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지금 돌아보니 <물처럼 단단하게>는 출판되자마자 적색(혁명)과 황색(성)의 금기를 모두 어겼다라며 중국 최고 상부기관으로부터 '지명'당했습니다. 출판사는 당황하고 곤혹스러워하며 불안해했지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출판사에서 얼마나 베이징을 오갔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조정을 거친 뒤에야 풍파가 가라앉고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저는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이 소설이 남긴 깊은 화근은 이후 <즐거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마을의 꿈><풍아송> <사서>로 이어졌습니다. 이 작품들이 논쟁거리가 되어 출판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모두 시의 적절하지 못했던 물처럼 단단하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두들 합창하는데 혼자만 솔직하게 개성있는 목소리를 내려한다면 남들이 잊어 주기 바라는 민족적 아픔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억의 쐐기를 박으려 한다면 모두들 엄숙한데 불손하게 굴려 한다면 가령 뭇 신들 앞에서 혼자 신나게 춤춘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게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물처럼 단단하게>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9p
예사롭지 않은 소설을 만났다.
루쉰 문학상, 라오서 문학상 수상작가인 옌 렌커의 대표 장편소설이라 했지만 수상작 타이틀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중국내에서도 금기시되는 책을 쓴 용기있는 작가이자, 오늘날 중국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의 하나로 평가받는 옌렌커의 책이 어떤 내용일까 하는 점이었다.
옌렌커의 책을 세권을 읽어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 중 처음 읽어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꽤 두꺼워서 오랫동안 읽으려니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서문에 등장한대로 정말 황색과 적색의 금기를 모두 어겼다 지적받았을 법한 책이었다.
처음에는 좀 많이 낯설어서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다보니, 공산주의 정권의 이야기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어렸을 적에 수시로 들었던 6.25 전쟁때의 이야기라던지, 어릴때 학교 수업에서 배웠던 북한 공산 정권에서의 비통한 현실 같은 것을 책 속 중국의 공산 정권 속 문화 대혁명 시기의 젊은이들의 생활상에서 만날 수 있었다.
군복과 혁명 등을 신성시하는 분위기 자체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낯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냥 읽어내려가니 놀랍게도 금새 읽혔다. 주인공 아이쥔이 제대를 하고 돌아오는데 사람들은 그의 군복 등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본다. 처음 보는 여인마저도 그의 귀한 군복을 감히 사겠다고 나서기까지 한다. 돈을 주고도 못사는 진짜 군복. 그들에게 군복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기에 그런 것일까?
게다가 아이쥔은 혁명을 결심한다.
혁명은 젊은 세대의 봉기 같은 것이었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젊은 세대가 구습을 타파하고, 기득권층이 가진 것들을 빼앗는다. 사실 그들은 그것을 빼앗는다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나라에 충성한다는 명목하게 필요한 것을 빼앗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장인, 시아버지 등이 다치고 죽을 수 있는 상황이 오더라도 말이다.
아이쥔은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다. 그의 총명한 학교 성적 등을 보고 마을의 서기가 자신의 박색인 딸과의 혼인을 주선한다.
조건은 둘 사이에 아이를 낳고, 군대를 다녀오면 마을 간부를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시골 동네의 면 서기, 촌장 등의 개념과는 좀 많이 다른 것이 중국 공산당 간부와 같은 마을 간부개념이었나보다. 대부분 공동 경작을 하였기에 조금이라도 더 여유있게 살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마을 간부와 공산당 간부 등은 시골 사람들 누구나 꿈꾸는 그런 자리였다. 아이쥔이 무사히 군을 제대해 돌아와보니, 장인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날 의향을 보이지도 않고 사위에게 간부 자리를 정해주려 하지도 않았다. 아이쥔은 그 과정에서 역시 마을 간부의 며느리인 도시 출신의 여성 샤홍메이에게 빠져들어 사상이 깊으면서도 서로 통하는 마음이 있던 두 남녀는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들고 말았다. 둘다 유부남 유부녀였기에 둘의 사이는 사실 불륜이라, 둘의 혁명과 사상에 위배되는 행동이었지만 둘은 어떻게는 남의 이목을 피해가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자신의 조강지처와 남편과는 통하지 않았던 뜻과 사상이 두 사람 사이에서는 불꽃 튀기는 혁명으로 변화해갔다.
자신의 입신양명 등을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존경하던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이 그렇게 신성시하다시피한 통치자 사진, 사상 등에 대한 숭배는 우리가 어려서 경악까지 했던 김일성 사진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충정 들과 비슷해보였다. 말로만 그렇다 들었는데 정말 책 속 주인공들은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숙청이 되고 말이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는 공산당의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의 사랑과 혁명 등이 교묘하게 공산 정권을 우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유로이 아름답게 사랑했으면 더욱 좋았을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살던 시대와 배경은 공산 치하의 문화대혁명 기간의 중국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혁명을 성공하고, 바로 코앞의 명예에까지 도달했지만 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것은 아주 어이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옌 렌커의 다른 책들은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된다. 다른 정권,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몰입하게 만드는 , 분명 범상치 않은 글재주를 지닌 작가의 글이기에 다른 책들 역시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