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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립트 ㅣ 스토리콜렉터 15
아르노 슈트로벨 지음, 박계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소설의 내용을 이렇게 표지로 잘 살려 놓은 경우가 있을까.
표지 속 이 기괴한 조합은 소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끔찍한 예를 보여준다.
니나라는 여대생에게 소포가 배달되었다.
주문한 책인가 하고 뜯어보니 이상한 재질에 글씨를 쓴 것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불쾌한 그것은 차마 상상할수 없으나 상상하게 된 그대로의 것이었다.

대형 신문사 대표의 딸이 실종이 되고, 며칠 후 이상한 소포 속에 그 실종된 여자의 등 피부에 쓰인 소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그 혐오스러운 글들은 알고 보니 '스크립트'라는 소설의 내용이었고, 실제 소설 속 사건을 따라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살아있는 채로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 거기에 책을 한장 한장 쓴다라..
스크립트의 저자인 얀의 책은 확실히 잔인하면서도 이상한데가 있었다. 몇년전에도 얀의 소설을 모방해 잔인한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언론에 그 사실이 유출이 되었고, 얀의 소설은 불티나게 팔려 그를 인기작가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펜을 잡았고, 새로 나온 그의 소설 '스크립트'는 전작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기괴한 소설이었다.
소설 속 모방 사건은 사실상 소설을 쓴 작가, 출판사, 편집자 그리고 서점 주인 등 그 소설에 얽힌 사람들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기에 실종된 신문사 사장의 딸 하이케의 사건을 수사하던 마르센과 에르트만은 소설의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을 주축으로 수사망을 좁혀나간다. 심지어 니나의 주변 인물들조차 수상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나는 잔인한 폭력성을 지닌 언어의 무기 가운데 하나를 소설 첫 페이지에서 독자의 독에 갖다 댑니다. 나는 독자를 문체의 인질로 잡고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심연 속으로 나를 따라오라고 독자에게 강요합니다. 단어들은 부상을 입힐 수 있을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253p
추리, 스릴러 소설 등을 읽다보니 늘 의외의 반전에 호되게 당하곤 해서, 이제는 모든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끌려가기 일쑤지만, 쉽게 당하지는 않을거야 하면서 그렇지 않은척 해보려고 발악을 하는 거라고나 할까. 사실 작가는 모든 사람을 다 의심이 가게 만들어놓기도 했다. 결국 덫에 빠지는건 나같은 독자.
하루하루가 지날 수록 하이케의 생존은 보장하기 힘든 상황, 그 속에 니나까지 납치되는 사건이 추가로 발생한다. 연이어 발생되는 등 피부가 심하게 훼손된, 책으로 만들어진 여성의 시체들이 발견되고, 말도 안되는 이런 소설을 쓴 사람에 대한 분노와 함께 돈을 벌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가에 대한 욕지기가 치밀어오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말을 지어내는듯 하고 뭔가 수상하다.
사건에 몰입하기에도 정신없을 두 사람에게, 상사 슈토어만의 마르센의 꼬투리를 잡아내려는 훼방까지 더해져 진지하게 사건에 몰입해도 모자랄 두 사람을 더욱 몰아세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상상하기 싫지만, 자꾸만 상상하게 만드는 상황. 끔찍한 상황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오히려 사건에 대한 몰입도를 간간히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인간의 잔혹함이 도대체 어디까진인가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들. 스릴러를 좋아한다고 해도 책 속의 허구의 사건이라 믿기에 읽는 것일뿐 그것이 실제 일어날 일이라고 한다면, 그 누가 박수를 칠 수 있을까 싶은데.. 책 속의 책 스크립트의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고, 베스트셀러로 뜨기 직전에 이르기까지 한다. 사람들의 호기심이 불러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일들.
읽는내내 소름이 쭉 끼쳤지만, 사실 잔인한 사건의 묘사가 사건 전체의 줄거리를 너무 압도하는 느낌도 강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