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평점 :

"일이 망가지는 시점은," 메리디스의 말투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은 사람을 애통해 하는 사람처럼 분노와 슬픔이 어우러져 알아듣기 어려웠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때예요." 72p
자신이 속할 수 있는 두 가족의 이야기. 자신이 자녀로 속했던 가족과 부모가 된 후 이루는 두 가족.
에릭 무어는 첫번째 가족의 붕괴 이후, 어렵게 이룬 두번째 가족, 자신이 아버지가 된 그 가족의 행복을 지키려 고군분투한 삶을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믿어왔다. 에릭의 아버지는 잘 나가던 사업이 무너진 후, 가족을 등한시하다시피한 가장의 모습을 보였고, 어머니는 항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었으나 결국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가장 어여쁘고 사랑스러웠던 막내 여동생은 암으로 목숨을 잃었고, 부모의 사랑에서 늘 빗겨나 있었던 형 워렌은 제대로 된 일을 갖지도 못하고 늘 만성 알콜 중독인 상태로 홀로 중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또다른 가족을 이룬건 결국 에릭 하나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키이스. 그렇게 그들은 영원히 행복할 줄로만 알았다.
키이스가 마을의 어린 소녀의 유괴 용의자로 주목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아이가 그럴리 없어. 세상 그 무엇이 무너져도 믿어줘야할 부모의 믿음. 에릭 역시 자신의 아들이 그럴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아들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에릭의 의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막상 우리가 그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상황들이 자꾸만 생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아들을 믿었어야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직을 하더라도 부모의 믿음이 없다면 아이는 어찌 세상을 살아가고 견딜 힘이 있겠는가.
자신의 아이가 어린 여덟살 여아를 납치하거나 살해할 상황이나 힘이 없을 거라 믿으면서도 자꾸만 에릭은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 앞에 키이스 역시 솔직하지가 못했다. 게다가 키이스는 아빠에게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아빠는 지금 날 의심하고 못 믿는거 아니냐면서.
에릭은 아들을 믿고 싶다. 그러나 뭔가 형 워렌처럼 부족하고 믿음이 덜 가는 우울해보이는 아들을 보며, 자꾸만 아들이 허튼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지, 그럴거라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자신의 망상이 아들이 에이미를 납치하거나 하는 장면이 연상되곤 한다.
아들 앞에서 입밖에 내지 않았다 생각했으나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눈길을 예측하고, 자꾸만 엇나가려 한다.
경찰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의심은 자꾸만 불거지고, 게다가 당사자인 에이미의 아버지는 딸을 잃었다는, 게다가 키이스가 반드시 자기 딸을 유괴하고 죽였을거라는 생각에 거의 폭발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동시에 에릭은 자신의 붕괴된 첫번째 가족의 죽음 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저 자살인줄만 알았던 엄마의 죽음 뒤에 어쩌면 보험과 관련된 아버지의 음해가 있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자 그는 그 사건을 자꾸만 파고들게 되었다.
에릭의 아버지는 그래서, 지금 키이스때문에 네 아버지를 엄마 살해범으로 몰고 가겠다는 거냐 윽박지르고, 키이스의 컴퓨터에 여아 누드 사진을 남겨놓은 형 워렌의 행동을 알고 에릭은 형에 대한 어둡고 폭발적인 기분을 갖고 따져묻게 되었다. 그렇게 거의 붕괴되었던 그의 첫번째 가족은 아주 갈갈이 찢겨버리고 말았다.
10대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 고민을 상담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과 충돌하였으나 엄마와의 문제로 다시 아들과 마음을 여는 그런 계기, 그리고 또다른 국면에 접어들고 말았다.
일이 흘러가는 과정은 정말 파국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산한 핏빛 정원, 붉은 낙엽으로 채워진 그 정원은 사실 피로 물든 그런 슬픈 정원처럼 보인다.
행복하고 싶었던 가장은 그렇게 허물어져버리는 가정 앞에서 정말 어떤 심정이 되었을까, 먹먹하기만 하였다.
할런 코벤이 극찬한 작품이라 해서 재미 면에서 너무 큰 기대를 하였기에 생각했던 외의 결말과 전개에 아쉽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아픈 상황이 절절히 모두 공감되는 상화임에 너무나 가슴이 아파왔다.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과 말들, 그럼에도 우리가 가족이라면, 형제고, 부모 자식지간이라면, 아무리 오해가 될 상황이라도 한번 더 믿어주어야만 했다. 가족이 아니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진짜로 잘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슬픈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가족의 따뜻한 믿음이 먼저 탄탄히 마련되었어야했음을. 그 마음의 부재가 너무나 아쉬움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