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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일지도 모르는 코끼리를 찾아서
베릴 영 지음, 정영수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13세인 벤은 40대밖에 되지 않은 아빠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는게 너무나 힘들어져버렸다.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예전같이 대할 수가 없었고, 아빠의 부재를 대신할 그 무엇도 찾을 수가 없었다. 넋이 나간 듯한 엄마의 행동도 마음에 들지않고, 9살 어린 여동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교 수업도 마음대로 빼먹기 시작하고 컴퓨터 게임에만 열중하는 등, 현실도피의 경향을 보이자, 벤의 할머니는 벤과 함께 인도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벤에게의 통보, 당연히 벤이 순순히 떠날리는 없었다.
벤의 할머니 노라는 초등학교때부터 인도의 샨티라는 동갑내기 여자애와 펜팔을 하였다 한다. 샨티와 정말 깊고 깊은 우정을 쌓고 언젠가 보러 가고 싶었는데, 샨티가 중매결혼을 한다는 이야기에 노라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어 라는 답장을 보낸 이후에 편지가 끊겼고, 그렇게 연락없이 수십년을 보낸 그 친구가 보고 싶어 인도로 떠나겠다는 것, 그 여행에 벤을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언제 가게 될지 모를 해외, 그것도 인도라는 전혀 생소한 나라에 할머니와 단둘이의 여행이라니 비뚫어질대로 비뚫어진 상황이었던 벤은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시큰둥하게 받아들이고 다녀오기로 결국 결심한다.
머나먼 캐나다에서 인도까지의 거리보다 사실상 더 깊고 멀었던 것은 벤의 상처받은 마음의 깊이였다. 사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것은 벤뿐이 아니었다. 할머니 노라는 아들을 잃었고, 엄마는 남편을 잃었으며, 여동생 로렌 또한 사랑하는 아빠를 잃었다. 하지만 벤은 우선 자신만의 상처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었다.
인도는 사실 평범한 여행지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영혼을 중시하는 곳이자, 모든 사람이 철학자 같은 말을 내뱉기도 하고, 또 그만큼 사기도 난무하여, 정말 여행객들이 안심하고 돌아다닐 그런 곳은 아닌걸로 알고 있는데 여행에 거의 문외한인것 같은 할머니와 열세살 벤은 다행히도 무사히 잘 여행을 하고 다녔다.
무엇보다 연락이 수십년째 끊긴 소녀시절의 펜팔친구를 찾아 70 가까운 할머니가 인도로까지 여행을 한다는게 믿기지 않았는데
작가인 베릴 영은 실제 자신의 펜팔을 찾아 인도로 세번의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하였다. 그 경험이 녹아들어있는 작품이 바로 이 책이었다.
캐나다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나라인 인도였지만, 놀랍게도 인도에서 할머니와 벤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어린 아이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와도 편안히 영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정말 그런가? 소설 속에서뿐일까? ) 그리고 벤은 그곳에서 만나는 코끼리에게 자신도 모를 뭔가의 깊은 이끌림을 받는다. 상처같기도 하고, 뭔가를 전달하는 것 같은 그 의미. 그리고 죽음과 환생 등, 그가 알고 있는 죽음과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있는 인도인들의 남다른 종교관과 사후 세계 등의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사랑하는 가까운 이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경험한 벤이었기에 (나 또한 가장 가까운 이 중의 하나였던 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때 돌아가셨을때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 보통의 아이들보다 한층 더 깊이있는 성찰로 인도를 받아들이고 느끼게 된다.
인도의 여러 신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었지만 이책에 나오는 시바 신의 아들 가네샤의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머리는 코끼리의 모습을 한 소년 신이고, 아이들의 소원을 이뤄주기에 아이들이 가네샤 앞에 사탕 등의 제물을 갖다 두고 소원을 빈다는 것이었다. 소년 벤은 자기도 모르게 실제의 코끼리에게도 끌리고 가네샤라는 그 소년 신에게도 강한 끌림을 받게 되었다.
할머니의 친구를 찾는 여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 주소를 알지도 못했고 학교 홈페이지는 폐교가 되었는지, 운영이 제대로 안되고 혹시 몰라 학교 홈페이지 동창생들에게 메일 같은걸 보내봤으나 답신이 오지도 않았다. 할머니와 벤은 사실상 인도에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어도 할머니는 친구를 찾지 못해 기진맥진하고, 벤은 끌려왔다는 생각에 또 자신이 빠져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충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게 된다. 마치, 우리가 해외에 나갔다가 핸드폰이 안되거나 인터넷이 안되어 맥이 빠지는 경우와 같다고나 할까?
할머니는 오랜 여행기간동안 (17일 정도) 벤과 차분히 이야기할 기회를 얻길 바랬고, 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답타의 존재를 몰랐던 벤은 차츰 아날로그식 인도의 문화와 문물 등이 훨씬 더 재미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할머니는 기겁을 하는 코브라 등을 직접 보고 다양한 것을 체험해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인도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떠났던 여행이지만, 벤은 상처받았던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할머니에게 상처만 내던 자신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원제는 Follow the elephant라 코끼리를 찾아서 지만, 번역본의 제목은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는 코끼리를 찾아서로 좀더 멋지게 표현되었다. 소년은 코끼리와 자신을 동일시, 혹은 떼어놓지 못하고 연결고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머나먼 그 곳에서였지만 그 누구도 대신 치유해줄 수없었던 상처를 소년은 되돌아볼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와의 여행이 전혀 생뚱맞게 느껴졌었지만, 여행이 소년과 할머니에게 준 의미가 무척이나 크고 아름다운 것이었기에, 참으로 멋진 작품이 탄생되어 나오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