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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이븐 - 에드가 앨런 포 단편집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0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심은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2년 5월
어려서 읽었던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어린 내게 섬뜩한 공포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고양이를 사랑했던 사람의 미친 광기로 동물에 대한 학대가 너무나 끔찍하게 자행되었단 생각이 듦과 동시에 결국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이후에 저지른 만행은 꿈에 나올까 무서운 그런 한 컷이 되고 만 것이었다. 한동안 그 장면이 머릿속에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어서 (그 이전의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공포와 달리 맨 마지막 컷의 강렬한 씬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과도 같이 머릿속에 새겨져있었달까.) 마치 영화로 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영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지 않았나? 아니 내 상상뿐이었을까? 하도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또 오랜 시간이 흐르다보니)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하였다.
동명의 영화 < 더 레이븐> 개봉을 앞두고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집 <더 레이븐>이 조명을 받기 시작해 영화를 보기 전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는데 에드가 앨런 포의 공포, 추리, 환상으로 분류된 14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었다.

'공포'에 담긴 검은 고양이, 아몬틸라도 술통, 절름발이 개구리,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다 등은 단편소설이 주는 짧고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그런 소설들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상황 속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것, 그 불안한 공포와 스릴을 독자들이 만끽하게 만들어주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의 추리소설의 효시가 될 작품인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을 쓴 추리소설계의 선구자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추리소설계의 대부격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그의 작품을 공포물인 검은 고양이 외에는 강하게 기억하지 못했던 고로 이번에 읽은 더 레이븐을 통해 1800년대에 쓰인 추리소설들을 접할 수 있었다.
1841년에 쓰인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은 '나'와 '뒤팽'이 처음 만나 해결한 사건이었다. 마치 셜록홈즈와 왓슨을 보는 듯한 이 설정을 에드가 앨런 포가 처음으로 썼던 것이었다. 그것도 추리소설로 분류할 장르를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말이다. 이후 거의 200여년 가까이 발전되어온 추리소설들을 생각해보면, 최초의 작품이라는 데 의의를 둘 뿐 재미는 없다거나 너무 진부하다 라고 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트릭이 심하지 않아 쉽게 해결된다는 단점은 있어도 당시에 이런 상상을 해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모르그가 살인사건에서는 보도 듣도 못한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모녀의 시체, 딸의 시체를 굴뚝속에 처박혀있었고 엄마는 목이 떨어진 상태로 온몸이 난자되어 있었다. 게다가 비명소리에 뛰쳐올라온 사람들의 귀에 맹렬히 다투는 듯한 색다른 거친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말로도 통역되지 않을, 외국인의 목소리로 말이다.) 이 소름끼치는 사건에 대해 언론과 경찰에서는 분분한 추리를 하고 의견을 내놓았지만, 뒤팽만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모르그가 살인사건의 후속편이라 할 마리 로제 수수께끼 편에서 뒤팽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만일 이성이란 것이 진실을 찾아 나서려면 상투적이고 진부한 것에서 한 걸음 떨어진 특별한 것을 근거로 해야한다고. 이번 사건도 진짜 문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일어난 적이 없는 무엇이 일어났는가'여야 하는 거지. 레스파네 부인 집을 수색했을 때도 G의 부하들은 눈에 보이는 그 비정상성을 놓쳐 버리고 어이없이 물러나지 않았나. 이번 향수 가게 아가씨의 경우도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평범한 것이라서 절망을 느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경찰청 사람들은 그저 '좋았어. 문제없어'하고 있지 않나. 172.173P
환상 장르의 소설들 역시 공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환상이라기보다 비현실적인 일들이 공포와 맞물려 일어나게 된것, 마치 어릴적 봤던 환상특급의 한장면 같기도 하고, 혹은 얼마전 봤던 영화 블랙스완(에드가 앨런 포의 <윌리엄 윌슨>)의 충격을 되살려주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난 거꾸로가 되어버렸다. 시간 순서면에서는 에드가 앨런포의 소설들이 더 먼저였으니 이후 작품과 영화들이 그의 작품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면 받았을텐데, 포의 소설을 뒤늦게 읽다보니 거꾸로 끼워맞추는 형식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셔가의 몰락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내 귀에도 흔히 들리는 그런 제목이었다.
에드가 앨런 포를 검색하면 그의 주요 저서로 어셔가의 몰락이 적혀있을 정도였다.
이 작품도 어려서 읽었으면 아주 온몸에 신경이 곤두섰을 그런 작품이었다.
1839년에 발표되고 이듬해에 괴기담에 수록된 소설이었다는데 이번에 더 레이븐에서 한번에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할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한 에드가 앨런 포의 생애는 짧지만 불운하고 가난했던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 이야기가 문학 전반에 담겨 이렇게 우울한 공포를 빚어내게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이번에 그 모든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익숙한 이름의 작가에 대해, 제대로 단편집조차 끝까지 읽어보지 못했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다는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의외로 귀에 익은 작가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았다. 어릴적의 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주의였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작가를 보고 작품을 고르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아서, 이미 귀에 많이 익은 작가와 작품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양 착각이 들어 읽기를 미루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어려서 부모님을 일찍 잃고, 양부모의 손에서 자랐으나 대학 학비도 제대로 송금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야했다. 약혼녀의 아버지의 거절로 결혼도 무산이 되었고, 나중에 14살밖에 안된 사촌여동생과 결혼하였으나 결국 페렴으로 앓다가 먼저 세상을 떠나보내야했다. 가난이라는 장벽 앞에 사랑하는 사람 하나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그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을까.
에드가 앨런 포의 천재성을 생각해보자면 그의 불우한 생애가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첫 사랑이 미망인이 되었단 소식을 접하고 그녀와 뒤늦게 결혼식을 하기로 하고, 그는 과음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포의 생애가 좀더 길었더라면 더 멋진 작품들을 많이 만났을수 있었을텐데.. 남들이 미처 걷지 않은 장르 문학이라는 길을 열어준 포에게 안타까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