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밥 - 한 끼의 식사가 때론 먼 바다를 건너게 한다 여행자의 밥 1
신예희 글 그림 사진 / 이덴슬리벨 / 2012년 8월
구판절판


대학교때 친구 하나가 연애할때 미리 말해두기를, 난 배가 고프면 화가 나는 성격이다. 라고 해놓아서, 남자친구가 늘 밥부터 사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어넘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듣고 보니 나도 그런 편이었다. 첫 해외여행인 2박3일 여행기간 중, 여자친구 셋이 함께 어울려다니다보니 아무래도 의견충돌이 날 수도 있고, 많이 걷는 여행이 지칠 법도 한 터라, 서로 한 사람이라도 짜증난 티가 나면, 다른 친구들이 나서서 망고 디저트 먹으러 가자는 의견을 내곤 하였다. 그럼 신기하게도 시원하고 맛있는 먹거리 앞에서 짜증났던 기분이 스르르 풀려버리곤 하였다. 음, 맛있는 것으로 기분 풀어지는 사람들이 제법 있긴 하겠지만, 나도 꽤 그런 사람 중 하나인가 보다 싶었다.

이 책 속의 저자는 아예 대놓고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책 중에는 심지어 제목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라는 책도 있었다.



여행도, 여행지에서의 맛집도 무척이나 중시하는 나로써는 그러기에 먹거리를 사랑하고, 즐기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저자의 이야기가 참으로 행복하게 읽히는 이야기였다. 사실, 난 좀 먹는 이야기는 덜 찾아 읽어도 될 터인데 이런 책들이 워낙 재미가 있으니 이거야 원.

저자가 다녀오고 실은 밥 이야기들은 불가리아, 신장 위구르, 말레이시아, 벨리즈 등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곳들의 먹거리였다. 그러니 당연히 생소하면서도 호기심이 들지.

사실 이 중 말레이시아는 한번 가봤다. 코타키나발루라는 휴양지에 다녀왔는데, 저자처럼 발품을 팔고 자유로이 길거리 먹거리서부터 현지 먹거리를 체험하고 온 여행이 아니라, 관광객들만 가득한 휴양지 리조트에서 현지 음식이라기보다는 전세계 어느 호텔에 가나 비슷비슷할 (동남아라 그래도 밥이 있다는게 장점인) 뷔페식 위주로 식사를 하고 와서, 사실 말레이시아 현지음식을 맛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았다. 그래서 저자가 소개한 말레이시아 음식들이 모두 다 낯설었다!

그럼, 그녀가 반하고 온 그 음식 이야기들로 들어가볼까?

여행자들에게 있어 아름다운 자연풍경, 특색있는 건축양식들을 둘러보고 오는 여행 일정도 중요하지만, 사실 현지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도 여행의 백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언젠가 동생과 일본 여행을 갔다가 비교적 우리 입맛에 잘 맞는 일본 음식들 또한 한 입도 입에 못 대고, 료칸 정식을 앞에 두고 호텔에 뜨거운 물을 요청해 컵라면을 먹고 있는 한 젊은 여자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이 있었다. 어르신들이 유럽 등지에 가서 현지 빵과 고기 등이 입에 안 맞아 햇반을 챙겨가시는건 봐왔지만 30대 남짓의 여성이 일본 밥도 입에 안 맞아하는 걸 보고, 여행 체질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해 이 책 속 저자는 참으로 타고난 여행가의 식성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었다. 뭐든 너무나 잘 먹고 현지에서도 참으로 빠른 적응력을 보인다. 오히려 현지인들이 놀라워할 정도로 말이다.


나도 두루 잘 먹는다 자부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제법 못 먹는 것들이 많은 편인데..

우선 저자가 불가리아에서 너무나 맛있게 즐겼다는 각종 고기의 특수부위들. 일명 내장 등을 거의 입도 대기 싫어하였다. 그런데 우리 저자 참으로 즐거이 맛나게 잘 먹었다. 고기만 좋아하는가 하면 또한 신선한 야채의 제맛인 샐러드도 기쁘게 즐길 줄 안다.

불가리아하면 광고의 여파인지 다들 요거트를 떠올리곤 하는데 저자는 불가리아에서 정말 제대로 된 참맛을 즐기고 왔다. 고기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겐 거의 천국이나 다름 없는 곳이자, 신선한 생야채 그대로 시레네 치즈만 듬뿍 얹어먹는 샐러드 또한 천하일미라 하니, 가서 맛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았다. 하지만, 밥 사먹으려면 키릴 어 좀 공부해야겠지? 하는 그녀의 열공 모드에 쓰여진 글자, 아니, 전혀 알아볼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이런 문자, 어쩜 좋단 말인가! 어우야, 여행가지 말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라는 그녀의 말에 절대공감하게 만드는 해독불가 난감문자였다.


다시 불가리아 요리로 되돌아와서 유명한 불가리아 요거트로는 다양한 전채요리를 만들 수 있는데 그녀는 거기에서 불가리아 요거트 튀김까지 먹고 왔단다. 아이스크림 튀김이라는게 있다고 들어봤지만, 요거트 튀김이라. 허허. 어떤 맛이려나.

불가리아의 다양한 맥주, 식전주인 라키아 등을 즐기고 해장을 위해 우리네와 비슷한 내장탕같은 쉬켐베 초르바를 먹은 이야기도 들려준다. 우리식 곰탕과 같은 쉬켐베 초르바는 양의 내장을 통째로 몇 시간 푹푹 삶아 꺼내어 잘게 자른후 다시 국물에 집어넣고 계속 끓인 요리라 한다. 여기에 볶은 파프리카, 우유, 밀가루를 넣어 만든 요리인데 개운하고 시원하게 잘 즐기고 왔다 한다. 불가리아식 내장탕이라 먹어보지 않고는 예상하기 힘들 것 같다.


신장 위구르. 세계사 책에서나 접했던 그 곳,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50시간을 달려야 위구르 자치구 구도인 우루무치에 닿고, 거기에서 다시 하루를 기차로 달려야 위구르의 마음 속 고향인 카스에 도착한다 한다. 저자는 차마 기차 타고 그리 여행할 수가 없어 카스행 비행기표를 끊었단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부터 두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24시간이나 지나서야 도착했단다.

중국의 서쪽 끝 신장 위구르, 중국보다 오히려 터키나 중동의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곳.

베이글과 비슷하지만, 발효과정없이 구워서 무척 딱딱한 낭, 유목민이었던 위구르인들의 주식인 빵이란다. 거의 식으면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린다는, 그러나 6천년 이상의 역사를 품은 유서깊은 빵이란다.



그녀를 따라 노래부르게 한 당신에게선 양내음이 나네요.

한국에서부터 깊이 반한 양꼬치의 원조를 찾아 그녀는 멀고 먼 카스까지 찾아갔다. 원조 양꼬치는 물론 새벽부터 가죽 벗겨진 양들의 통몸뚱아리를 보고 정신적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한다. 어우! 깜짝이야. 잠이 확 깨네. 양이란게 이렇게 큰 동물이었나? 123p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구운양에 질리면 볶은 양을 먹고, 볶은 양이 물리면 삶은 양을 먹는다. 튀긴 양, 찐 양, 매콤하게 양념한 양, 심심하게 익힌 양, 양고기 만두, 양고깃국, 양고기 장조림, 양고기 고명을 얹은 국수. 동네 개들이 앞발로 꼭 움켜쥐고 으드득으드득 뜯는 것도 당연히 양갈비다.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양고기의 블랙홀이다. 128p


말레이시아에서 코코넛 밀크를 넣어 지은 밥인 나시 레막을 먹고, 시원한 국수인 아쌈 락사를 즐긴다. 그리고 그녀는 마성의 음료인 떼 따릭에 중독이 되었다. 엄청나게 긴 거름망을 통해 홍차를 거르고걸러서 진하게 걸러지면 여기에 연유와 설탕을 넣어 다시 또 거르고 거른다. 이렇게 손품을 팔아 완성된 떼 따릭 위에는 마치 우유 거품처럼 거품이 가득하다고 한다.

콸라룸푸르에서 두시간 버스 거리인 말라카에서 그녀는 바바노냐 요리를 맛보고 반하게 되었다. 명나라 공주가 말라카 왕국의 술탄에게 시집을 와 말레이시아와 중국의 조미료가 섞인 복잡 다단한 음식들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것이 바바노냐 요리라는 것. 그 중 그녀는 하이난 치킨 라이스를 맛보고 한국에 수입하고픈 쩍달라붙은 감동을 맛보았다나?


그녀가 끝으로 소개한 벨리즈는 나도 처음 들어본 곳이었다. 티브이에서 가끔 세계 테마 기행을 보곤 했는데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프로라 친정에 가면 가끔 보게 된다.) 저자 또한 운좋게 그 여행을 통해 벨리즈를 다녀오게 되었단다. 티브이에서 그녀 이야기를 볼 수도 있었을텐데 미처 못 봐서 아쉬움이 더해진다. 어찌 됐건 벨리즈에서도 그녀의 미식 여행은 즐거이 계속 되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에 자리한 아주 작은 나라. 벨리즈의 주식은 라이스 앤 빈즈란다. 또 플란테인이라는 굵직한 초록색바나나를 튀겨만드는 플란테인 튀김도 인기란다. 거기에 벨리즈의 대부분 식사가 얼마나 고열량식인지를 잘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한가득이었다. 다이어트에 눈이 튀어나올 지경인 여성들이 보면, 왜 이리 칼로리가 높아? 하겠지만 살찌는 요리가 맛있는 요리라는 서글픈 진리를 생각해보면, 벨리즈의 음식들이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벨리즈까지 여행가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그녀가 배워온 조니케이크 만드는 방법을 따라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단, 밀가루 1kg 기준으로 쇼트닝이 120g,코코넛 크림 250g이 들어가기 때문에 열량은 말도 못할 정도겠지.



만화 속 그녀의 해프닝이 정말 와닿는 이야기들이었다. 맛있는 음식이 칼로리가 높음을 늘어난 체중으로 실감한 그녀의 이야기였으나, 다이어트를 해야할 판임에도 그녀의 여행자의 밥 이야기들은 참으로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벨리즈, 언제 꼭 한번 가고 말테얏.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