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모리 에토 지음, 권남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첫 장면이 사실 좀 충격적이었다. 번역을 한 권남희님도 깜짝 놀랐다 할 정도로 말이다. 사실 그렇게 야하지 않게 묘사되긴 했지만 정말 그 장면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제목을 보고, 뭔가 한가한 휴양지 분위기를 떠올렸던 내게 "정신차려"라는 식의 현실이 갑자기 콱 와닿았달까. 그런 느낌이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그 1주기 의식을 논의해야하는 자리인데도 3남매는 너무 일을 대강대강 처리하려 한다. 가장 저렴한 비용을 선택하자는 둥 하면서, 약속도 미루고 현재의 애인에게 충실하고픈 주인공을 보면서, 아니 무슨 가족이 이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상당히 괴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빠 하나, 여동생 둘의 3남매 설정이 마침 우리 형제와도 같아서, 주인공인 둘째의 위치인 내가 나와는 전혀 다른 주인공을 살펴보는 모습이 다르면서도 닮은 면을 찾아가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려나? 아뭏든, 그렇다. 우리집과 비슷한 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신기하게도 언니나 오빠에 비해 여동생이 더 철이 들었고 부모님의 사랑을 한몸에 받을, 모범적인 아이였다는점이다. 그렇다고 다른 형제들이 부평초처럼 떠도는것은 아니었지만.

 

난 말이지, 두 사람을 보고 뼛속까지 깨달았어. 사랑이네 연애네 이딴 것에 의지하면 사람이 붕붕 떠서 알맹이 없는 인생을 보내게 된다는 걸. 부평초처럼 떠돌게 된다는 걸. 13P

결혼하고 아무도 내게 잔소리를 안하는데, 어머님도 엄마도 안하시는 잔소리를 내게 하는 사람이 바로 내 여동생이다. 단짝친구같은 살가운 존재면서도 언니의 단점을 자기 아니면 누가 알려주냐면서, 특히 청소를 잘 못한다거나 다이어트를 안한다거나 하는 게으른 면을 콕콕 찍어 아프게 지적하면, 누가 언닌가 싶은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래서, 부모님을 절대 싫어하지 않는, 우리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더 철들어 보이는 점만큼은 우리집과 비슷한 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사람,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 없이 가시와바라 가의 정도를 걸어온 동생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우리를 이렇게 엄하게 속박했던 당사자인 아빠는 밖에서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네."

신랄한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

"있을 수 없어."

오빠의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마치 이 다락방과 함께 통째로 세상에서 분리된 것 같은 정적에 감싸였다. 61P

 

사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지나치게 자식교육이 엄격했던 아버지 덕에 오빠도, 주인공인 나도 스무살이 되자마자 가출하다시피 집을 뛰쳐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않고 제멋대로인 삶을 살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억압이 사실 좀 심한 정도긴 하였다. 절대로 해서는 안될 것들에, 가방에 달고 다니는 인형이 토끼 인형이면, 교태를 부려서 안된다는 둥, 여학생 담임이 남자선생님이라 학교에 쫓아오겠다는 둥의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반응을 보이시는 것이었다. 심지어 밋밋해야할 지우개에서 향기가 난다고 해 압수를 당하기도 할 정도로.

아이들은 지나치게 꿈과 희망을 억압당하면서, 아버지에게서 자유로이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자랐다.

그리고 그 자유를 지나치게 누리다보니,아버지가 바라던대로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하며, 애인 사귀는데도 조심해야하는 등의 아버지식 생활에서는 철저히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덧 스물 다섯이 되었는데도 동생이 사기라고 하는 가짜 효능을 가진 천연석을 파는 가게의 점원 등의 뜬구름 잡는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는 현재의 그녀 모습이 그렇다. 집을 나오긴 해야겠는데 돈이 없으니 혼자 자취하는 남자들에게 반씩 부담을 하자며 동거를 하고 얹혀사는 생활 또한 아버지가 알면 기절할 그녀의 삶이었다.

 

그렇게 자녀들을 꽁꽁 옭아맸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런데? 정작 자녀들에게는 연애의 연자도 못 꺼내게 만든 아버지가 바람을 피셨단다.

상상도 못할 노릇이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맞춤형으로 키워졌던 막내가 가장 분개를 하였고, 다른 두 자녀 역시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끼긴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아버지는 어두운 피 운운하였는데 그 정체가 무엇일까?

아버지가 꽁꽁 숨기며 살아온 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비밀을 밝혀가는, 아버지의 정체성을 찾아 스스로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이 책의 주된 줄거리라 할 수 있었다.

 

정말 독특한 이야기였다.

워낙 소설 속에서 희한한 일들이 많이 벌어져, 아버지의 바람 따위 사소하게 넘기는 책들도 많았으나, 이 책은 그렇지가 않다. 이건 정말 중대한 배신이자, 세상이 뒤집힐 사실이었다. 사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믿었던 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있다고 하면, 아마 무지 충격을 먹는건 소설 속 자녀들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콩가루인줄 알았던 괴짜 집안의 형제들이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 몰랐던 아버지를 알아가려 하는 그 과정이 화해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풀어내기 쉽지 않은 주제였는데 이렇게 풀어질 줄이야.

게다가 결론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냥 그렇게 평이하게, 세상 사 이렇게 힘든 것이지 하고 무책임하게 끝나지 않아서 좋았다.

어느 덧 나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애정을 갖기 시작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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