이후에 송과 유학에 더욱 단단히 신봉자가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자신과 동생의 이름 역시 소동파, 소동철의 이름을 따서 짓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는 꽤 유명한가보다. 김부식 편을 찾아보아도 그가 자치통감을 하사받고 송나라 휘종의 극찬을 받았다 되어있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편에서 비슷한 일례를 읽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일본에 대한 충심이 높아진 사람이 한국의 유명한 사학자가 되고, 최고 대학 교수가 되어 비슷비슷한 제자들을 양성해냈다는 이야기 말이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나라가 굳건히 설 수 있는 법인데, 그 뿌리와 기강을 세워야하는 역사학자 자체가 잘못 물들어 있을 거라고는 (독립국가라는 나라에서 말이다.)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풍수 사상을 바탕으로 개경에서 서경으로 천도를 주장했던 묘청의 난은, 왕을 바꾸는 난이 아니었다.

유교 중심의 중국 사대 주의에서 벗어나 단군 신화를 바탕으로 한 하늘 아래 떳떳한 우리 나라였던 천자국으로써의 조선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바램이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허구가 많이 들어간 역사소설이었지만, 묘청의 난과 정지상, 김부식 등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 잡기 위해 작가가 쓴 책이라 한다.

신채호는 묘청의 난을 두고,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할 수 있었을거라 말하였다 한다.

 

김부식이 서경 사람들을 죽여없애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서경역적이라는 말을 새겨 이를 갈았을만큼 그들이 정말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겸의 난과 더불어 묘청의 난까지. 한 왕이 집권하던 시대에 참으로 많은 피바람이 불었구나 싶다.

그리고, 고려가 중화주의와 유학에 휘둘리지 않고, 일찌감치 독립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더라면 조선시대의 역사, 그리고 지금의 현대사 역시 많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서경 전역(戰役)은 낭불양가(郎佛兩家) 대 유가(儒家)의 싸움이며, 국풍파(國風派) 대 한학파(漢學派)의 싸움이며, 독립당(獨立黨) 대 사대당(事大黨)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이 전역에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리하였으므로 조선사가 사대적ㆍ보수적ㆍ속박적 사상, 즉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ㆍ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난을 어찌 1000년래 제1대 사건이라 하지 아니하랴.

정지상이 묘청과 함께 추구했던 서경 천도 운동은 당시 상하층에 유포되어 고유 신앙으로 자리했던 풍수도참설에서 비롯하였다. 풍수도참설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고려 왕조의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 사상과는 달리 풍수도참설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체질화된 전통 문화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으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 지배 계층의 견제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묘청을 비롯한 서경 세력의 주장에도 무리가 없지 않았다. 금국 정벌도 당시의 국제 정세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서경 천도의 당위성을 풍수 사상에만 의존했던 것도 문제였다. 묘청의 난이 실패로 돌아간 뒤 고려 사회는 표면상 평온을 되찾았으나, 그 반란이 고려 사회에 끼친 영향은 컸다. 

 

출처: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북한, 신정일, 천년래의 대사건 묘청의 난 중에서

 

 

 

[백운소설]이 전하는 알력은 이제 정지상의 사후(死後)까지 이어진다. 지상이 부식에게 피살되어 음귀(陰鬼)가 된 다음, 어느 봄날 부식은 느꺼운 기분으로 한 구절 시를 지었다.

버들 빛은 일천 가닥 푸르고   柳色千絲綠
복사꽃은 일만 점이 붉구나    桃花萬點紅

 

정연한 대구를 이룬 득의의 구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 귀신이 나타나 부식의 뺨을 쳤다. 일천 가닥이니, 일만 점이니 잠꼬대 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버들가지가 천 개인지 세어보았으며, 복사꽃 봉우리가 만 개인지 헤어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쳐준다.

버들 빛은 실실이 푸르고     柳色絲絲綠
복사꽃은 점점이 붉구나      桃花點點紅

 

실인즉 그렇다. 버들가지 세겠다는 것 아니며, 꽃봉오리 헤아리겠다는 것 아니다. 부식으로서도 그만큼 많다는 표현을 얻고 싶었는데, 천사(千絲)를 사사(絲絲)로 바꾸고, 만점(萬點)을 점점(點點)으로 바꿔 놓으니, 시의 품격도 높아지고 입에 달라붙듯 읽기도 좋다. 역시 시를 두고 부식은 지상에게 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식은 더욱 마음속으로 지상을 미워하였다.

 

 

 

그가 그대로 시인이었더라면

 

한시 강의를 하는 선생들은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이 이야기로 김부식과 정지상이 숙명적 라이벌이었음을 알려주고, 더 멋진 시의 모범과 시 고치는 일의 요령을 가르쳐준다. 어쩌면 후자의 경우가 더 큰 목적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을 한방에 때려눕히는 통쾌한 사건일 뿐이다.   

 

사실 정지상은 인종 5년(1127) 좌정언(左正言)으로 있으면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 보냈다. 서릿발 같은 그의 칼날이 잘난 척하는 권신 귀족을 베어내니 모든 보통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시를 잘 쓰지 않는가. ‘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로 시작하는 ‘대동강(大同江)’은 천하를 울린 명편이다. 그러나 ‘송인(送人)’ 또한 그에 못지않다.

 

뜰 앞에 한 잎 떨어지고             庭前一葉落
마루 밑 온갖 벌레 슬프구나       床下百蟲悲
홀홀이 떠남을 말릴 수 없네만    忽忽不可止
유유히 어디로 가는가               悠悠何所之
한 조각 마음은 산 다한 곳         片心山盡處
외로운 꿈, 달 밝을 때               孤夢月明時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질 때       南浦春波綠
뒷기약 그대는 제발 잊지 마소    君休負後期

 

3, 4행과 5, 6행의 대구를 보라. 홀홀(忽忽)과 유유(悠悠)는 한자어임에도 그냥 우리말처럼 들리고, 편심(片心)과 고몽(孤夢), 산과 달은 절묘의 극치에서 마주하고 있다. 가을날의 이별을 이렇듯 애잔하게 그린 시가 또 있을까. 복잡한 정치판의 파워게임에 휩쓸리지 않고, 그가 그냥 시인으로 살았더라면, 당대의 시적 수준을 얼마나 끌어올렸을지,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가편(佳篇)을 남겨주었을지, 정말 아무도 모른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정지상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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