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사기본기 2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12년 2월
품절


논어를 읽고 감히 리뷰를 쓴다 할 적에는, 사실 자신은 없으나 그냥 논어를 내가 펼쳐들고 읽었노라는 생각에서 쓴 부끄러운 리뷰였다.

그 글에 그런 덧글이 달렸었다. 논어를 그냥 한번 읽은 것이냐, 아니면 여러번 읽고 또 읽어 내 것으로 만들고 난 후 읽었다 말한 것이냐 라는 덧글이 말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전자였다. 논어를 한번 읽고, 나는 논어를 읽은 사람이다 말하기는 부끄러웠으나 그때 내 심경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진 논어를 사실, 거리감을 없애고 펼쳐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있다 생각되어 쓴 후기였는데, 그분 눈에는 많이 미흡한 글이었으리라 생각되었다. 같은 연유로 사기는 더더욱 내게 어려운 책이 되고 말았다. 특히나 앞 부분을 보고서, 꽤나 망설이고 말았는데, 이후의 내용을 읽어내려가면서 정말 역자이신 김영수님 말씀마따나 소설처럼 재미나게 읽히는 부분들이 많아서, 가르침을 주는 글들인 논어와는 또 다른 재미를 갖고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 되었다.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을 선고받고서도 일생일대의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 치욕적인 삶을 살아야했던 사마천.

사마천의 사기에 대해서는 세계사 시간에 처음 듣고서 그가 받은 궁형이라는 잔인한 형벌에 대해 치를 떨기도 하였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고대 역사에 이뤄졌던 형벌들은 궁형 외에도 꽤나 잔인하고 무서운 형벌들이 많았다.

끓는 물에 삶아 죽인다거나 육형이라 하여 손발을 자른다거나, 혹은 육형을 폐지한다며 곤장으로 대신한다고 하면서도 심한 곤장으로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되는 일들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실려 끔찍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계사, 국사 시간에 언급되는 고전들에 대해서 저자와 저서 등을 매칭해서 외우는 것에만 급급했을뿐 정작 그 작품들을 읽어볼 생각은 많이 해보지를 못했었다. 전공이 전혀 달라서라는건 나의 변명일 따름이었고, 관심이 크게 없었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다만, 남들과 다른 깊이와 그릇으로 위대한 글을 써낸 사마천에 대해서는 그의 작품 사기가 이렇게 방대한 분량인지도 모르고, 언젠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만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사기가 나오긴 했으나 사기에 대해 특히나 20년 넘게 전문적으로 연구해오고 계시다는 김영수님.

이분의 글을 사기로 처음 만나보았으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자니, 사기에 대해서라면 김영수님이 거의 우리나라의 일인자에 해당하시는 대단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뒤늦게 접할 수 있었다. 바로 그 김영수님의 완역 사기 본기 2편.

이 책에는 진시황의 이야기서부터 항우본기, 고조 본기, 여태후 본기, 효문 본기, 효경 본기, 그리고 사마천을 힘들게 했던 효무 본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역자는 본기의 시공간을 확인하기 위해 총 51일 1224시간을 들여 25000킬로 미터 이상의 공간을 이동했다. .... 본기 1권에서도 밝혔듯이 앞으로 훨씬 더 긴 답사 여정이 역자를 기다리고 있다. 100여차례 정도 되는 탐방 횟수가 150차례, 200차례 순차적으로 쌓여갈 것이다. 역자가 이렇게 현장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마천의 역사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다. 알다시피 사마천은 누구보다도 역사의 두 축인 시간과 공간을 예민하게 의식했다. 8p



사마천의 사기를 완벽히 전달하기 위해 역자분은 직접 오늘날의 중국을 돌아보고, 현대의 사진을 찍어, 과거를 회상하며 해당 파트에 사진을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딱 맞을 법하였다. 항우의 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던 그 곳이 지금은 시골의 어느 풍경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라거나 하는 것들이 말이다.



진시황의 이야기보다도 패왕별희로 유명한 항우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하였다가, 고조 본기와 여태후 본기를 몰입하여 읽게 되었다. 사마천이 가장 극찬했던 왕은 문제였으나 막상 눈길이 가는 것은 항우를 멸망시킨 한 고조 유방의 이야기였다.



공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군막 안에서 계책을 짜서 천리 밖 승부를 결정하는 일이라면, 나는 자방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달래고 전방에 식량을 공급하고 양식 운반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내가 소하만 못하다. 100만 대군을 통솔하여 싸웠다 하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였다 하면 틀림없이 손에 넣는 것이라면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세사람은 모두 인걸이고, 내가 이들을 쓸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이다. 항우는 범증 한 사람만 있는데도 믿고 쓰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내게 덜미를 잡힌 까닭이다. 329p

책의 표지에도 인용된 말이었다. 그 세사람은 누구이고,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바로 한 고조 유방의 이야기였던 것이었다. 마오쩌둥 또한 사기를 즐겨 읽으며 장제스와의 겨룸에서 많은 용기를 얻게 된 것이 바로 항우와 유방의 겨룸이었다 하였다. 오늘날의 정치가나 기업가들을 보면 유명한 고전들을 읽으며 귀감으로 삼고, 그 안에서 교훈을 얻으려 많은 노력을 함을 알 수 있다.

손자병법 뿐 아니라 사기 등의 많은 고전들이 오늘날에도 똑같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유익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활용해보지 못한 내게는) 더욱 인상깊은 일이 되었다.



사마천은 누가 되었건 시대를 단절시키지 않고 천하 형세를 장악했다면 본기에 편입해야한다는 진보적인 역사관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천하정치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느냐를 기준으로 삼아 본기를 수립했는데, 바로 이런 점이 사기의 창조성이자 매력이다. 기계적 중립이나 소신이 결여된 답습 내지 모방이 사기에 자리잡을 가능성은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시세'와 '대세'를 주도한 자의 기록, 이것이 바로 본기다. 380p 이러한 까닭으로 다른 사가들의 기록에서는 본기에서 빠졌을 진본기, 항우본기, 그리고 여태후 본기 등이 사기에는 온전하게 올려져 있었다. 사마천의 분석에 의하면 여태후는 잔인한 성격과 권력욕을 보였으나 백성들은 힘들지 않은 삶을 살게 한 치세를 펼쳤다 하였다.

자신의 아들 효혜제 마저 정이 떨어지게 만든 잔인한 여태후의 이야기는 사기를 읽으면서 처음 제대로 접하게 되었는데 무서운 여자의 보복심리를 (물론 남자라도 보복을 할 수는 있겠으나, 모성을 생각하면 좀 유약할 것 같은 여성이 이렇게 잔인한 면을 갖고 있다는 것에 상대적으로 더 놀라게 되었달까) 느끼게 해주었다. 여태후의 실각으로 여씨 후손들이 반씨 성으로 바꾸었다는 것도 인상깊었다.



고조가 총애를 했던 척부인의 아들을 태자로 삼으려했던 데에 불안함을 느꼈던 여태후는 결국 자신의 아들을 왕에 올리는데 성공하였음에도 척부인에 대한 증오와 원망을 삭일 수가 없었다. 척부인의 아들을 불러들여 죽이려 하자, 마음씨 착한 효혜제가 자신이 배다른 동생 여의를 감싸고 보호하였다. 결국 효혜제가 새벽에 일찍 사냥을 나간 틈을 타, 여태후는 여의를 독살하였고, 척부인의 손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를 멀게 하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살게 하고는 사람돼지라 부르도록 명하였다. 392p 효혜제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자, 어머니의 잔인함에 질린 아들은 이후 병이 나서 일어나지 못한채, 날마다 술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병이 생겼고 결국 어머니보다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사람돼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가는 말로 세계사 시간에 들었던 것도 같은데, 다시 들어도 끔찍하고 무서운 이야기였다. 어쩜 이리 잔인할 수가 있는지..

한사람의 정리라 말하기에는 정말 방대한 분량이 아닐 수 없었을텐데..사마천은 그 3000년 통사를 기록해내는 것을, 그것도 올바른 사관을 갖춰 기록해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과거의 고대 중국사를 훌륭한 기록으로 김영수님의 번역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한문을 거의 수록하지 않고, 되도록 한글로 거의 번역을 하였기에 읽는 데 거의 부담이 없었고, 의문이 갈만한 부분들은 주석을 달아 보충 설명을 뒤에 부연해 붙여넣었다. 또 본문의 내용을 다시한번 정리해주어, 한번을 보았음에도 두번 읽은 듯, 깔끔한 정리로 마무리해주는 것이 눈길을 끄는 사기였다. 사마천의 해석에 덧붙여 김영수님의 설명까지 이어지니, 처음 사기를 접하는 나였지만, 부담을 덜 안고 편안히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리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