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르미안 1 - 운명을 훔친 여자 ㅣ 아르미안 1
이유진 엮음, 신일숙 원작 / 2B(투비)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한동안 내 닉네임이 에일레스였던 때가 있었다. 전쟁과 파괴의 신, 에일레스. 책에 여주인공 샤르휘나가 등장하지만, 어른이 되어 가장 강력하게 기억이 나는 캐릭터, 어쩌면 약한 내 모습을 가리기 위해 바깥 세상에는 나를 중무장하고 맞서고 싶었는지 모르겠을, 그런 마음으로 남성 캐릭터임에도 에일레스를 내 닉네임으로 삼았었다. 신일숙님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자그마치 27년전에 연재가 시작되어 20권의 전권이 나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정말 멋진 작품으로 기억되는 그 시리즈가 소설 아르미안으로 재탄생되었다. 만화에 비해 글로만 씌여있으니 이야기의 전개가 꽤 빠르게 느껴지고, 현재까지 2권까지 나와있고, 앞으로 3,4권이 출간될 예정이라 한다. 새로 편집된 만화 애장본은 10권으로 다시 나왔다는데, 소설 아르미안은 몇권이 될지 기대가 된다.
학창시절에 너무나 멋지게 봤던, 정말 홀딱 빠져서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그 멋진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완결을 봤던건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던가? 연재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결말을 보지 못했다가, 나중에 결말이 나오고 나서 만화방에 가서 한번에 우르르 다시 봤던 기억이 난다. 한참 그렇게 만화방에 앉아 본게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아르미안을 다시 만난단 기쁨에 다른 것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재미나게 보았음에도 오랜 시간이 흘러 줄거리를 많이 잊고 있었는지, 소설 아르미안을 다시 읽으니 아, 이런 내용이었지. 하는 옛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 그 때 그 시절 아르미안에 빠져들었던 사람들이 다시 애장본 전집세트를 사곤 한다는데, 소설을 읽으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신일숙님의 만화는 우선 그림 자체가 빼어나게 아름답다. 게임으로 유명한 리니지도 있지만, 내게 가장 멋진 작품으로 기억이 남는건, 이 시리즈인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고, 길진 않지만 라이언의 왕녀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 파라오의 연인은 어떠한지. 신일숙님의 작품은 만화 캐릭터 하나하나에도 정말 혼이 담긴 듯 너무나 멋진 그림에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까지 강한 마력을 지닌듯한 스토리였다.
그런데 그 가장 중요한 그림을 빼고 소설로 내놓다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르미안 1권을 읽고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소설로써도 너무나 재미난 아르미안이 재 탄생이 된 것이었다.
아르미안이라는 나라. 페르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나 작은 약소국이었지만 이 작은 나라에는 다른 나라와 다른 왕위 계승과 전통이 있었다. 레 마누라는 이름의 여왕이 나라를 통치하고, 그녀의 딸들 가운데 한명이 다시 레 마누의 뒤를 잇게 되는 것이었다. 여자만이 왕이 되는 나라. 얼핏 아마조네스를 떠올리게 하지만, 왕만 여자일뿐 신하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현 여왕인 레 마누에게는 네 딸들이 있었다.
이름 자체가 마누아인 레 마누 계승 1인자인 큰 딸. 아름다운 외모가 온 나라를 압도하고도 남을 스와르다, 예쁘긴 하지만 언니들에 비해 외모가 빛을 좀 바래는 대신 책을 좋아하고 약초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아스파샤, 그리고 아직 열살 밖에 안되었지만 또다른 여왕의 잠재력을 갖고 태어난 샤르휘나
여왕 레 마누는 미래를 예언할 줄 아는 예지력을 갖고 있었고, 염력마저도 갖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여왕이 되리라 생각하고 자라난 마누아에게 자꾸 막내 동생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진다. 엄마인 레 마누는 죽기 전 네 딸들을 불러 예언을 들려주었다. 가장 아름다운 둘째딸 스와르다에게는 페르시아에서 온 귀인으로 인해 신분이 아주 높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언해주었고, 셋째딸 아스파샤에게도 수 세기를 통틀어 나올 만한 위대한 지도자의 배필이 되어 지혜의 힘으로 내조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맏언니 마누아에 앞서 샤르휘나에게 예언을 해주려다가, 그녀의 너무나 어렵고 힘든 운명앞에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말았다. 무서운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어려운 시험을 해야할지 모를, 예사롭지 않은 두 언니의 운명보다도 훨씬 더 어두운, 인간의 차원을 넘어서는 딸의 고행에 엄마는 절망감을 느끼고 말았다. 큰 딸 마누아는 최고의 레 마누가 될 것이라 예언하였다.
작품 전체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갖게 하는 이 예언은 꽤나 초반부에 소개되었다. 레 마누의 장례식에 늦게 찾아온 샤르휘나는 놀랍게도 전설의 눈부신 금발을 휘날리며 아무도 타지 못한 황금빛 갈기를 지닌 백마 류우칼시바를 타고 등장했다. 그동안 염색으로 가려져있던 막동생의 금발, 온 백성이 수군거리며 막내동생이 새로운 여왕이 될 거라는 전설 속 기대를 믿어버리자 언니인 마누아는 동생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높아지고 말았다.
가족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등 여느 여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만한 감정보다 오로지 여왕으로 태어나 여왕으로써의 통치 등에 대한 야망만이 가득했던 마누아는 가련한 동생들의 아픔따위 아랑곳 않고,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동생의 남자를 빼앗고, (원래는 그녀의 것것이었을 것이나 한순간으로 인해 어긋나버린 사랑을 자신의 계산 하에 돌려버리고 만다.), 전설에 의해 진정한 왕으로 타고났을 막내 동생이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되자 죽이진 못하고 영원한 국외추방을 시키고 만다. 절대 찾을 수 없을 불새의 깃털을 찾아오면 반역죄를 사해주고 받아들여주겠다라는 , 실행 못할 단서를 단채. 사실은 사막 속에 그녀를 버리다시피 하였다.
너무나 흥미진진하였다. 샤르휘나와 에일레스의 만남도 짧게 언급되었고 에일레스, 류우칼시바(미카엘) 등의 인간 뿐이 아닌 신, 정령과도 관계가 깊은 아르미안의 이야기가 시작이 되었다.
아르미안, 그 후의 이야기, 2권에서는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주인공 스와르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였다.진정한 주인공인 막내의 이야기에 비하면 빛이 가려질 것이지만,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꼬여버린 운명의 주인공이 된 탓에 슬픔을 맞이해야하는 스와르다의 이야기 또한 1권 못지않을 재미로 압도하리라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