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1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착수 미생 1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구판절판


책을 좋아하고, 웹툰 역시 좋아하는데, 늘상 들어가는 포탈이 다른 곳이다 보니, 다음웹툰에서 연재중인 미생은 서점에 신간 소식이 퍼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 특히 직장인들의 애환이 그대로 담겨있다는,을 보내고 있는지, 그 별점과 덧글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사실 바둑에 대해서 나의 지식수준이란 정말 까막눈에 불과할 정도의 수준이다. 운동도 싫어하지만 바둑 역시 좋아하지를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전업주부 상태라,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그리 크게 와닿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곧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대목에서, 읽을 생각, 그리고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 미생 1과 2, 단행본 두권을 연달아 읽어내리는 바람에, 낮에 놀아달라고 매달리는 아가와 못 놀아줘서 온집안이 아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으로 쑥대밭이 될 정도였다. 아들 미안, 엄마가 잠시 '장그래의 취업 현장'에 다녀왔어.아들에게 직접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어려서부터 바둑에 재능을 보였던 장그래는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바둑에 온 인생을 걸었다.

그리고, 입단에 실패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다 그 길을 걷게 되는게 아니었던가? 하는 것은 나의 안일한 생각일 뿐이었다. 대학 입시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더욱 냉혹한 현실이 바둑 세계에 자리하고 있는지 몰랐다. 도대체 입단이 무엇이길래, 장그래가 눈물을 쏟으며 버려졌다 말하게 만들었는가?





프로 바둑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아마추어 과정을 거친 이후 한국기원에서 주최하는 프로바둑기사 선발전을 통해 입단할 수 있다. 선발전을 통한 바둑기사는 한국기원에 소속되며 프로 바둑기사 양성을 위한 연구생이 될 수 있다. 1년에 3~4회 걸쳐 선발하며 연구생이 되면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한국기원 연구원은 바둑특기사 특별전형으로 대학교에 진학 할 수도 있다.

[출처] 바둑기사 | 두산백과









장그래는 한국 기원 연구생 출신이었다. 그리고 입단에 실패한 그는 다행히 운이 좋은 까닭으로,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힘입어 회사에 취직을 하였으나 이내 패배자처럼 낙인찍히고 군대로 도피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그는 자신에게 붙은 "바둑"이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떼어버리고 특기가 '무'인 상태로, (사장님만 아는 낙하산 인사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인턴이라, 취업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인턴이라는 과정이 이렇게 혹독한 것인지 몰랐다. 요즘에 취직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나, 인턴으로 뽑히면 대부분 수습 기간을 거쳐 정사원으로 확정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장그래가 속한 종합 상사의 (꽤나 쟁쟁한 학벌을 가진 사람들도 다수 지원을 하는, 사실 그런 스펙에 비해 장그래의 스펙은 바둑을 제외하곤 딸려도 너무 많이 딸렸다.) 정사원 취업의 문은 바늘구멍만큼이나 좁았다. 어렵게 들어간 인턴 중에서도 30명 중에 2명을 뽑을수도, 혹은 1명을 뽑을 수도 있었다.



어쩌다보니, 나는 입사동기가 참 애매한 그런 취업을 매번 하였다. 정시 모집이 아닌 수시 모집으로 늘 합격을 하였기에 들어갈때 동기 없이 나 하나 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나보다 바로 윗기수에 같이 편승되어 동기처럼 행동하게 되었는데, 오티까지 하고 똘똘 뭉친 그 집단에 내가 끼일 자리는 없어 보였다. 회사에도 있어보았고, 직업 특성상 다른 조직에도 몸담아 보았지만 어느 쪽이나 수시전형 입사인것은 마찬가지였다. 장그래의 경우를 보며 정시 모집의 치열함을 엿볼 수 있었다. 똘똘 뭉친 새내기들이라 하기보다는, 저 사람을 떨구어 나를 붙게 하자라는 마인드가 팽배한 경쟁자 모드인 것이었다.



표정서부터가 온화해보이는, 어쩐지 물러보이는 장그래, 사실 이름까지도 그래.. 참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입에 착 붙는 편안한 이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자는 패배자의 인생으로 시작한 장그래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고 어디선가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서, 다소 우울한 이야기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약삭빠른 세상의 논리에 장그래가 희생되는..) 그런데, 의외로 장그래의 선전이 돋보이고, 살짝 쾌감까지 느끼게 해주는 그런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회사 특유의 정서가 어쩜 이리도 잘 녹아 있는지.

사실 신입 사원 (인턴이건 정사원이건)에게 주어진 업무라는게 따로 있더라도, 선배들은 무수한 일을 떠맡기듯 시키고 짐지운다. 고스란히 그 일들을 해결하다 보면 어느 새 나의 일은 뒷전으로 내몰리고 만다. 참 똑부러지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안영이라는 엘리트 전형다운 인물은 그런 장그래에게 조언을 해준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해결하라고. 정말 숲을 보고 살아야지 나무만 보고 살아가는 장그래, 혹은 나같은 인물에게 적합한 지적이었을지 모른다.

너무 힘들었던 곳, 회사라는 타이틀을 딱 한번 달아보았을 적에 갓 대학 졸업 후 입사해, 업무 파악도 하기 힘든 내게, 팀장은 당장 한아름의 일거리를 쌓아주었다. 방법은 몰라도 시늉이라도 해보려 노력하며 전전긍긍, 머리가 뽀개질듯 고민하고 있는데, 웃기는 것은 같이 입사한 (아니 나보다 반기수? 암튼 일찍 입사한 남자직원은 팽팽 놀고 있고,- 그 직원은 일이 주어지지 않음을 오히려 고역스럽게 생각하였다.팀장식의 또다른 이지메라며) 남자직원에게는 전혀 일을 주지 않고, 내 전공때문이었는지 나한테만 산더미같은 일을 안겨주었다. 대학에서 그런것을 배우는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가장 기가 질리게 만들었던 것은, 회사의 분위기 파악도 하기 힘들었던 한달도 안된 신입에게, 수백명은 될 영업사원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혼자서 하라고 떠맡긴 것이었다. 이게 뭐야, 그 순간 스르르 내 안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이건 아니구나.

어찌 됐건, 신입이 다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마구 주어버리는 팀장 같은 캐릭터, 나만 겪은 고역이라 생각했는데, 장그래와 다른 이들이 겪는 고충을 보니, 세상 다 똑같은 무림이라는 신랑의 말이 저절로 와닿는 부분이었다.


장그래가 배정된 영업3팀의 분위기도 극의 주요 흐름을 좌우하였다. 언제나 충혈된 눈으로 다니는 오과장은 산만해보이나 일에 대해서는 정말 최대 기량을 뽑아낼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외모와 분위기만으로, 장그래를 괴롭히는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외모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가 갖고 있는 삶의 무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지만 그에게는 또다른 짐이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이 아빠에게 매달려 잠이 들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가위에 눌린듯 잠꼬대를 하기도 한다. 우리 신랑의 어깨에 드리워진 짐이 예측되는 부분이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있잖아~ 힘내요~ 라고 늘 말하지만 본인은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행복하게 해주고 싶기에 더욱 일에 매달려야하는 상황, 그 상황이 아버지의 눈을 늘 핏발서게 하고, 만성 피로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었다.


또 사람 좋아보이는 그의 버디 김동식 대리는 친절하고 싹싹해보였지만 폴더를 정리하라는 그의 지시를 좀더 합리적으로 수행해보려 했다가 모멸찬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회사란 그런 곳, 직장이란 그런 곳이었다. 아무리 비효율적인 일로 보여도 신입들의 생각은 가차없이 묵살되었다. 네가 뭔데? 이대로가 좋아, 우리 하던 방식이 있어. 이런 야유, 나 또한 겪어본 일이었다. 그래, 비효율적이라도 그들이 가르쳐준대로 그대로 따라해야했다. 내가 상사가 되기 전까진 말이다.


직장인들의 무한공감이란 이런것이었구나. 단지 그냥 만화라 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충격을 주었다고 해야할까.

아뭏든 별점이 평소에도 후한 나였지만 이 책은 그야말로 만점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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