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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괴 따위 안 해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코지 미스터리들은 아주 가볍고 발랄한 느낌이라 상업성이 뛰어난 영화로 만들어도 인기가 좋을 것 같다.
이번 책은 거기에 장르 하나를 더 더했다. 유머 미스터리에 로맨스까지 추가요.
그의 작품 첫 부분에는 대개 지명 등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등이 히가시가와 식으로 첨부가 된다. 음, 히가시가와 뿐이 아니었나? 암튼 이런 플롯 여러번 접한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모노세키의 적당한 마을 크기(?)에 대한 설명이 작품의 큰 흐름을 잡아주는데 좋은 배경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방학이 되어도 놀러갈 궁리는 커녕 학비를 벌어야 하는 가난한 학생 쇼타로는 수입이 짭짤하고, 편하고, 식사비와 교통비를 전부 지급받고,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있고.. 예쁜 여자애들과 한여름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9p현실에 없을 아르바이트를 꿈꾸며 구인정보지를 뒤적여본다. 아무리 찾아도 그런건 나올 턱이 없겠지. 별 기대 없이 물었던 한 선배에게서 같이 일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았는데, 그게 바로 다코야키 장사였다. 찜통같은 더위에 다코야키를 파는 일이 수월할리는 없을 터, 너무 더워 포기하려는 찰나, 주인인 선배가 먼저 두손두발 다 들며, 은근슬쩍 쇼타로에게 트럭을 넘긴다. 단기 임대형식이라며 계획적인 자기 휴가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렇게 나홀로 다코야키 장사를 하게 된 쇼타로가 장사를 위해 시모노세키 건너편 모지항에 건너간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이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해프닝을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덤덤한 말투, 이것이야말로 히가시가와 도쿠야 식 매력이 아닐까 싶다. 사실 그런 건데, 그런 마음을 숨기려는 듯, 숨겨지지 않는 눈에 빤히 보이는 것들. 쿡. 그래도 재미나다. 가벼운 유머가 난무(?)하는 이런 책, 금새 술술 잘 읽힌다.
다시 중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갑자기 양복쟁이 두 남자에게 쫓기는 세일러 복의 미소녀 발견. 게다가 그녀는 쇼타로에게 매달리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쇼타로는 우선 둘을 혼자 상대하기에 역부족임을 깨닫고, 먼저 발을 걸어 둘을 넘어뜨린 후에, 니 드롭, 엘보 드롭, 코코넛 크래시, 플라잉 보디 시저스 드롭, 러시안 레그 스윕, 이어서 러닝 넥 브레이커 드롭 등 마치 자이언트 바바의 재림을 연상시키는 레슬링 기술을 날리며 우위를 점했다. 18p 이런 기술이 다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만, 어쩐지 슬로모션처럼 제작해도 좋을 이 장면이 말만 들어도 웃음이 나는걸. 어찌하나.
얼떨결에 구출한 소녀. 알고 보니 야쿠자 두목의 딸이다.
이를 어쩌나. 게다가 그녀에게 이끌려 시모노세키에서 이상한 개구리 인형을 뽑아, 병원에 누군가를 면회하러 다녀오다 보니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이 하나 있고, 여섯살 난 그 여동생이 수술비가 없어 신장 이식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배반하고 떠난 여자의 아이를 거두어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쇼타로와 하나조노 에리카는 '가짜 유괴'를 감행하고, 인질 협상금으로 동생의 목숨을 구하기로 결의하였다.
아, 여기는 무시무시한 하나조노파의 본당.
야쿠자 하면 무조건 다 어마어마 으리으리한 규모만은 아닌가보다. 우리나라 조폭들도 규모가 큰 것만 있는게 아니듯. 하나조노파는 지금 거의 쇠락의 길을 걷고 있어서 전 조직원을 모두 합해도 7명 남짓한 정도에, 현 보스를 맡고 있는 슈고로는 조직원들과 딸 둘의 신뢰마저 잃을 정도로 보스 자격에는 좀 미달인 감이 있는 사람이다. 사실, 스스로도 인정한, 보스들의 구심점이 될 사람은 바로 큰 딸 사쓰키.
"그러면 안되는거야? 저기, 아버지. 야쿠자의 보스는 자기 딸만큼은 일반인하고 결혼해서 정상적인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게 보통이라고. 감동적이잖아. 자신이 해온 고생을 딸만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게 부모 마은 아니야?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유? 그렇게 나를 야쿠자의 여자로 만들고 싶어?"
"네가 하는 말은 잘 알겠다. 나도 딸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하지만 말이다. 하나조노 파에는 하나조노 파만의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허어? 무슨 사정인데?"
"잘 들어라. 일반적으로 야쿠자 집안이란 보스의 기량에 따라 성립하는 법이다. 즉 하나조노 파는 하나조노 슈고로란 보스의 기량으로 유지되지. 부하들은 하나조노 슈고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때로는 목숨도 바친다."
"물론, 다들 그러잖아."
"그게 아니라고오~~~!"
슈고로는 눈 앞의 테이블을 분한 듯 두번 내리쳤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아! 하나조노 파는 내 기량으로 유지되지않아. 하나조노 파는 너의 기량으로 유지되고 있어. 사쓰키! 부하들의 충성심은 내가 아니라 너를 향하고 있어!"
60.61p
오호. 슈고로. 무기력해보였지만 실상은 현실을 뚫어보는 통찰력(?) 정도는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아뭏든 예사롭지 않은 이 하나조노 파의 두 딸들을 중심으로 이렇게 이야기는 흘러간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 유괴 사건이란, 사실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건이었는데, 가족간에 충분한 대화가 미처 진행되기도 전에, 에리카의 독단과 혼자만의 오해에 의해 그렇게 진행이 되었다.
사쓰코에게는 늘 함부로 대하면서, 에리카는 예뻐서 좋아한다는 철부지 아버지 슈고로는 에리카의 유괴에 정말 정신줄까지 놓아버렸다.
감히 야쿠자 보스의 (아무리 쇠락하였다 해도) 딸을 유괴한 간 큰 녀석들. (들이 된 것은 하나 더 추가요. 바로 쇼타로의 그 어이 없는 선배까지 가짜 유괴범으로 추가가 되었다.) 의 이야기가 얼마나 더 흥미진진하게 흘러갈 것인가.
거기에 자꾸만 미소녀 에리카를 향하는 음흉한 (?) 진심의 쇼타로 군까지.
사실 여자가 두명 등장하다 보니 로맨스도 꼭 한커플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뭐 이건 이 정도로만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야기는 가짜 유괴에 살짝 로맨스라 하기엔 궁상맞은 이야기까지 가미가 되어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잡자마자 아무리 피곤해도 끝을 보게 만드는 필력.
기분이 꿀꿀할때 가벼운 오락영화 한 편 보면 기분이 좋아지듯, 이 책을 읽고 그런 기분전환이 되었다.
아자아자 오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