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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에 국내 작가분의 책들 중에 꼭 찾아 읽게 되는 두분의 작가님들이 계시는데, 바로 조정래님과 황석영님이시다.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역사적 아픔을 담고 있는 두분의 글이 때론 가슴 시리게 다가와 읽기 힘들때도 있지만,그럼에도 읽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으시기에, 두분의 책이 신간으로 나오면 꼭 한번 눈길을 주게 된다.
이번에 나온 여울물소리는 황석영 님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한 신작 장편소설이라 하여서, 더욱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아직 반상의 계층차이가 남아있던 시절의 이야기.
구한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서얼의 자식으로 태어난 여주인공 연옥은 엄마와 함께 작은 객주를 꾸려나가다가 나이 많고 재취자리인, 그러나 재산은 풍족한 집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 엄마를 닮아 생활력 강하고 눈치는 빠르나 특별한 사랑한번 해본 적 없었던 그에게 정인이 생기게 된 그날은 시집을 가기 며칠전 어느 날 밤이었다. 그녀와 몸을 섞고 홀연히 떠난 이신통이라는 남자. 그녀는 마음을 주었으나 예정대로 시집을 갔고, 그곳에서 그냥 정착해 살고 싶었으나 아이도 태어나지 않은데다가 집을 수시로 비우고 노름을 하러 다니는 남편에게 질려 스스로 집을 나와 돌아오는 대범함을 보인다. 당시 여성으로썬 꽤나 파격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여성이지만, 순종하는 삶만을 살지 않고 스스로 삶을 일궈나가려는 그 의지가 그녀를 주요 화자로 만든것이 아닐런지.
사실 주인공이라 하기엔 연옥의 연정의 대상인 이신통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말따옴표도 없이 대화와 모든 기억, 행적까지도 연옥의 입장에서 거의 서술되다시피 하는 글인지라 어색할 것 같았으나 놀랍게도 술술 읽히는 책이기도 하였다.
떠도는 바람과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사내, 이신통은 분명 연옥에게 마음을 준 남자지만, 결코 소유할 수도 삶을 같이 누릴 수도 없는 사내기도 하였다.
연옥과 같이 서얼의 자식이었던 신통. 본명 이신.
그는 공부를 많이 했어도 정실 후손인 형과 달리 노비의 자식인지라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고, 뽑힐 수도 없는 운명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떠돌이 이야기꾼이 된 이신통. 그가 흘러흘러 연옥을 만나 사랑을 이루고, 다시 헤어진 후 새로이 빠져들게 된 것이 바로 천지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동학을 이름만 바꾼 그 천지도였다. 인본주의, 사람이 곧 하늘이다. 갑갑한 세상을 물리쳐줄 그 사상에 젖어 어두운 나라 현실을 개척해내기 위해 봉기하지만, 결국 천지도의 사람들과 함께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바로 그 이신통의 생애를 통한 당시의 암울했던 시기의 이야기들, 천지도에 얽힌 사연들 등이 풀려 나온다.
길고 긴 세월을 오로지 그이 하나만 바라보고, 그의 소식만 들어도 아녀자의 신분으로 전국을 찾아 헤메며 발자취를 찾아 나선 연옥의 정성으로 말이다.
내 마음 정한 곳은 당신뿐이니, 세상 끝에 가더라도 돌아올거요. 87p
연옥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게 만든 그의 한마디.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 있는 고향에는 들릴지언정 스스로 연옥을 찾아 온 일은 거의 드물었다.
대의를 위한 혁명가들의 삶이라고는 하나, 여인이 감내하기에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삶이었을진대.
연옥은 그가 빠져든 천지도에 같이 매료되며, 짧은 날을 함께 했으나 긴 세월 그 대신 바라볼 사랑을 얻고, 모든 것을 마음으로 풀어안는다.
대인배같은 넉넉함을 보이는 그녀, 그래서인지 나는 주인공인 이신보다도 연옥의 마음에 자꾸만 더 신경이 쓰였다.
여울물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48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