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를 졸업하다 -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에세이
김영희 지음 / 샘터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님의 <아이를 잘만드는 여자>가 나온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한다. 그 책을 읽은지 그리 오래 세월이 흘렀던가.
이후에도 몇권의 에세이를 내셨지만 내가 읽어본 책은 김영희님의 첫 에세이뿐이었다. 티브이에도 김영희님이 가족과 오손도손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고, 이제는 기억에서 잊혀질 무렵, 많은 나이차이와 국적까지 극복하고 결혼했던 독일인 남편 토마스와 이혼하셨다는 이야기도 접하게 되었다.
닥종이 인형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시절, 김영희님의 작품을 보고, 이렇게 우리 느낌이 물씬 나는 작품을 독일인들도 좋아한다는 사실에 놀라웠었는데, 한국 아이 셋을 데리고 독일까지 날아가, 토마스의 아이 둘을 더 낳고 살고 계신 김영희님의 이야기, 이후로도 쭉 행복하였다라는 해피엔딩을 듣고 싶었으나 그러진 못했던 이야기, 그 후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엄마를 졸업하다.
이제 일흔이 넘어 아이들을 모두 독립시키고 비로소 엄마를 졸업하게 되었는가 생각하지만, 자식들이 되려 엄마를 챙기는 신세가 되어 눈치도 보고 그런다는 이야기부터 시작이 된다. 워낙 똑똑하고 다부지게 자란 맏딸 유진은 이제 엄마의 보호자로 자처하려는 모양이었다.
본인은 한번도 아이들에게 그 친구랑 놀지마~ 이야기한적이 없다는데, 딸은 이웃 아줌마와 놀지 말라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엔 어느 정도 교양 있어보이던 옆집 아주머니였는데, 딸이 밤중에 동창과 함께 길을 걷다보니, 그 아주머니가 평소와 달리 요란하게 차려입고 젊은 사람들과 희한하게 어울리는 모습에 충격을 먹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랑 어울리지말라는 딸의 조언을, 무시하고도 싶었지만 엄마가 자녀의 조언에 귀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단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엄마 이야기에 자꾸 참견도 하게 되고 그런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엄마의 친구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딸을 꼭 두어야한다는데, 때론 잔소리꾼이 되지만 친구보다 엄마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또한 딸이 아니었던가. 아들만 하나 있는 난 그래서 딸 둔 사람이 부러워졌다.
엄마를 졸업하다란 제목으로 시작해 그런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엄마같은 맏딸 유진, 실속있지만 알보고니 똑 부러지는 큰 아들 윤수,자꾸만 정이 가는 장수, 누구보다 똑똑해서 믿음이 갔던 봄누리가 준 충격, 그리고 사랑이 크기에 더 아픔도 컸던 프란츠
다섯아이의 엄마다보니 각양각색의 경험을 하게 된 엄마의 이야기.
철저하게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삶을 살아가는 독일인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한국인의 정서.
그녀가 잘 살고 잘살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는데, 만년 소년 같았던 남편 토마스는 친자식인 프란츠를 사랑하기에 더욱 혹독하게 가르치고 뛰어나길 바랬다 한다. 독일인들이 은근히 잔인함도 있었는데, 어린 천사같은 프란츠에게 그렇게 대함은 아이를 비뚫어지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한다. 조금더 부드럽고 조금더 섬세하게 다뤄졌어야 할 아이였는데, 그녀는 늘 프란츠가 가슴아프고 신경이 쓰였지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열 여덟에 자신 스스로 독립시키기로 한다.
아이들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낸다.
독일에 살면서, 늘 이방인 같은 그 느낌, 한국에 오면 달라질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도 그녀에게서 이방인의 느낌이 난다며 이야기하면, 그게 참 속상할 것 같았다. 한국에선 그저 한국인이고 싶은 그녀였을테니.
30년을 독일에서 살아왔지만, 어렵게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이라 제대로 독일어를 따로 시간내 배울 시간도 없었고, 아직도 그녀는 독일어에 자신이 없다 하였다. 그래서 독일어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게 무척 어렵다는 그녀. 인터뷰도 웬만하면 사양했지만 다행으로, 그녀의 작품을 보고 온 기자가, 이미 '아이들-그녀의 작품'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괜찮다~고 위로해주어 안심이 되었다 하기도 하였다.
여자, 엄마가 된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닐수 없다.
나 또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남들 다하는 일상 수순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아이 엄마가 되고보니, 이젠 내 세상이 아닌, 아이의 세상이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 아이의 가장 큰 보호자가 되는 거였고, 그 딱지는 아이가 독립을 할때까지 쭈욱 이어질 것이었기에 처음 한동안은 아이덕분에 밤잠을 제대로 (아니, 사실 아이 돌이 가까워오도록 바닥에 등대보고 잔 적이없었다.) 자지 못하는 사실에 기겁을 하기도 했었다. 이제는 아이와 같이 팔베게하고 잠도 잘 자고 그러지만, 언제 그런 신생아 시절이 있었나 싶어 아득하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두고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인지라, 아이 엄마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엄마를 졸업하다니..
과연 졸업이 있을 순 있을까 싶은데.
엄마 졸업장을 멋지게 따고 싶다는 김영희님의 이야기가 그녀 나이 일흔이 되어 풀어내는 이야기다보니 (늦둥이 아가 둘 때문에 더욱 늦어진 졸업 나이였겠지만) 공감이 아니 될 수 없었다. 정말 다섯 아이를, 늦둥이 둘까지 포함한, 다섯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난 후면, 이젠 좀 한시름 놔도 되겠다 싶을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