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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니카 자유 공책
니시 카나코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사춘기 소녀도 아닌데, 벌써부터 비밀 노트를 간직하고, 그 안에 자기가 들은, 기억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 놓는 아홉살 깜찍한 소녀 꼬꼬.
본명은 고토코지만, 발음하기도 힘들고, 꼬꼬라는 그 애칭이 너무나 잘 어울릴 정도로 깜찍한 소녀가 아닐수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아빠, 심지어 세 쌍둥이 언니들로부터의 온갖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귀여운 외모의 소녀 꼬꼬. 그녀는 사실 그런 가족들을 귀찮아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머리가 나쁜 아빠, 평범하고도 사소해 늘 수다스러운 세 쌍둥이 언니들, 가족 중에 그나마 꼬꼬가 존경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보는 사람이, 그 역시 가족들의 수다스러움을 사랑하지 않는 고고한 인물 할아버지였다. 꼬꼬와 할아버지는 말을 따로 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토코는 큰 인물이 될지도 몰라. 근데 큰 인물이라면 어떤거지?
막연한 할아버지의 기대와 호기심이 읽는 이들을 웃음짓게 만든다.

엉뚱한 소녀 꼬꼬의 이야기.
사실 어린 꼬마아이가 감히 부모님들을 우습게 알고,친구들의 아픔까지도 부러워한다니, 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일것같은데.
작가는 재치있게도 그런 꼬꼬의 엉뚱함과 천진함을 너무나 잘 살려 놓았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독자들마저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꼬꼬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꼬꼬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좀더 특별해지고 싶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것이다.
꼬꼬가 고독해지고 싶었던 것은, 가족들이 너무나 화목하기 때문에, 잠시도 꼬꼬를 혼자 둘 새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언니들의 쉬지 않고 몰려드는 조잘조잘 관심들. 사춘기 소녀들임에도 그들은 너무나 천진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어린 동생 꼬꼬를 귀여워하고, 순수하게 자신들의 평범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생활한다.
책에는 꼬꼬 아빠,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세 언니들의 모습을 백치미로 표현해내고 있다. 아니, 한 가족을 이렇게 모두 뭉뚱그려 폄하해도 되는 거야? 싶지만, 아홉살 꼬꼬가 보기에도 눈에 띌 그들의 무지, 그러나 그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불행해하지않고 너무나 행복하고 일상이 즐거울 따름이다.
꼬꼬의 주위에는 꼬꼬가 부러워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사실 그 친구들은 도리어 꼬꼬의 평범함과 행복이 부러울 수도 있을텐데. 꼬꼬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게다가 꼬꼬뿐 아니라 꼬꼬의 반친구들 모두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른 친구들을 이런 저런 이유로 부러워하고 멋지다 생각한다. 베트남에서 난민으로 일본에 들어온 고쿤네 가족, 지금은 베트남 식당을 차려 너무나 장사가 잘 되고 있지만 고쿤 자신은 일본어 밖에 하지 못하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우동이다. 러시아인 엄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세르게이, 그 소년은 뭐 특별하긴 하지만,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색을 밝혀 꼬꼬의 관심 밖이고. 그리고 반 임원을 맡은 박군. 꼬꼬가 가본 중 가장 큰 부자에 멋진 목소리와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인 훈남이 아닐수 없었다. 박군이라는 이름에서 혹시? 했었는데 역시나 재일 한국인 4세였다. 엄마, 아빠의 이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태고, 꼬꼬의 난동 아닌 난동에 의해, 박군은 패닉 상태에 빠져 부정맥으로 쓰러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의 꼬꼬.
어른스러운 동경의 대상인 친구의 안대가 부러워, 그녀의 다래끼-할아버지가 맥립종이라고 일러줌-마저 부러운 지경에 이르른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병원에 실려간 박군의 부정맥마저 부럽고,자신도 부정맥이라며 소란을 피우다가 담임 선생님의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박군을 병문안 가서, 패닉이라는 어려운 단어에 사로잡혀서 박군에게 패닉군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어한다.
어라, 이 꼬마 참 당돌하고 어이없잖아? 하기엔, 일부분만 봤다 할 수 있다.
꼬꼬가 그럴 수 있었던 건, 그가 한번도 불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독한 적이 없었기에 고독을 그리워하고.
진정 고독한상태가 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을무렵,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 친구 폿상과 함께 시원하게 울어버리기도 한다.
꼬꼬를 둘러싼 가족들의 사랑도 크나큰 사랑이었지만, 꼬꼬가 외롭지 않게 지켜준 것은, 또 꼬꼬의 무지몽매함을 한결같은 친절함으로 감싸안아준것은 바로 이웃에 사는 친구인 폿상이었다. 폿상은 말을 더듬지만, 꼬꼬는 그런 더듬는 행위를 멋지다 생각한다. 물론 꼬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고쳐야할 것으로 보고, 폿상에게 스트레스를 줬지만 폿상은 꼬꼬의 진심을 알기에, 자신을 멋지다 생각해준 꼬꼬에게 되려 감사함을 갖는다. 그리고 꼬꼬가 미처 몰라서, 부정맥을 부러워하고 하는 행위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하기 보다, 대화로써 꼼꼼히 풀어가며 꼬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한마디로 책에 나온 인물중 가장 똑똑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어른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좋은 친구와 가족들을 둔 꼬꼬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그 시작은 혼자서 동떨어져 있어 진정한 행복을 알지 못했던 꼬꼬의 고독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