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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평점 :
위험하다.
이 사람은 어쩌면 이다지도 거부감 들 수 있는 상황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표현해낼 수 있는지.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좋아한다. 그녀의 단아하면서도 고요하고도 부드러운 분위기의 문체.
그러나 그 문체가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들은, 특히나 이번 책에서의 이야기는 더더욱 평범하거나 안정적인 일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말 어떨땐 작가의 결혼 생활이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를 보고, 실제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바보스럽다고는 하지만, 에쿠니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 작품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음에도 그녀의 이야기 같아 염려스러울때가 많다.
아니야, 난 괜찮아. 그냥 이야기일뿐이야. 이런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바람'이라는 자체를 몹시 경멸하기에, '바람'을 미화하는 글 자체를 싫어한다.
그런데 그 소재만으로도 괴로울 것 같았는데, 이 바보 같은 여주인공 이야기를 접하고 있으면서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지언정, 또 심하게 이기적인 남자주인공에 대한 증오같은 것도 그다지 크게 솟구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재주로 그런 거부감을 없애버린건지. 내가 에쿠니 가오리에게 단단히 뭔가가 씌인건지.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쇼코는 부자인 엄마와 함께 9박 10일의 여정으로 동남아의 고급 휴양지에 와 있다.
거기에서 눈이 부실, 반짝반짝할 젊음을 가진 열 대여섯살 정도의 소녀 미미를 보게 되었다. 이국땅인지라 일본인들이 드물었고, 쇼코 모녀 일행과 미미 부녀 일행은 서로에게 눈에 띄는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해도 쇼코의 미미 훔쳐보기는 좀 심할 정도.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간다.
미미는 여느 소녀와 많이 달랐다. 가늘고 긴 다리, 일순 젊음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외모도 그랬지만, 도도한 그녀의 모습은 자기의 범주를 정해놓고 아무나 그 안에 들이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혼자서도 무척 잘 지내고, 그 모습에 무척이나 익숙해보였다.
쇼쿄의 엄마 기리코 여사도 독특하다. 그러면서 사실 좀 뜨끔하기도 했다. 책읽는 것을 너무 좋아해 기리코 여사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좀 살림을 등한시해서 뜨끔해하는 중이었는데, 이걸 부러워해야하나 놀라워해야하나.
74년을 살아오면서 살림을 전혀 해보지 않은 엄마라는 지위. 요리는 먹는 것이고 세탁이나 청소는 시키는 것이고 아이들 학교행사나 친지간의관혼상제는 불참하는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책만 읽었다. 책읽는 짬짬이 결혼도하고 아이도 낳아길렀다. 자신의 인생은 퍼펙트하다 말을 하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신기할 정도로 받들고 사랑했다.
엄마의 책과 나의 정사를 같은 것으로 보는 슈코, 남편과의 정사, 남편과의 사랑을 완벽하다 믿는 그녀
슈코는 남편 이전에도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의 남편처럼 깊이 빠져든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남편을 잃을까 불안해하며, 남편이 그 어떤 짓을 해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비굴할 정도의 사랑에 빠져든 그녀지만, 한때 그녀도 남편에게 항거를, 무시당할 항거를 한 적이 있었다. 나 아닌 다른 여자와 당신이 자면 슬프다고, 술에 취한 그녀는 그렇게 구슬피 말했지만,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그녀가 절대로 마시지 못할 우유를 주며 억지로 마시게 한다. 주르르 주르르 흘리면서 몇번의 실패 끝에 그녀가 억지로 우유를 삼키자 남편은 잘했다고 칭찬하였고, 그녀는 칭찬받아 행복해한다.
새디스트와 매조키스트를 보는 기분이랄까.
슈코의 남편에 대한 헌신적이고도 무모해보이는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야좋을지 모르겠다.
엄마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그녀의 사랑
매일 봐도 설레고, 가끔 봐도 설레고, 혹시나 남편에게 버림을 받을까 불안하고.
이야기는 그런 쇼코와 미미의 관점에서 각각 교차하며 흐른다. 같은 시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말이다.
미미의 젊음이 부러웠던, 질투났던 쇼코와 원숙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쇼코의 그 무언가에 역시 부러움을 가졌던 미미,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결국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휴양지에서의 인연, 그리고 그것이 전혀 엉뚱하게 이어질 수 있는상황이었음을.
쇼코는 정말 남편에게 왜 그리 연연하고 심지어 그의 여자들까지도 다 감내해가면서 그를 소유하고 싶어하는지.
사랑이 그래야 완벽한 거라면, 불완전하더라도 안정적인 사랑을 선택하겠다.
인생을 전율하게 할 만큼 좋아하는 위험한 사랑이 있다면.
딱 떠오르는게 불나방이었다. 불 속에 뛰어들어 타버리고 마는 나방의 사랑.
쇼코는 그런 위험한 사랑을 하고 있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미미의 시선에서도 분명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나잇대가 그래서인지 자꾸 쇼코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린여학생들이 읽는다고 미미에게 공감하게 될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