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미학 기행 - 지중해의 태양에 시간을 맞추다
김진영 글.사진 / 이담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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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지의 낭만을 사랑하기에, 많은 여행 서적들이 나오면 분주히 눈길을 주게 된다.

이 책 그리스 미학 기행은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책이었다. 산토리니가 떠오르는 푸른 색, 그리스를 대표하는 듯한 하양과 파랑이 어우러진 그 표지의 선명한 색감이 읽기만 해도 시원하게 가슴을 뻥 뚫어줄 것만 같았다.

물론 이 책은 단순 기행문이 아닌, 미학 기행문, 그리스 문화재를 보여주고 그 예술의 의미를 찾아가는 서술방식이라서, 편하게 읽었던 기존의 여행 에세이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같은과 동문이었던 아내는 철학과에서 두드러진 장학생이자 지극히 현실적이다라는 평을 받은 것과 달리 그는 지극히 이상적인 사람으로 주위의 평가를 받았다 한다. 그래서 그 둘의 결혼 소식이 알려졌을때 주위 사람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말이다. 철학과에서 배웠던 니체 한권으로, 그리스를 돌아보기로 결심한 그였기에 이후 그리스 여행은 쭉 이어졌다. 또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의 여행은 아내와 함께 돌아본 그리스에서 찾아졌다. 같은 과지만,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은 두 사람, 하지만 책에서는 아내의 이야기는 아주 드물게 등장할뿐 주로 저자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펼쳐졌다. 아주 두툼한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추려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성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저자의 카메라를 통해 전해 받은 사진들은 그저 내게는 선물이라는 느낌이 한가득이었다.

멋진 여행 에세이를 많이 접해도 사실 사진에 있어선 큰 감명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는데, 그리스 국기가 하늘과 이렇게 멋스럽게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었고, 가보지 못한 그리스에 대한 환상을, 산토리니 말고도 어디에서건 찾을 수 있다는 것.

뜨거운 태양 아래 그리스를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이야기를 사진으로 우선 보여주고 글로써 풀어내었다.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자연계열이었기에 교양 수업 또한 인문학 보다는 주로 실용적인 학문 위주로 선택해 수업을 들어야했다.

그래서 철학 관련 이야기들이 나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 일쑤였는데 저자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백프로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가 담아낸 사진과 이야기들을 통해 조금씩 그 의미를 찾아가는데는 도움이 되었다.



시간에서의 해방감은 '순간순간'일 뿐이다.

시간을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간을 서서히 채워가는 힘이다. 25p

서구 문명의 발상지이자 기원으로 알려진 그리스 문명, 그 화려한 막을 시작한 그리스의 요즘은 예전 번성기에 비하면 초라하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세계 최강국이었던 로마인들의 후손인 이탈리아도 현재 고대 유물, 유적 들의 관광산업에 주로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면이었는데, 그리스에서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올림피아를 만들어내고, 세계 최강국이자, 서구 문명의 기원이 될 수많은 업적의 가운데에 서 있었지만 오늘날의 모습은 과거의 번성을 되돌아보기 어려운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반짝반짝 관광객들에게는 아름답게만 보이는 산토리니 섬 또한 그리스인 대부분이 가난하지만 정겹게 살아가던 그 소박한 공간을, 관광객들과 함께 들어온 이방인들에게 대부분 팔게 되고, 자신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서, 살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관광 산업의 발달로 지갑을 채우는 사람들은 현지 주민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란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하였다.



아테네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66p

제자리에 있어야할 유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다보니, 거기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함을 쿠로스를 통해 서술하고 있었다.

청년의 모습을 한 전신상을 일컫는 쿠로스는 인간이지만, 아폴론을 지향하고, 무표정한 모습을 하고 있음으로 인해 절제력과 침착함을 갖춘 완전한 존재에 정점을 찍었다 한다. 인간을 만들었으나 신과 가까워지려는 그 시도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물관에 모아놓은 쿠로스들로 인해, 각각의 위치에서 무뚝뚝한 모습을 보였어야할 쿠로스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어 개성없는 얼굴로 전락하였다 말을 한다.

아마 사전 지식 없이 박물관에 갔으면 몰랐을 그런 이야기들을 저자의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점이 반가웠다.



읽어보지 못했던 그리스인 조르바 등의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에 또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책이었는데, 저자가 자주 인용하는 카잔차키스가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였다.



오늘날 전세계 인들의 축제의 장이 된 올림피아의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가 없었다.

그저 그의 발길 닿는대로의 하루하루의 여정만 담아낸 책이 아니라, 해박한 지식과 자료를 바탕으로 풍성한 읽을 거리를 담아낸 책이라 인문서와 기행문의 만남을 접하는 느낌이었다.

영국인 에번스에 의해 발굴된 크노소스 궁전으로 인해 유럽의 문명의 기원이 기원전 20세기까지 앞당겨졌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문화적 자부심과 우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그들은 크노소스 궁전의 발견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전의 발굴자들과 달리 에번스는 발굴 그 자체에 멈추지 않고, 현대 재료인 시멘트로 일부를 복원하기까지 하였다 한다.

미숙한 방법으로 복원한 이미지들은 상상력에 의한 이미지 복원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하였다.

백합꽃 왕자라 알려진 벽화는 허벅지, 가슴, 머리의 관 세조각만으로 복원한 것으로 에번스와 동료의 상상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1960년에 프랑스 고고한자 미케네의 부조에서 이 왕자의 관과 동일한 도상을 발견하는데, 그 관은 스핑크스의 관이었다 한다.

현재도 이라클리온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위치한 이 벽화는 수많은 논란을 낳은 화제의 유물이다. 331p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섣불리 시도했던 시도가, 유물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해버린게 되어버리다니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주로 사진과 기행 일정 등에 초점을 맞추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았는데 다시 읽어보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그리스 문화의 가치 등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좀더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그리스를 처음 방문하게 될때 산토리니 섬의 그림같은 풍광에만 입을 벌리고 감탄하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 곳에서 아직 남아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을 좀더 배려해야하는 그의 생각을 듣고 나니 적극적으로 동참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들때문에 마치 구경거리가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한번 읽고, 두번 읽고, 그 느낌이 새록새록 새로운, 그리스 미학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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