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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과 사귀다
이지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월
평점 :

오늘은 어딜 가볼까?
일상에서도 여행의 기쁨을 누리길 좋아하는 나는, 하다못해 신랑과 아이 유모차를 끌고 동네 한바퀴 산책하는 것도 너무나 좋아한다.
여행. 하면 아무래도 비행기를 타거나, 장시간 차를 타고 달려서 어딘가 새로운 곳에 도착해 호텔에서 묵고 새로운 풍광을 구경하고 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매일 여행만 다닐 시간도, 여력도 없으니, 그저 일상의 한 순간을 여행처럼 즐겨봄도 좋을 것 같다.
그런 간단한 방문과도 같은 놀이를 나 역시 좋아한다.
어제도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거창하지만, 분명 드라이브를 겸한 즐거운 나들이였음을, 그것도 깊어가는 밤, 깜짝 나들이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신랑이 피곤한데도 운전을 해가며 마련해줬던 그 나들이에 무척 행복하였다.
양가 부모님과 가족 회식을 하고, 괜찮다 사양하시는 부모님을 시댁까지 모셔드린 후에 시간이 생각보다 늦지 않아서, 이대로 들어가기 아쉽지 않냐며, 신랑이 먼저 제안해 만인산 휴게소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집에 가서 얼른 레고 동영상을 보고 싶은 아이에게도 구슬 아이스크림 먹고, 거위도 볼수있는 만인산 가자 해서 달래서 갔고, 신랑과 나는 만인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1800원짜리 맛있는 커피의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즐기러 갔다. 화롯불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고, (아들은 소방차를 갖고 와 그 불을 꺼야겠다고 ) 그 온기가 좋은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서서 커피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여행이 뭐 별건가.
저자는 그와 또다른 공간 여행을 즐긴다.
아니, 여행이라는 이름이 아닌, "그곳과 사귀다"라는 표현을 쓴다.
처음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나와서, 그렇게 일상에서 만나고, 그녀가 수시로 찾는 그런 "행복하면서도 평범한" 장소들만 나올줄 알았는데, 의외로 산후조리원, 소아병동, 응급 센터, 114안내센터 등, 여행이나 사귀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장소들까지도 소개되어 있어서 놀랍기도 하였다. 이 책에 실린 그 모든 곳들이 수시로 그녀가 찾는 그런 곳이라기보다는 하나하나의 공간에 의미를 부여해 생각하는 글을 남기게 만든 곳들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만나는 장소들.
그녀가 담아낸 그 곳들에 나도 방문하거나 곧 방문할 예정이거나.
그러나 주 목적(친구의 아기 탄생, 병문안, 혹은 회식)등만 생각해 다녀왔던 나와 달리, 그녀는 그 장소에 대한, 또 장소와 관련된 말에서 서술된 그 느낌 등을 그대로 적어 표현한 것이 새로웠다.
그렇게 편안하게 읽히는 글들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일상을 돌아보는 방법이 참으로 다양하구나.
사람 사귀기를 어려워하는 어른에게, 해외여행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소탈하게 만나보라고 조언해주었던 저자인데, 막상 놀이터에 나가면, 쉽게 통성명하고 금새 친해지는 어린 아이들을 보며, 어른과 다른 그 순수함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행여 어른들의 말을 통해 나쁜 말이라도 듣게 되지는 않을까, 갓 태어난 아기 앞에서 전화 통화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산후조리원의 어느 산모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을 하게 하는 사주카페의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그녀의 소소한 일상여행.
신혼 초에는 신랑과 단둘이 집앞 슈퍼만 가도 행복했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지금은 아이가 둘이라 단둘만의 산책은 거의 꿈도 꾸기 힘들다 웃으며 건넸던 그 말이 때때로 나 또한 공감되며 떠오를때가 많다. 지금은 2+1이 되었지만, 둘이 걸어도 좋고, 셋이 걸어도 좋은 길이다. 난 혼자 걸을때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그 시간이 더 좋다.
동네 한바퀴 살짝 돌아도 좋고, 그저 어딘가 작고 소소한 공간에 들러, 일상의 그 곳에서 나는 여행을 하였노라 생각해봐도 좋을 그런 순간들.
여행이 뭐 별건가. 공간을 사랑하면 되는 것을.
편안하게 읽히고, 행복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