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절판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이 먹을 때만큼 행복한 때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생각의 차이인지라 다른 이들에게는 더 즐거운 일들도 있겠지만.

생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그냥 간단히 삶을 유지하기 위해 끼니를 때우는 것으로 아쉽게 넘겨버리기보다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보다 더 즐거이 즐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갖게 된다.



이 책의 저자 오가와 이토의 전작, 달팽이 식당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데뷔작임에도 50만부 이상 팔려나가고, 영화로 제작까지 된 책이라 하였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역시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저자 자신이 취미가 요리인지라 홈페이지에 자신만의 요리법까지 소개를 하고 있다고 하니 글은 역시 충분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이나 체험 못지않을 방대한 양의 자료 수집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의 빙수>,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 <안녕 송이버섯>, <코짱의 된장국>, <그리운 하트콜로릿>, <폴크의 만찬>, <때아닌 계절에 기리탄포> 등의 7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었다. 제목에도 음식이름이 들어갈 정도로, 이야기의 주된 소재가 바로 그 음식 이야기로 흘러간다. 하나하나 음식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먹는 과정에 빠져들게 만들면서도 이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가의 따뜻한 글솜씨에 호흡을 조금 느리게 하면서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한번에 다 읽어버렸지만 읽고 나니 아쉬웠달까. 천천히 읽을 걸~맛있는 것은 아껴 먹고 싶듯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눈길을 좇아 발견한 후지산에서 마유는 자연 얼음으로 만들었던 그 날의 빙수를 떠올리고, 할머니께 마지막 만찬이라 해도 좋을 그 음식을 대접해드리고 싶어 한달음에 달려나가 구해온다.

자연 얼음이라.. 우리나라 서빙고가 실재하던 시절에나 있었을 것 같은 자연얼음이 일본에서는 아직도 식당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건가? 하고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것 같은데..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은, 너무나 허름한 외관의 어느 유명한 맛집에 들어간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슈마이와 상어 지느러미 수프, 그리고 삼겹살 덮밥.

상어 지느러미 수프는 마치 초원에 내린 눈처럼 부드럽게 내 위를 채워갔다. 땅위에 내린 순간 사르륵 모습을 감춰버리는 눈처럼 위에서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갔다. 허무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가 가장 행복하다. 기분 나쁜 일도 괴로운 일도 그때만큼은 전부 잊을 수 있다.

"어째서 이렇게 맛있는 걸까?" 37.38p

먹어본 적도 없는 요리들, 상어지느러미 수프와 삼겹살 덮밥, 그리고 안녕 송이버섯에 나오는 노도 여관의 송이 버섯 정식

작가의 세밀한 설명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고 말았다.

아, 나도 먹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게 맛있게 글을 쓰는 작가였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불편한 상황이나 진실들.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닌, 대부분의 이야기들.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10년이나 동거를 해온 커플이 이별여행을 떠나 둘이 함께하는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그 과정이 이해가 안되기도 하였다. 그 비극적인 순간 앞에서도 미각을 잃을 줄 알았던 주인공의 입에 감아드는 맛있는 송이버섯 정식.

그런가 하면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최고의 미식가였던 아버지가 가장 아꼈던 허름한 맛집에 여자친구를 데려온 남자의 이야기는 연인의 심정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어쩐지 두근거리는 행복감, 살짝 심장이 터질것 같은 그런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하였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왜 죽음이라는 슬픈 주제를 드러내야했을까. 너무나 맛있지만, 행복하면서도 평범한 그런 순간들이지만 우리가 인생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이야기들이었을까?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에서부터 실제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들까지..

할머니의 빙수, 코짱의 된장국, 그리운 하트콜로릿, 폴크의 만찬, 때아닌 계절에 기리탄포까지.

물론 이 모든 이야기가 다 우울하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어린 딸 코짱이 불앞에서 어렵게 엄마에게 된장국 만드는 법을 배워나갔던 것처럼 나 또한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된장국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으니..



음식을 소중히 대하는, 인생의 소중한 이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그 이야기들로 평범한 일상도 소중한 소재가 될 수 있음을.

흔하게 넘길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작가의 느낌을, 일상을 인생으로 승화한 이야기를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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