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
스콧 허친스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권총 자살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아들.

상상하기 힘든 이런 독특한 소재라니..

소재는 다르지만, 인간의 뇌를 바탕으로 독특한 상상력을 펼쳐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가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였다.

 

닐 바셋 주니어.

저명한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수천장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일기장을 남기고 자살한 탓에 아들에게 독특한 직업을 주게 되었다.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아버지의 다양한 묘사와 서술로 가득한 기록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인간에 가까운 컴퓨터,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채트봇에 도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아들인 닐 바셋을 그 프로젝트에 참가시켜 죽은 아버지와 대화를 하게 만든 것. 물론 아버지의 영혼이 담겨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컴퓨터 속에 주입된 수많은 아버지의 생각과 의견들의 총 집합은 놀랍게도 자꾸만 살아계신 아버지로 착각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또한 컴퓨터 스스로도 자신을 살아있다 착각하고, 결국은 자신과 대화하는 친구 1이 자기의 아들(살아있을때의)이라는 것까지 알아내게 되었다.

컴퓨터에게 알리지 말아야 할 단 하나는 컴퓨터 자체가 인간이 아니고, 스스로는 자살한 상태라는 것,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자 자신의 기억과 달리 훌쩍 커버린 아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해에 대한 호기심 역시 채우려 한다.

 

그리고 30대의 이혼남인 아들.

죽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직업을 가진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힘든 이 남자. 부모 자식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해답을 얻기 힘들고, 상처 받은 것 투성이지만 실제 자기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도 그다지 소질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혼한 전처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새로이 관계를 맺게 된 레이첼이라는 젊은 여성과도 원만하게 관계를 이끌어가지 못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핏줄인 가족에게는 더욱 큰 공포이자 상처가 되는 일이다. 하물며 부모가 자식을 두고 자살을 한다면 남겨진 자식들이 겪을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리라.

사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때에도 아버지와의 정상적인, 일상적인 부자 관계를 맺어보지 못했던 닐 바셋 주니어는 그 아버지가 자살로 돌아가시고 나자 더욱 큰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저 딱딱하고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 컴퓨터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이토록 유머러스 한 면이 있다는 사실에 새로이 아버지를 알아가게 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몰랐던 내 아버지의 본모습을 알아가는 것.

돌아가신 아버지의 일기를 읽었다던지 하는 방식이 아닌, 스스로가 살아있다 믿는, 마치 진화하는 듯한 컴퓨터 닥터 바셋과의 대화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금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쩌면 냉정하였던 아버지를 다시 이해할 수 있는 이 과정, 그리고 아버지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아가게 되는 이 과정이 보다 더 깔끔하게 전개될 수도 있었을텐데.. 아버지와의 관계가 꼬여버려서 그의 애정관이 이렇게 흐리멍텅해져버린 것인지. 자꾸만 흐름을 끊어놓는 현재의 닐 바셋 주니어의 애정관 때문에 초반의 읽는 속도가 자꾸 더뎌지고 말았다. 오히려 닥터 바셋과 아들 닐 바셋 주니어, 그리고 그 어머니와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면들은 훨씬 더 흥미진진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처음에 그 대상이 영혼이 담긴 대상이 아닌 컴퓨터라는 생각과 또 자기들을 버리고 세상을 저버렸다 생각한 아들이었기에 더욱 힘들고 거리감을 가졌을 아들이었겠지만 결국은 그리움의 대상일 가족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한 감정도 들지 않았을까 싶다. 적어도 힘들었겠지만, 컴퓨터가 아닌 아버지로 , 자신의 남편으로 이해하고 대화한 어머니가 있었으니 말이다. 나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하지않은 상황을 가정해보기도 힘이들겠지만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랬을지 모르겠다.

 

허공에 대한 외침이 아닌, 컴퓨터 상의, 모르는 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의 조각과의 대화라면, 그 실마리 하나라도 잡고 싶어서 아둥바둥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어머니는 컴퓨터라지만 알려주어야한다고, 그도 사실을 알아야한다고 일러준다.

아들의 실패한(앞으로의 사랑은 잘 모르겠지만) 사랑보다는 어머니의 줄곧, 한결같았던 그 사랑이 더욱 아름다웠던 "사랑에 관한 쓸만한 이론"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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