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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바우길 - 바다가 부르는 소나무 숲을 가만히 거닐다
김진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8월
바우길이라는 이름에 길의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바우는 강원도 말로 '바위'라는 뜻이다. 강원도와 강원도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때 '감자바우'라고 부르듯 바우길 또한 강원도의 산천답게 인간저이고 자연 친화적인 트레킹 코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에 더해 바우(Bau)는 바빌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이름으로, 한 번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죽을병을 낫게하는 것처럼 바우길을 걸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14p
바우길은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까지 산맥과 바다를 함께 걷는 300킬로미터, 17개 구간으로 이어져, 남녀 노소, 가족 모두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참 인기몰이를 했던 제주 올레길이 바다와 가까우면서도 일부 구간 아스팔트를 포함하고 있다면, 바우길은 철저히 자연에 가까운 길이다. 15p
제주 올레길이 대대적인 인기몰이를 해서인지, 이후 지리산 둘레길, 강화 나들길 등 전국적으로 많은 길들이 관광코스로 개발되고 있다. 강릉 바우길도 그런 길이 만들어졌음을 이 책을 통해 만나 볼 수 있었다.
제주에 일년에 한두번씩 몇년째 내려가고 있음에도 올레길을 찾아 다녀본 적은 없었다. 일정도 짧았지만 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는 핑계로, 늘 관광지 등만 훑고 쉬다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한 두시간 짧게 걷는 거라면 모를까 몇시간을 내어 어려운 길을 걷는다는게 저질 체력을 자랑하는 내게는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중학교때던가, 학교별 임원들이 가는 수련회 같은델 갔다가 체력 증진을 위한답시고, 등산을 한다는 것이 자그마치 4~5시간 내내 산을 타는 등산을 한 적이 있었다. 내려올때는 완전 기진맥진해서 (물도 처음 산 초입에만 있었고 이후에는 물 한병 없었기에 너무나 목이 마르기도 했다.) 다리가 다 풀려버렸지만, 창피한 마음에 픽픽 쓰러져 남학생 등에 업히는 다른 여자애들처럼 나까지 쓰러질 수는 없다며 이를 악물고 버틴 기억이 있다. 이후로 무리한 산행은 자제하는 편이었는데, 오늘날의 산행,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우리나라 최고 대기업인 삼성전자를 다니다가, 사표를 내고 남극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여행가의 길에 들어선 독특한 케이스다.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에 들어간다는게 쉬운일이 아니기에, 갑자기 프리랜서가 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텐데, 어려워보일 수 있는 그 개성적인 꿈을 좇아 하루하루를 걷고 또 걷는 그 모습은 정말 여행을 어느 정도 사랑하는 것으로는 설명되기 힘든 그런 일이라 생각된다.
강릉 바우길 또한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또 다시 2차 순례길을 걷기 전 예비 단계로 걸었다 할 정도로, 그녀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한 애착은 상당하였다. 그녀의 바우길 위에서의 이야기는 강릉의 풍경, 그리고 홀로 많은 사색을 하게 만드는 걷는다는 것의 행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걸어 본 적이 없어서, 연달아 쭈욱 걸으면서 숙소까지 발길 닿는대로 정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여러사람에 따라 다른가보다.
저자의 경우는 그날 걸은 지점까지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바우길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숙박하고, 혹은 서울로 돌아가기도 하고, 다시 그 다음 연달아 걸을 적에 멈췄던 지점까지 차나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연이어 시작하는 식이었다.
빠뜨리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를 완주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채워나갔나보다.
우리가 아는, 아니 내가 아는 길이란, 그저 어딘가 행선지를 가기 위한 여정, 혹은 그 과정이라는데 지나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있어, 길은 좀 다른 의미였던 것 같다. 아니 올레길, 바우길 등 길을 걷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리본을 좇아 걷고 있는 그 행위자체가 정말 중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물었다. "왜 걷나요? 라고.
걷는다는 그 행위는 걸으면서 느껴지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섬세한 감흥에 집중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그저 걷는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마음을 비워내고 걷는 일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참 좋다. 44p
대설주의보가 내려, 차도 다니기 어려운 길을 친구와 같이 걷기도 하고, 홀로 걷기도 한다.
강릉의 지인을 만나 따뜻한 차 한잔과 과일을 대접받기도 하고 (그녀의 걷기 소식에 손수 싸갖고 근처로 찾아왔단다), 강릉행 기차를 타고, 예전 사랑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라오스가 제일 좋다던 친구의 말을 떠올려 라오스 방비엥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쉬었던 그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한다.
나 역시 어려서 그냥 걸으면서 생각하기를 좋아하던 때가 있어 하다못해 방안이라도 뱅뱅 돌며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런 시간마저 많이 줄어들었단 생각이 든다. 걸으면서 혼자 사색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뭔가 멍하니 있거나, 걸어도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증에 쉼이라는 것과 멀어졌단 생각이 들어 늘 아쉬웠다. 아무 것도 하지않아도 죄책감도 들지 않는 자유, 그런 자유를 다시 누리고 싶어졌다.
신랑에게 방비앵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우리나라에서도 할 수 있는건데 뭐, 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거야 그렇지만 라오스에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인걸 생각하면, 라오스에 곧 가게 된다는 이웃님께 그 이야길 꼭 들려드려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강릉 바우길 위에서 저자의 생각까지 같이 들여다보며 많은 느낌을 받았다.
걷는게 다소 쉬웠을 계절을 선택하지 않고, 어려워도 겨울의 그 강릉 바우길을 그대로 여성의 몸으로 견뎌내었던 저자의 이야기.
그래서 그 이야기가 나를 계속 끌어당긴걸까?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고, 무릎의 연골이 닳아없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걷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걷기 사랑이 그대로 이야기 속에 묻혀 바람처럼 와 닿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