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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그리는 아이 ㅣ 정글짐그림책 2
염은비 글.그림 / 정글짐북스 / 2012년 9월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쉽게 감이 오질 않았다.
책을 다 읽고, 우와~ 이책 정말 괜찮은데? 하고 다시 꼼꼼히 살펴보니, 만화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저자분이 이 작품으로 제 8회 부천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이 책은 고로 작가분의 첫 동화책이라는 말씀.
역시 평범한 작품이 아니었다.
아이들 그림책은 수상작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한게 아니라 오히려 더 재미나고, 유익한 경우가 더 많았다. 이 책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우선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실감이 났다. 특히 주인공 이하나는 이렇게 생긴 조카나 자신의 어릴적을 보고 그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생히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 어릴 적 내 친구를 보는 것도 같았고 말이다.
초등학생인 하나는 친구들과 함께 쉬는 시간에 즐거이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
모두 모여 아이엠 그라운드를 하며 자기 별명 대기를 하는데?
딸기 캐릭터로 치장을 하고 다니는 예림이는 딸기 공주, 선생님만큼이나 키큰 영철이는 전봇대, 먹을것을 밝히는 곽태우는 혼자서 곽미남이라고 했다가 친구들이 곽식탐이라고 정정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하나는 정작 자신의 별명이 없음에 당황하고 말았다.
고민하다 귀까지 빨개졌는데 친구들은 그냥 넌 이하나해~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말았다.
사실 별명을 그리 반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어른이 된 내가 어릴 적을 되돌아보면 별명을 달가워한 친구들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친구들이 친근함의 뜻으로 별명을 지어 불렀으나 사실은 그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워하는 친구도 있었고, 혹은 외모나 이름 등으로 괴상한 별명으로 놀림을 받는 친구들이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라는 내색을 하기도 여럿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별명은 뭐였지? 아이들이 모두 즐겨 부르고 놀리던 그런 별명은 없었고..옆 반 선생님이 내 성을 갖고 고무신이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일은 있었다. 또 특정 친구와 서로 친근함의 의미로 웬숫댁, 푼숫댁하며 주거니 받거니 한 기억은 있었는데..
다른 별명은 뭐였더라? 스스로 메롱을 잘한다고 둘리라 불러달라고 했던 것도 같고..
암튼 친구들의 특색에 따라 별명이 생긴 것이 부러웠던 하나는 자신만 특색이 없는 것 같아서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연습장 앞에 그린 다른 친구들 별명 그림에 비하면
몹시 초라해보입니다.
별명이란 그저 약점을 집어 놀려 대는 것인줄만 알았는데
관심을 끌지못하면 놀림받는 별명조차도 가질 수 없나 봅니다.
하나는 아무에게도 초대받지 못한 기분이 듭니다.
별명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 거울을 보고 연구하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해봐도 답이 안 나오자, 하나는 스스로 '난 존재감이 없나봐'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다음날 친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분석한 하나는 자신의 노트에 한명한명의 친구들을 그림으로 옮겨보았다.
개성 넘치는 별명의 친구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나니, 이름만 갖고 있는 아이는 자신 하나뿐임을 알게 되었다.
또다시 우울한 기분으로 밥을 먹고 나서, 자리에 돌아왔는데.. 이게 웬일.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자신의 노트를 보고 있는게 아닌가.
얼굴까지 화끈거리게 놀랐는데.. 수업시간 종이 울려 모두들 제 자리에 돌아가고 나자 놀랍게도 자신을 그렸던 연습장에 친구들이 한가득 주문과 함께 하나를 부를 별명을 지어놓은게 아닌가.
하나는 별명 박사가 되었다.
별명 그리는 아이 별명 박사.
자존감이 낮았던 하나가 스스로가 가장 잘하는 능력을 자신도 모르게 발휘해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 인기 최고의 아이가 된 것, 별명 박사 하나를 도드라지게 만든 행복한 그림책이었다.
재미난 것은 이하나의 이야기가 작가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작가의 이름은 실명으로 반 친구들 이름 속에 끼여들어가 있었다.
작가분 어릴적 모습도 이런 모습이었으려나?
상당히 귀여운 모습이던데 말이다.
뜻은 모르겠고, 어제부터 갑자기 자신을 '너맨다'라고 불러 달라고 한 다섯살 아들때문에 당황스러웠는데 금시초문의 말이라 무슨 뜻이야? 하고 물으니, "울 애기"라는 말이란다. 자신이 지어낸 신조어 같은데 스스로의 별명을 지어붙이는 아들 모습에 이 책이 생각나 한번 더 웃고 말았다. 친구들과 이제 유치원 다니면서 별명도 생기고 그러면 이 책이 더욱 와닿는 내용이 되겠지 싶고.
초등학교 선생님인 여동생에게도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좋을 괜찮은 책인것 같아서 이 책을 선물해줄까 한다.
엄마도 재미나고, 아이들까지 재미나게 읽으며, 가슴까지 훈훈해지는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이하나 축하해~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친구들도 모두 용기를 내어 행복한 아이가 되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