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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그래픽 노블은 만화와 비슷하지만, 그와 좀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듯 하다. 우선 내가 그래픽 노블이라고 접했던 작품들이 대개 미국의 작품들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눈에 익숙한 일본 만화의 그림톤이 아니라, 다소 좀 거친 듯한 필체로 그려진, 정제되지 않은 그런 그림이랄까? 너무나 딱 떨어지는 그림에 익숙하다보니 그래픽 노블의 그림체가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책은 정말 엄청나게 화려한 수상경력에 눈이 돌아갈 정도의 책이었다. 2004년 하비상 최고의 작품, 최고의 작가, 최고의 만화가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 최고의 만화책 상 수상, 폴 그레빗의 죽기전에 봐야할 1001권의 만화책, 22011년 가디언 선정 최고의 그래픽 노블 10 등등. 만화와 그래픽 노블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화려한 수상경력을 꿈꾸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나를 놀라게 한 또다른 사실.
이 책이 너무나 두껍다는 것이었다. 580페이지가 넘으니, 정말 어지간한 사전 두께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래픽 노블답게 그림이 많으니 정말 술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담요, 그리고 그에 얽힌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담요를 읽기전 짤막하게 작품에 대해 인지한 내용이었는데.
책은 의외로 남자주인공 크레이그의 암울한 어린시절부터 시작한다.

크레이크와 동생 필.
어린 동생과 티격태격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빠는 정말 너무너무 무서운 골방에 둘 중 하나, 특히 허약한 필을 가두고, 감금한채 밤을 새라며 내려가기도 하였다. 벌레가 가득한 어두컴컴한 골방 속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버지의 학대서부터 시작을 해서, 집안에 뭔가 문제가 많은 집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것은 폭력적으로 보이는 그의 아버지와 아이들과 가정보다는 기독교에 더욱 심취한 그의 어머니가 크레이그 형제가 어른이 되도록 더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평범한 가정의 부모님처럼 그렇게 지냈다는 것이다. 음, 다만 아이들을 부드럽게 다룰 줄 몰라 그 섬세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거칠게 다루었다 생각해야하나?
크레이그와 필은 둘이서 놀때의 추억만이 행복한 추억이었다. 조금씩 자라면서 서로를 외면하게 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각자가 살아남기에 급급해하였다. 키가 작고 허약해,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에게 놀림거리가 되고, 진정한 휴식을 얻지 못하였던 크레이그. 그는 교회 수업에서 자신의 천국을 찾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면서 성경에 위배되는 삶, 10대들의 사랑 등에 눈을 뜨고 싶어도 떠서는 안될것같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번민하는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가 성경 캠프에서 만나게 된 레이나.
레이나와 그는 한눈에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학교에서 왕따나 다름없던 크레이그와 달리 대도시에서 사는 레이나는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은 그런 아이였다. 그럼에도 둘은 한눈에 반하고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레이나의 부모가 이혼 위기에 몰려 힘들어함을 알고, 크레이그는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레이나에게 2주간 놀러가기로 하였다. 양쪽 집안이 다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이긴 했어도 남녀 친구네 집에 2주나 머무르게 한다는 것이 참 트인 집이라고 해야하나? 놀랍기만 하였다. 어찌 됐건 그런 상황 속에서 둘은 둘만의 사랑을 키워나가게 된다. 너무나 그리워했던 서로.
게다가 놀랍게도 레이나는 헝겊을 자르고 오려, 하나하나를 바느질로 연결한 퀼트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크레이그를 위한 담요를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입양한 지체부자유자인 동생.아니 언니인가. 암튼 형제를 돌보는 레이나의 모습. 이기적이고 방탕한 10대의 모습이 아닌, 가족에게 헌신을 다하고 배려할줄 아는 10대의 모습이 그려져있었다. 크레이그도 그런 레이나를 사랑한게 아니었을까.
레이나가 형제와 조카를 아끼고 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크레이그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소중한 동생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에 비해 동생과의 즐거웠던 추억이 훨씬 많음에도 나쁜 아이들이 놀릴 때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고, 베이비 시터의 성폭력으로부터도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는 그 자신도 지킬줄 모르는 그런 나약한 존재였기에.. 다른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을 감히 상상조차 못했으리라.
그런 크레이그가 레이나를 만나 사랑에 눈뜨게 된다.
레이나의 가정 또한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이라, 집안에 걸려있는 예수님의 그림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반성되고 또 반성되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향하는 사랑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불처럼 뜨거웠던, 그러면서도 날이 갈수록 어쩐지 거리감이 생기는 그런 사랑의 유효기간은 14일이었다.
레이나는 크레이그와 같이 살고 싶었고 크레이그도 그러고 싶었지만, 당장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일생의 훨씬 긴 시간보다, 그들이 함께 한 14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깊고 소중하게 그려지는 작품이었다.
담요에 담긴 레이나의 사랑.
그리고 돌아와서도 레이나와 사랑을 계속하고 싶었으나, 붕괴 직전의 가정과 떠맡아야할 수많은 책임앞에서 장거리 연애에 부담이 있던 레이나와 성직자의 길을 가도록 종용되는 삶에서 번민했던 크레이그의 고민은, 만나지 않고 떠나 있기에 식을 수 밖에 없었던.
아니 서로를 위해 접어야했던 사랑의 추억이었는지 모른다.
레이나의 모든 것을 태워버렸으나, 차마 태워버릴 수 없었던 담요는..
그렇게 비닐에 쌓인채 봉인되어 있다가..
몇년의 세월이 흐르고, 여전히 자신을 제대로 못 알아보는 부모님 속에서 불안해하던 그가, 레이나의 담요를 덮고 위안을 얻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책의 꽤 많은 부분이 기독교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있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소년이지만, 소년과 소녀의 부모님들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아이들과 천국에서 만날 삶을 꿈꾸며 행여나 그들이 생각하는 "허튼"길로 아이들이 갈까봐 조바심내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들의 행복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부모가 신경을 쓰고 눈을 떴으면 좋으련만, 가장 좋은 것은 지금의 삶이 아니라 천국에서의 영생을 함께 누려야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아이들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우리나라에도 기독교가 있지만 서구의 기독교 문화는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더 가정 내에 깊숙이 침투해있는 느낌이었다. 기독교가 아닌 사람에게는 더욱 갑갑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거기에 앞서 아이들의 진정한 삶을 바라다볼 줄 아는 부모의 이해가 선행되어야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교회의 힘이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수도 있지만, 때로는 튕겨져 나가게 만들수도 있음을 크레이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